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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Oct 03. 2023

될놈될의 종말

타고난 것보다는 환경!

 '될놈될'- 될놈은 된다는 말, 한때 이 말이 꽤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tv프로, 무릎팍도사에서 가수 비가 이 말을 뱉었더랬다. '될 놈은 돼요.' 그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방송 다음 날 강의실에 남학우들이 모여서 "어제 무릎팍 봤냐? 비 진짜 멋있더라."하는 얘기를 하던 것이 떠오른다. 비가 유행을 시켰는지 어쨌든 '될놈될'은 요즘의 밈처럼 쓰이곤 했다. 

"야, 걔는 될놈이어서 된거야."

"안될놈은 안 돼." 류의 살짝 패배주의적이기도 한 말들이 우리를 매료시켰다.

그 무렵 국어교과론 시간에 교수님이 우리의 이런 말들을 들으시곤 '교사가 될 사람들이 갖기에 적합하지 못한 생각'이라며 걱정을 표하시기도 했다. 지금 와서 그때의 일을 다시 떠올리자니 역시 우리는 20대 초 철부지였고 교수님은 역시 교수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13년 동안 교실에 있어보니 그 말은 그다지 맞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 동안 교실에서 초등학생들을 만나보니 어떻던가요? 비범한 학생은 확연히 다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바로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음, 글쎄요? 라고 하며 우물쭈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는 달변가처럼 술술 대답할 수 있을 거다.

'학생의 바른 성장에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다고 보십니까?'

'타고난 것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력의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교실에서 환경이 아이를 변화시키는 것을 무수히 많이 목격했다. 또 본인과 가족, 교사의 노력이 아이를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바꿀수 있다고 믿는다. 아, 예외는 있다. 바로 예체능이다. 체육시간에 달리기만 시켜봐도, 미술시간에 간단한 그림만 그리게 해 보아도, 음악시간에 쉬운 노래만 불러봐도 누가 운동신경과 미적 감각을, 또 음감과 훌륭한 성대를 타고 났는지 금세 알수 있다. 예체능은 타고난 것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는 바이다. 또 사실 진짜 '될놈'인 아이도 봤다. 13년동안 딱 한 명. '쟤는 교사가 없어도 충분하겠다.'싶은 아이었다. 이런 천재가 존재하긴 함도 인정한다.


 그런 드문 천재가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아이들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환경에 반응하는 각자의 모습조차도 타고난 기질이라고 하면 뭐 어쩔 수 없지만. 부모님의 양육 방식에 따라, 어떤 친구를 사귀냐에 따라, 스마트폰에 하루 몇시간이나 노출되어 있는지 등등에 따라 아이들은 변한다. 바뀌지 못할 것 같았던 소극적인 6학년 남학생이 몇년 후 상급학교에 진학해 복잡한 중장비 위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진을 자신감 넘치는 메세지와 함께 보내며 근황을 알리기도 하고 너무 입과 행동이 거칠어서 내가 타기관에 상담의뢰까지 했던 학생이 부모님과 함께 받은 상담치료만으로 아주 귀여운 아들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예쁜 아이인지 미처 몰랐어요! 감사해요 선생님."이라는 학부모님의 말씀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다.


 위 사례들과 반대로 안타깝지만 나쁜 쪽으로 변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인간은 '될놈'으로 완성되어 태어나지 않기에 식물을 키우듯 적당한 햇빛, 수분, 바람, 양분이 필요하다는 것.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른들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줘야 한다는 것을 교직 경력동안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기질검사'같은 것에 회의적이다. 또 아이의 지능지수에도 별 관심이 없다. 아이가 취학전까지 큰 문제를 보이지 않는다면 요즘 유행이라는 풀배터리 검사도 받게 할 생각이 없다. 아이가 다니는 미술학원에서는 반을 편성하기 전 '성향파악수업'이라는 것을 했는데 그도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다만 그 학원의 커리큘럼이 맘에 들었고 어차피 보낼 것이었기에 규칙에 따랐을 뿐. 타고난 기질이나 성향은 이제까지 키워온 엄마 눈에 보이는 정도면 충분히 파악된 것이고 이 위에 바른 성품을 계발하는 것이 앞으로 아이의 몫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어떤 아이든 '꽤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이를 변화시키는 환경 중 가장 큰 것은 단연 가정이라는 것이다. 가정 이외의 것들은 부수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될놈될'은 딱 한명밖에 못봤으나 안타깝게도 '안될놈안될'은 꽤 봤으므로. 수학 부진학생에게 방과후에 교사가 아무리 남겨서 겨우 두 자릿수 덧셈을 이해시킨들, 가정에서 복습 및 꾸준한 학습이 되지 않아 또 덧셈 단원이 나왔을 때 머릿속이 깨끗이 리셋되어 허무했던 경험, 학교에서 학생이 스스로 하는 습관을 갖게 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집에서는 부모님이 다 해주셔서 습관이 붙지 않은 경험, 못된 언어습관을 고쳐주려고 애썼으나 집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비속어때문에 다음날 등교하면 또 똑같아지는 이런 힘빠지는 경험들이 차고 넘친다. 가정의 도움이 없다면 아이는 크게 변화하기 어렵다.


 요즘은 '될놈될'이라는 말이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하긴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변수가 많은 세상에 맞지 않는 말이겠지. 15년전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이제라도 이해하게 되어 다행이다. 적어도 아이들의 성장을 믿는 교사가, 엄마가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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