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의 두 가지 의미
아이가 네살쯤 되었을때, 그러니까 유치원을 고민하던 때에 많이 들은 단어가 있다. 바로 '센터'.
'거기는 센터가 좋아. 하원하고 같은 건물에 있는 센터 갈수 있으니까.'
'특히 수학 센터가 아주 좋아서 추천이야.'
첨엔 센터가 무슨 말인가 잠깐 어리둥절했지만 대화의 맥락상 유아 혹은 아동용 사교육 지점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을 금세 파악할수 있었다. 위의 말들은 주변 선배 엄마들이 모두 지역의 가장 오래된 영유를 추천하며 나온 것들이었는데 가장 오래된 만큼 서울의 유명 사교육 프랜차이즈들을 일찍 이 지역으로 들여왔는지 유치원과 학원이 모두 한 건물에 있어 유치원 방과후로 질이 높은 사교육을 할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는 것이었다.
'아, 유아용 학원을 센터라고 부르는구나.' 후배 엄마인 나는 육아의 언어를 하나 더 수집했다.
한 해가 지나고 나는 학교를 옮겼다. 학군지 인근에 있던 신도시의 역사가 짧은 학교에서 구도심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로. 3월 첫 주, 4학년 담임을 맡아 수학 수업을 하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저 이거 센터에서 다 배웠어요!' 라며 자신감을 내비치던 여자아이. 보통 4학년쯤 되면 선생님의 인정보단 주위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내게 칭찬을 드러내놓고 바라기보단, 친구들의 눈밖에 벗어나지 않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데 저 아이는 학원에서 배웠다는 것을 대놓고 자랑하다니,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모두 마이너스겠는걸? 이라고 생각했다. 또 사교육 센터가 거의 없는 동네에서 다른 동네까지 다니다니, 엄마가 라이딩을 하시나? 교육에 관심이 많은 집이군. 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 아이가 말하는 센터가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센터와는 전혀 다른 의미였음을 학부모 상담기간에 알수 있게 되었다. 그 곳은 바로 '지역아동센터'였다. 1급 정교사 연수때 방문한 적이 있는 곳. 학교 밖에 위치한 돌봄교실이라고 해야 하나, 차이가 있다면 돌봄교실보다 더 오래전에 만들어졌고 각 센터마다 색깔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원하면 저녁식사까지 제공되는 곳. 그 아이는 화려한 사교육 센터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교 후 늘 가서 그 아이에겐 거의 제2의 가정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많이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그 후로 지금까지도 같은 학교에 근무하며 센터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얘는 센터 동생이에요.'하면 일반 학원에서 만나는 동생보다 더 돈독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센터에서 매일 저녁을 먹어요.' 하는 아이들의 내면에는 애정의 욕구가 있다는 것, 그래서 내 손길과 말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필요하다는 것도 점차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서 '교육격차, 3세부터 벌어진다'는 기사 타이틀을 읽었다.(기사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찾아보니 ebs의 다큐 시리즈였다) 나에겐 매우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타이틀이었다. '센터'에서 저녁까지 먹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퇴근하여 하원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서 아이 친구 엄마들과 7세엔 어느'센터'를 보내야 하는지 얘기를 나누는 나. 마치 냉온탕을 번갈아 가는 것처럼 매일같이 교육격차를 느낀다. 또한 이 온도차가 해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것도. 우리 사회의 생활수준 격차가 날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도 짐작할수 있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다만 당장 내가 바라는 것은 두 센터를 다니는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되길, 그래서 어느 학교를 가든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즐거운 상호작용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