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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Jul 01. 2023

선생님 아프지 마세요

 작년까진 동료선생님들로부터 '와, 선생님 연수 진짜 많이 듣는다!'는 칭찬을 종종 들었다. 긴 육아휴직동안 전문성 계발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다 복직한지 얼마 안됐던 때였다. 인터넷 연수원에서 학급경영, 부진아 지도법 등 좋다고 검증된 연수를 듣고 학급에 적용하는것이 즐거웠다. 결코 쉽지 않은 스케쥴 속에서도 15시간, 30시간짜리 연수를 시간 내어 이수하곤 했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지난 겨울방학때 들은 미술치료 연수를 제외하고 수강한 연수의 갯수는 0이다. 게다가 더 잘하고 싶다는 목마름도 느껴지지 않는다. '변호사랑 상담했다.'던 학부모의 협박섞인 말을 듣고 난 뒤부터인가, 전국 각지에서 고소로 고통당하는 선생님들의 사연을 접하고 나서부터인가, 수업방해하는 학생에게 무엇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더해 학부모로부터 공격을 받고 휴직에 들어간 동료교사를 보고부터인가, 그것도 아니면 우리반 학생이 의자를 집어던진 후부터인가. 잘 모르겠다.

 물을 잔뜩 먹은 솜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하고 희뿌얘진 눈과 마음으로 교단에 서기를 4개월. 그럼에도 맘 한구석에 무언가 불편함은 있었다. 이래선 안되는데 하는. 결국 권태롭고 불안한 손가락이 하드를 뒤져 1년 전의 파일을 끄집어냈다. '☆월 되돌아보기 쪽지' 첫 문항이 나는 학교가는것이 (즐겁다/즐겁지 않다)로 시작되는 에이포 한쪽짜리 문항지다. 이걸로 나는 아이들의 속마음, 친구관계, 내가 한 교육활동을 되돌아보곤 했다.

 파일을 출력하고 우리반 수에 맞게 복사를 해놓고도 난 선뜻 이것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지 못했다. '괜히 귀찮은 일 만드는거 아니야?'
'이거 하게 되면 처리할 일이 더 생길텐데.'
'나중에 이걸 구실삼아 담임은 알았으면서 뭐했냐는 말 듣는거 아냐?' 라는 생각으로 나는 며칠을 망설였다.

 결국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는 내 안의 양심이 두려움을 이겼고 어느 오후, 아이들이 다 가고난 교실에서 난 아이들이 쓴 스무장 남짓의 종이를 서서히 눈으로 읽어갔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문장완성을 잘 하지 못했고 맞춤법은 엉망이었다. '친찬'은 익숙한 맞춤법인데 체육'되'회라니. 큭큭 웃으며 읽어가다 예상치 못한 감동을 만났다. 그 문항은 이러했다.
<선생님, (         )은 별로였어요. 다음엔 다른거 했으면 좋겠어요.> 지난 달 가장 별로였던 활동을 적는 것이었는데 어떤 아이가 괄호 안에 '선생님이 안 온 날'이라고 쓴 것을 보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선생님, 아프지 마세요. 선생님이 안 오면 싫어요. 라는 메세지를 서너개 더 만났다.

 지난 주, 감기때문인줄 알았던 눈 충혈이 사실 전염성 눈병이라는 것을 안과에서 확인한 날이 있었다. 의사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난 맘속으로 환호와 함께 어퍼컷을 날렸었다. 빨개진 눈으로 교장실에 내려가 전염성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어필하고 하루 병가를 얻었다. 사실 눈병은 어떻든 상관없었고 그즈음 너무 지쳐있어서 하루라도 출근을 덜하고 싶었는데 매우 잘된 일이었다. 그런데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다니. 이거 요즘 내 무드엔 안 어울리지만 꽤 감동인데?

 그 날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우리반 아이들은 학교를 즐거운 맘으로 온다는 것, 의자를 집어던진 우리반 금쪽이가 아이들에겐 내 우려만큼의 큰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적어도 다섯명쯤은 있다는 것,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친절해서'와 '칭찬을 잘 해줘서'라는 것. 그러니 영혼이 없더라도 칭찬은 많이 날려야 하는 것이었고 금쪽이의 행동에 조금은 덜 전전긍긍해도 되는 거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프지 말자는 것. 나를 위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내 손에 쥐여진 6월 되돌아보기 쪽지가 나를 오랫동안 버티게 해주진 못할 것같다. 그러기엔 아이들의 쪽지보다 훨씬 힘이 센 나쁜것들을 많이 겪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름 방학까지는, 그리고 혹시 이런걸 몇 번 더 모으면 올해까지는, 나의(사람이라면 누구나) 타고난 회복탄력성을 더한다면 어쩌면 내년까지도 웃으며 교단에 설수 있을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중요한건 이런거다. 어두운 생각만 가득할 때, 희망쪽으로 방향을 살짝 틀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들이 되어줬다는 것. 이것을 시작으로 교사에 대한 법적 보호가 시행되고 사회적 신뢰가 회복될 날도 오리라는 희망을 품어보아도 될까? 아직은 섣불러 보이지만 기대하는 것쯤은 나쁘지 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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