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정상의 부처(3)

by Imgettingbetter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도이량이라는 아이를 좋아했다. 도라에몽을 닮아 별명도 도량이었던 아이. 도량이는 반에서 키가 제일 컸고, 목소리도 제일 컸다. 웃을 때마다 눈이 반달처럼 휘어지며 세상의 모든 걱정을 주머니 속에 넣어버릴 것 같던 그 아이. 그 애가 웃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되었다. 도량이가 준비물이 없는 나에게 슬쩍 지우개를 건네주었을 때, 체육 시간에 넘어진 나를 일으켜주었을 때, 나는 그 애가 내 세계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 할머니를 따라나선 팔공산 등산길에서, 나는 헐떡이는 숨을 삼키며 빌었다. 그날도 산은 가팔랐고, 내 다리는 짧았다. 하지만 힘들지 않았다.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사촌 언니의 대학 합격을 빌었다. “우리 애 서울에 있는 대학 떡하니 붙게 해주십시오.” 할머니의 기도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다. 합격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 옆에서 나는 고작 열두 살의 연애를 빌었다. 부처님이 듣기에는 얼마나 하찮은 소원이었을까.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사촌 언니의 대학보다 도량이의 웃음이 더 중요했다. 내 세계의 중심은 도량이었으니까. 정상에 닿았을 때 거대한 석조 불상은 무심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을 깎아 만든 눈동자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했고,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낡은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매트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수많은 사람의 땀 냄새가 섞인 묘한 악취가 났다. 그 냄새는 간절함의 냄새였다. 수만 번의 절과 수만 번의 기도가 눌러 담긴 냄새.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절을 했다. 매트의 차가운 냉기가 무릎을 뚫고 들어왔다.

한 번. 도량이랑 짝꿍 하게 해주세요.

두 번. 도량이가 나를 좋아하게 해주세요.

세 번. 우리 둘이 사귀게 해주세요.

기도는 거래였다. 내 무릎의 통증과 이마에 흐르는 땀을 바칠 테니 그 애를 내게 달라는 거래. 나는 108배를 하라는 할머니의 말에 군말 없이 따랐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핑 돌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났지만, 그 피조차 제물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뒤,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그것이 부처의 영험함인지, 아니면 그저 때마침 도량이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던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기억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성공 사례인 것처럼.


그때 네가 남자친구 생겼다고 방방 뛰었었는데. 기억나냐?

네가 그랬잖아. 부처님이 진짜 소원 들어줬다고. 팔공산 부처님 용하다고. 네 입으로 그랬어.

아버지는 십 년도 더 된 일을 어제 일처럼 끄집어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느라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지만 아버지는 옛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의 호흡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 말을 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산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 웃음소리는 어쩐지 공허하게 들렸다.

아버지는 기억력이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기억해야 할 것들만 선별적으로, 지독하게 기억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기억들은 절대로 잊지 않았다. 그것들을 박제해서 진열장에 전시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닦았다. 반짝반짝 빛나도록. 반면 잊고 싶은 것들은 철저하게 지웠다. 엄마가 아파서 밤새 신음하던 소리,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전전긍긍하던 날들, 엄마가 죽던 날의 그 차가운 공기는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지워져 있었다. 엄마가 “이제 그만 나를 놓아달라”고 애원했던 마지막 순간조차, 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척했다. 혹은 기억을 조작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끝까지 살고 싶어 했다고.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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