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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Jan 01. 2023

학교폭력 업무를 놓으며

 저의 2022년을 한 단어로 요약하라면 단연 '학교폭력'이었습니다. 올해 새롭게 옮긴 학교에서 제게 아주 무거운 업무를 부과한 것이지요. 10년 남짓의 경력 동안 용케도 힘든 일을 잘 피해왔던 저는, 그러나 제게 손가락이 향할 때 그것을 저버리는 깡은 없었습니다. 전입교사 중 저는 경력이 가장 낮았고 학교 규정에 의해 가장 마지막으로 업무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으니까요.


 이 전에 쓴 글들과 다르게 갑자기 경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 글이 누군가를 향해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은 저이기도 하고(새해니 스스로를 좀 대접해 주고자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초, 중, 고 어디에든 아이를 보내고 계시는 학부모님이기도 하고 또 학교폭력은 풍문으로만 들어본 운 좋은 여러분들이기도 합니다. 이 일을 그만해야 한다고 저를 향해 설득하는 글이기도 하고 관심을 가지고 이 제도의 개선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주십사 호소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저는 일을 많이 안해봤던 교사입니다. 특히 총 경력 중 3년은 육아휴직으로 빠집니다. 그래서 저의 시선이 일을 많이 한 누군가에겐 애송이의 그것처럼 너무 설익어 보일수도 있습니다.(실제로도 그렇기도 하고요) 하지만 동시에 가장 신선하고 비판적인 시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하려는 말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학교폭력 업무는 학교에서 분리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학교폭력 제도는 학교(교사)는 거의 아무런 권한도 갖지 못하면서 엄청난 책임만 부과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담당자를 비롯한 학교는 과도한 업무량과 학부모의 폭언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심지어 소송에 휘말리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거칠게 말하면 양쪽의 분노를 잠재울 샌드백이 필요해서 만든 제도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 학교폭력 제도는 피해학생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얼마 전엔 포털사이트의 메인페이지를 어슬렁거리다 네이트판 인기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딸아이가 동급생들에게 집단으로 성추행을 당해서 학교폭력 신고를 했고 사안이 중대하여 학교장 자체해결을 넘어 교육청 심의 위원회까지 갔는데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이 너무나 가벼워서 속상하시다는 글이었습니다. 제가 약하게 표현했지만 글 곳곳에선 어머니의 피끓는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그 글을 읽은 저의 첫 반응은 '충분히 저 정도 처분 나왔겠네.'였습니다. 사회봉사였던가요? 그것도 한 이틀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봉사면 굉장히 센 처분에 속합니다. 고작 1년 이 일을 한 제가 감히 말해보자면 현 제도로서는 집단 성추행한 학생들에게 그 정도 처분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저도 심의위원회에 사건을 넘겨보았는데 피해자 부모님이 사이다라고 느낄 만한 처분은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학교를 비롯한 교육청은 수사권이 없으니까요. 또 사안이 접수되면 가/피해 학생을 즉시 분리시켜야 하는데 최장 3일입니다. 최장 3일인 이유는 가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기 때문이랍니다. 그 3일간도 교사는 가해 학생을 위해 따로 수업 자료를 제작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아이는 운동장 체육을 같이 못하느냐' 라고 민원을 넣는 가해 학생 부모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3일이 지나면 가해학생은 다시 피해학생과 같은 교실로 들어옵니다. 그 후, 심의위원회 처분이 날 때까지 피해학생이 또 가해학생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를 막을 아무런 권한도 학교엔 없습니다. 그저 담임선생님이 잘 보고 관리하는것 밖에는요. 그 두 학생 외에도 2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폭력성을 가진 학생을 절대 못하게 감시하는게요? 그렇다면 다른 선량한 학생들은 교사의 시선을 언제 받을수 있을까요?


 반대로 교사의 힘만 빼는 사안도 있습니다. 학교폭력까지 갈 사안이 아니고 담임선생님 선에서 충분히 중재 가능해 보이는데 아이의 왜곡된 말만 듣고 '이것들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신고하시는 경우입니다. 그럴 경우에도 교사는 절차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매뉴얼대로 스텝을 밟아 나가는 그 과정이 만만치 않고 힘이 빠지지만 그래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업무는 모든 교사가 기피하는 일이고 해봤자 별 보람이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커다란 사회 문제인 학교폭력이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으로 이관되거나 교사가 아닌, 더 중립적이고 많은 권한을 가진 행정실무자가 학교에 파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학생을 정말 제한적으로만 징계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교사의 본래 임무는 '교육'이니까요. 교육으로 학생들을 성장시킬 임무를 가진 저희가 어떻게 학생을 향해 칼을 들 수 있겠습니까, 학교에서 처리하는 학교폭력은 출발부터 모순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저희 반 학부모님들은 모르시겠지만 학교폭력 사안이 신고된 10월부터 저는 학급에 쏟을수 있는 관심이 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저희 반 아이들이 피해를 본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합니다.


 이번 학년도는 이것으로 마무리 될 것이고 저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 학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 업무를 넘기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일을 맡았을 때 많은 선배 선생님들을 향해 원망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쩔수 없었음을 깊이 이해합니다. 이 일을 자진해서 맡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고 개인보다는 폭탄돌리기 하게 만든 제도에 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니까요. 문제가 있으면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럼, 학교폭력 업무가 학교를 벗어나 더 정확하고 엄정하게 다뤄질 새해를 기대해 봐도 될까요? 그럴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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