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아버지는 다시 팔공산을 찾았다. 그때 아버지는 엄마를 닮은 여자를 찾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는 그 소원이 끔찍했다. 엄마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인데, 어떻게 엄마를 닮은 다른 여자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엄마는 대체 가능한 부품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진지했다. 갓바위 앞에서 밤을 새워가며 빌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그 여자를 데리고 왔다. 삼일빌딩 6층 돼지 껍데기 집으로. 내가 그 여자와의 재혼을 반대했을 때도, 아버지는 다시 팔공산에 올랐다. 기어이 허락을 받아내게 해달라고. 내 마음을 돌려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허락하고 말았다. 아니, 포기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그 지독한 믿음에 질려버려서, 나는 백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이겼다. 부처가 이긴 것일까. 아버지의 소원은 늘 이루어졌다. 엄마가 사라진 자리에 엄마를 흉내 내는 가짜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은 ‘진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빈자리가 채워지기만 하면, 그 내용물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듯이 아버지는 억척스럽게 소원을 빌었다. 그것은 일종의 공포였을까. 혼자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 고독사(孤獨死) 뉴스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텔레비전 앞에서 혀를 차던 아버지의 등은 작고 초라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