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앞서 걷고 나는 뒤따라 걸었다. 팔공산의 초입부터 등산로는 가팔랐다. 폭설이 내린 뒤 며칠간 영하의 기온이 이어지면서 흙길은 쇠처럼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땅은 검고, 그 위에 덮인 눈은 매연과 먼지를 뒤집어써 회색빛으로 오염되어 있었다. 아이젠을 챙겨 오지 않은 등산화 바닥이 빙판 위에서 위태롭게 미끄러졌다. 끽, 끽. 고무 밑창이 얼음 표면을 긁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났다. 나는 발가락에 잔뜩 힘을 준 채 걸어야 했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시작된 긴장이 발목을 타고 종아리로, 다시 허벅지로 기어 올라왔다. 호흡보다 먼저 발목이 지쳤고, 발목보다 먼저 마음이 지쳤다. 아버지는 멈추지 않았다. 붉은색 등산복을 입은 아버지의 뒷모습은 산의 무채색 풍경 속에서 이질적으로 선명했다. 그는 늙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 짐승처럼, 오로지 정상을 향해 묵묵히 다리를 움직였다. 그의 등산화는 망설임이 없었다. 미끄러운 곳은 찍어 누르고, 가파른 곳은 치고 올라갔다. 아버지의 배낭에 매달린 스테인리스 컵이 걸을 때마다 달그락거렸다. 그 규칙적인 소음이 나의 보폭을 강제하고 있었다. 달그락. 한 걸음. 달그락. 두 걸음. 그것은 마치 나를 조종하는 메트로놈 같았다. 아버지는 팔공산 정상에 부처가 산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너덜너덜해진 소원들을 꼬박꼬박 접수하고 그중 하나는 기어이, 억지로라도 들어주고야 마는 고집스러운 존재가 산 정상 바위틈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오랜 신앙이자 생활의 방식이었다. 무언가를 믿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이 그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죽고 난 뒤, 아버지는 텅 빈 집 안에서 혼자 밥을 차려 먹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낡은 식탁 위에 놓인 김치와 식은 국, 그리고 맞은편에 놓인 빈 밥그릇. 숟가락으로 밥을 퍼 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그 무게감을 견디기 위해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신을 밥상 머리에 앉혀두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씹고 삼키는 일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혹은 그 고단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믿음이라는 양념이 필요했을 것이다. 씹히지 않는 돌 같은 생(生)을 삼키기 위해서. 아버지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혹은 그 믿음이라도 붙들지 않으면 발밑이 꺼질 것 같아서 새해 벽두부터 등산을 제안했다.
가자. 가서 빌어야지.
무엇을 비느냐고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무언가를 채우고 싶어 했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혹은 신의 가호든, 비어 있는 꼴을 견디지 못했다. 아버지는 냉장고가 비어 있는 것을 싫어했고, 쌀독이 바닥을 보이는 것을 불안해했으며,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참지 못했다. 비어 있다는 것은 그에게 곧 죽음과 동의어였다.
아버지는 민석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다. 민석은 오지 않았다. 가서 같이 빌면 좋지 않겠느냐고. 민석은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시급을 두 배로 쳐준다는 편의점 사장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제가 다음에는 꼭...
됐다. 소원은 내가 대신 빌어주마.
아버지는 쿨한 척 말했지만, 현관에 쭈그리고 앉아 등산화 끈을 묶는 손길은 거칠었다. 끈을 잡아당기는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툭, 투둑. 끈이 끊어질 듯 팽팽해졌다. 민석이 없는 산행은 건조했다. 아버지의 등산화가 얼어붙은 땅바닥을 찍는 소리, 쇳소리가 섞인 내 거친 숨소리, 그리고 겨울바람이 마른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만이 존재했다. 우리는 대화 없이 걸었다. 대화는 호흡을 낭비하는 일이었다. 입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이닥쳐 기침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등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뇌 속을 텅 비우려 애썼다. 하지만 걸을수록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민석의 편의점, 폐기 시간이 지난 삼각김밥, 아버지의 재혼, 엄마의 유품, 그리고 돼지 껍데기 냄새. 그 냄새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여 어지럼증을 유발했다.
민석이만 있으면 딱인데.
한참을 걷던 아버지가 멈춰 서서 말했다. 숨이 차지도 않는지 목소리는 평온했다. 아버지는 등산로 옆에 쌓인 돌무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공들여 쌓았을 타인의 염원들이 길가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크고 작은 돌들이 서로의 모서리를 의지한 채 중력을 버티고 있었다. 어떤 돌은 둥글고, 어떤 돌은 날카로웠다. 납작한 돌 위에 둥근 돌이, 둥근 돌 위에 뾰족한 돌이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었다. 접착제도 없이 오로지 무게중심 하나에 의지한 그 탑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면서도 용케 버티고 있었다. 그 불안한 균형이 아버지의 삶과 닮아 보였다. 아버지는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마신 뒤,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그 녀석도 와서 빌었어야 했는데. 그래야 일이 잘 풀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