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같은 기념일

by Imgettingbetter

날짜는요.

내가 물었다. 주어는 없었지만, 무엇을 묻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쌈장을 찍은 마늘을 씹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시선은 여전히 불판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5월 15일. 길일이라 하더라.

아버지는 불리하면 부처님을 찾거나 점집을 찾았다. 이명이 울렸다. 삐-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가 뇌를 관통했다. 5월 15일. 엄마와 아버지의 결혼기념일.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그 날짜를 입에 올렸다. 돼지 껍데기를 못 먹는 여자에게 껍데기를 먹이고, 엄마의 기일도 아닌 결혼기념일에 다른 여자와 식을 올리겠다고 했다. 그것도 엄마를 흉내 낸 여자와. 나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젓가락을 멈추고 물컵을 쥐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검게 염색되어 있었다. 정수리 부분에 하얗게 올라온 새치들이 보였지만, 나머지는 칠흑같이 검었다. 본래 갈색이었을 머리칼을 억지로 덮은 검은 물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부자연스럽게 번들거렸다. 여자의 손목에는 엄마가 즐겨 쓰던 향수 냄새가 났다. 샤넬 넘버 파이브. 묵직하고 파우더리한 그 향기가 돼지 껍데기 냄새와 섞여 묘한 악취를 풍겼다.

아버지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통해 재현된 엄마의 환영을 사랑하고 있었다. 여자의 몸은 캔버스였고, 아버지는 그 위에 엄마라는 그림을 덧칠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소주잔을 비우며 내 눈을 피했다.

엄마랑 아빠 결혼기념일이잖아요.

내 말에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몰랐던 눈치였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했다.

엄마도 축하해 줄 거다.

축하. 그 단어가 식탁 위에 툭 떨어졌다. 기름진 껍데기 조각처럼 미끌거리고 역겨웠다. 아버지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렇게 믿어야만 살 수 있는 걸까.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대체품이라는 사실을, 죽은 여자의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여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깨물며 침묵했다. 불판 위에서 껍데기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먹지 않아 숯덩이가 되어가는 껍데기. 가장자리가 말려 올라가 비틀어진 모양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환풍기는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연기는 우리 주위를 맴돌며 눈을 맵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탄 껍데기를 가위로 잘라냈다. 탄 부분을 잘라내고 남은 부분을 여자에게 권했다. 여자는 거절하지 못했다.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탄 껍데기 조각을 집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입안이 까끌거렸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씹고 있는 걸까. 무엇을 삼키려 하는 걸까. 저 여자는 자신의 존엄을 씹어 삼키고 있고, 아버지는 자신의 죄책감을 씹어 삼키고 있고, 나는 나의 분노를 씹어 삼키고 있다. 입안에서 돌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뱉어도 뱉어도 사라지지 않는 이물감. 그것은 돌을 씹는 기분이었다. 불판 위에서 마지막 껍데기 조각이 비틀어지며 타들어 갔다.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소주잔을 비웠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테이블 위에 경쾌하게, 그러나 우리에게는 둔탁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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