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뼈무덤(3)

by Imgettingbetter

꿈속에서 나는 팔공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은 닭뼈로 이루어져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뼈들이 바스라졌다. 아버지는 저 만치 앞서 가고 있었고, 나는 뼈무덤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것은 어젯밤의 일이었거나, 혹은 수많은 밤들의 반복이었다.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였다. 입안에는 모래가 가득했다. 뱉어도 뱉어도 모래는 계속해서 솟아났다.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환했다. 5월의 햇살이 커튼 틈으로 비집고 들어와 방바닥에 꽂혀 있었다. 먼지들이 빛기둥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민석은 없었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머리가 무거웠다. 입안이 깔깔했다. 혀로 입천장을 훑으니 어제 씹다 만 뼛조각 같은 이물감이 느껴졌다.

나는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5월 15일. 날짜 위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민석이 표시해 둔 것이었다. 그 동그라미가 나를 노려보는 눈동자처럼 보였다. 욕실 문이 열리고 민석이 나왔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나를 보았다. 민석은 부엌으로 가서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보글보글 국 끓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민석은 숟가락으로 밥을 꾹꾹 눌러 담아 내 앞에 놓아주었다. 나는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따뜻하고 슴슴했다.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 위장을 부드럽게 감쌌다. 하지만 목구멍은 여전히 좁았다. 밥알이 모래알처럼 겉돌았다. 민석은 묵묵히 밥을 먹었다. 콩나물을 씹는 소리가 아삭, 아삭 들렸다. 닭발을 씹던 그 힘겨운 턱짓과는 달랐다. 편안해 보였다. 나는 그 편안함이 낯설었다. 내가 없는 곳에서 그는 이렇게 편안한 얼굴로 밥을 먹었을까. 내가 강요한 취향이 사라진 식탁에서 그는 비로소 자유로웠을까.

식사를 마치고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검은색 슬랙스에 흰 블라우스. 결혼식에 가기에는 다소 어둡고 단조로운 차림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축하하러 가는 게 아니니까. 거울 앞에 섰다. 화장을 했다. 파운데이션으로 얼굴의 잡티를 가리고, 입술에 붉은색을 칠했다.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인디언 보조개가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컨실러를 덧발라 그 선을 지워버렸다. 엄마의 흔적을, 그 징그러운 유전을 지우고 싶었다. 민석은 침대 모서리에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가방을 챙겨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너무 애쓰지 마.

무엇을 애쓰지 말라는 걸까. 미워하는 것을? 아니면 이해하려고 하는 것을? 그것도 아니면 견디는 것을?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밖은 눈이 부시게 밝았다. 5월의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잔인할 정도로 화창한 날씨였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내 구두 굽 소리가 건물 전체를 울렸다. 또각, 또각. 그 소리가 심장 박동 소리와 엇박자를 이루며 나를 재촉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꽃가루가 섞인 미지근한 바람이 폐부로 들어왔다. 나는 언덕을 내려갔다.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었다. 무릎에 힘을 주지 않으면 굴러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비탈길을 내려가며, 민석이 묶어 내놓은 검은 비닐봉지를 생각했다. 그 안에 담긴 하얀 뼈들을 생각했다. 우리는 뼈를 발라냈지만, 그 뼈는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매립될 것이다. 썩지도 않고 분해되지도 않은 채, 영원히 그 형태를 유지할 것이다. 아버지의 욕망처럼. 여자의 체념처럼. 그리고 나의 혐오처럼. 나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멀리서 버스가 오고 있었다.

이전 06화붉은 뼈무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