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정상의 부처(2)

by Imgettingbetter

아버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의 뒤를 따르다 멈춰 섰다. 내 발치에 작은 돌탑이 있었다. 무릎 높이 정도 오는 소박한 탑이었다. 누군가 간절한 마음으로 올렸을 맨 위의 작은 돌멩이가 바람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 돌을 응시했다. 회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평범한 자갈이었다. 저 돌을 올린 사람은 무엇을 빌었을까. 가족의 건강? 로또 당첨? 아니면 지긋지긋한 불행의 끝?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돌멩이 하나에 의지해야 할 만큼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소원일 것이다.

나는 등산화 코로 돌탑을 툭, 건드렸다. 와르르. 균형을 잃은 돌들이 무너져 내렸다. 돌이 구르는 소리가 계곡 물소리처럼, 혹은 마른 뼈가 부딪히는 소리처럼 서늘하고 건조하게 들렸다. 그 소리가 좋았다. 공들여 쌓은 것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볼 때 느껴지는 기묘한 쾌감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건 찰나였다. 중력을 거스르며 버티던 것들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은 일종의 해방감마저 주었다. 무너진 돌들은 더 이상 위태롭지 않았다. 바닥에 납작하게 깔린 채로, 비로소 편안해 보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겨울 산은 적막했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몇 걸음 더 가서 또 다른 돌무더기를 찼다. 이번에는 조금 더 큰 돌이 굴러떨어졌다. 둔탁한 소리가 흙바닥에 박혔다. 흙먼지가 아주 조금 피어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너 자꾸 그거 무너뜨리면 부처님이 소원 안 들어주신다.

앞서 가던 아버지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등산용 스틱이 규칙적으로 바닥을 찍는 소리가 났고, 아버지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입김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아버지는 보고 있지 않아도 보고 있었다. 등 뒤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나의 사소한 일탈을 감지했다. 아니,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돌이 무너지는 그 명쾌하고도 파괴적인 소리를.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내 목소리는 차가운 공기 속에 섞여들지 못하고 겉돌았다.

나는 무너진 돌무더기를 뒤로하고 걸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앞서 걸었다. 그는 언제나 앞서 걷는 사람이었다. 뒤처진 사람의 숨소리나 발목의 통증 따위는 듣지 못하는, 튼튼하고 무심한 등판을 가진 사람. 그 등판은 거대한 벽처럼 나를 가로막고 있는 동시에, 나를 끌고 가는 닻이기도 했다. 나는 그 닻에 매달린 작은 배처럼, 아버지의 물살에 휩쓸려 가고 있었다. 나는 그 등을 보며 생각했다. 나의 믿음에 대하여. 혹은 믿음이 깨져버린 순간들에 대하여. 나에게도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돌멩이 하나에 온 우주를 걸었던 시절이. 부처가 내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믿었던 순진한 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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