안녕, 12년만에 너희를 불러보는구나.
내가 부임하고 처음으로 만난 너희들은 99년생들이지. 그땐 아직 '빠른'나이가 남아 있을 때라 너희 중 몇은 2000년생이고 말야. 첫 제자라 그런지 난 너희들이 가장 애틋해. 너희들도 나이차가 덜 나는 내가 좋았는지 졸업 후에도 학교로 찾아오고 내 프사를 보고 결혼할 때에도 연락을 해주어 고마웠단다. 그 해의 너희들은 이제까지 만난 다른 학생들보다 유독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어. 첫사랑 효과처럼 말야.
그해엔 체육대회에서 너희들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처럼 기뻤고 너희의 말썽도 꼭 고쳐야한다는 맘으로 생활지도를 했어. 대체로 너희들도 거기에 불만 없이 따라 줬지. 어느 날엔 꼭 맞지 않는 맞춤법때문에 6학년인 너희에게 받아쓰기 시험을 보이기도 했어. 수학여행으로 간 경복궁에서 너희 중 누군가가 길을 잃어 까맣게 속 태우며 찾기도 했고 너희 중 하나가 슬픈 일이 있을 때 망설임 없이 달려 갔던 장례식장도 기억 나. 졸업식에서 내가 너무 울어서 너희도 따라 울고 훌쩍이시던 학부모님들도 계셨지. 한 때 나는 매년 종업식때마다 울었는데 어느덧 나는 이제 학생들과 이별할 때에도 눈물이 전혀 나지 않는 교사가 되었단다. 그리고 난 너희와 헤어진 후, 요 며칠동안 너희 생각을 이제까지 중 가장 많이 해. 나흘 전, 너희들과 같은 나이의 선생님이 학교에서 세상을 등지셨거든. 그 자체로도 충분히 화나고 슬픈 소식이지만, 그 선생님의 나이를 알게 되는 순간 나는 12년 전으로 돌아가 마치 내가 너희를 지키지 못한 기분이 되더구나. 사실 지금도 그래.
우리가 헤어진 후 너희는 어떻게 지냈니? 보나마나 치열하게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 무시무시한 입시와 취업을 거쳤을테니 말야. 너희 중 누군가는 아직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 또한 만만치 않은 날들을 보냈단다. 우리가 함께 했던 때와 지금 학교는 많이 달라졌거든. 교사가 설 자리가 절반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고 해야하나? 아주 대충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늘 화가 나 있단다. 자신의 화를 주체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학부모님들도 예전보다 쉽게 화를 내시지. 그런데 교사는 화를 낼 수 없어 언제나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며 스스로를 검열한단다. 이러다보면 자주 울컥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맞게 나도 변하는 과정이라고 이 불편함을 아주 대충 무마했지. 작년엔 갑자기 돌아가신 현직 선생님 두 분의 장례식장에 갔어. 충격이 컸지만 '돌연사는 어느 직종이든 일어날 수 있다'며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눌렀지. 그리곤 치사하게도 동료들과 '우리는 살아남자.'는 인사를 나눴어. 이렇듯 셀 수 없이 많은 불합리를 오늘만 넘기자며 어떻게든 버무려 해결하려고 애쓰는 하루하루가 쌓이는 동안 너희만큼 어린 선생님은 혼자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교사의 가장 큰 영광 중 하나는 '제자가 교사가 되는 것'이라고들 해. 예전엔 그런 말씀을 하시는 선배님들이 까마득히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어느덧 내가 영광을 누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너희 또래 선생님의 죽음으로 가슴 아프게 알게 되는구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분의 마지막이 내 마음에 너무 깊게 새겨져서 한동안은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오늘은 너희가 많이 보고 싶구나. 너희를 만나면 눈물부터 나올 것 같아. 하지만 웃으면서 다시 만나길 소망해볼게. 너희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리란 믿음을 갖고 이젠 안되는건 안된다고 말할 용기를 가질게. 그리고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가 고작 휴대폰 자판 두드려서 글을 쓰는 일이라고 해도 많이 써볼게.
2023.7.22
언제나 너희에게만은 모범이 되고 싶은 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