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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매맘스하루 Mar 27. 2024

운명처럼 온 나의 특별한 손님

어쩌다 보니 딸 다섯, 아들 하나

세상 곳곳을 누비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자유롭게 다니다가 결혼했다. 동시에 따뜻하고 포근하고 안정된 생활에 반해 아이를 한 명씩 낳고 산 것이 어느덧 여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옛말에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했던가? 나는 내 눈에 콩깍지가 씌어 아이를 키웠던 것 같다. 한 명 두 명 사랑의 콩깍지에 씐 듯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떻게 그렇게 살아왔는지 나 스스로도 내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산 지 20년째다. 가족 구성원이 8명이다. 가족관계 서류를 떼면 2장이 넘어간다. 그동안 밝은 아이들과 살았지만 ‘그 안에 나의 삶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밝은 낮인데도 앞이 깜깜했다. 아이들이 울 때는 달래느라 몰랐고, 아이들이 웃을 땐 녹을 것 같은 마음에 몰랐다. 나의 삶은 둘째치고 하루가 어찌 갔는지 모르게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아이가 울면 강제로 기상해야 하는, 루틴 따위 1도 없는 뒤죽박죽 삶이었다. 남들 보기엔 알콩달콩 행복하고 부러운 집이지만, 사실 나는 힘겹기만 했다. 꿈은커녕 앞이 막막하고 하루 살아내기 바빴다. 내가 보는 세상은 SNS 속의 행복해 보이는 세상이었다. 거기엔 멋진 사람들뿐이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나도 예쁘고 좋아 보이는 사진 몇 장을 올렸다. 그 사진에 달린 달콤한 댓글을 보며 행복해했다. 속으로는 울면서도 겉으론 웃었다. 연예인도 아닌 것이 가짜 연예인처럼 살고 있었다. 슬픈데도 억지웃음을 지었다. 마치 연필로 그려 놓은 피에로 같았다.


어느 날, 아이들이 연달아 열이 나고, 토하고, 설사를 하며 아팠다. 토한 아이를 닦아주고 방바닥을 치우고 나니, 다른 아이가 변기 물을 휘젓고 있었다. 다른 아이가 음식물을 다 쏟아 놓고 거기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나는 놀랄 겨를도 없이 또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를 씻기고 청소를 했다. 하나둘셋넷…. 없는 아이 살피다 보면 아슬아슬하게 창문으로 올라가고 있는 아이를 마치 국가대표 운동선수 마냥 낚아챈다. 그 순간은 아픈 줄도 모르고 키웠다. 시간이 지나 멍이 든 걸 보고서야 아프다는 걸 실감했다. 외출할 땐 아예 앞뒤 양옆으로 업고 안고 다녔다. “안 힘드세요?” 하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아, 예.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분은 내가 묘기라도 하는 듯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등에서 배에서 양손에서 내려놓으면 더 힘들다는 걸 그 사람은 모른다. 이런 날엔 아이들을 배터리 빼놓은 듯 재우고, 그 배터리를 나에게 끼워 펑펑 소리 내어 울었다. 눈물 콧물은 덤이었다. 어느 회사인지 성능 좋은 최신형 배터리가 틀림없다. 밤새 울었는데도 끄떡없었으니.


아이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는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노래를 듣곤 했다.


“힘든 일은 왜 한꺼번에 오는지,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널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바로 옥상달빛의 노래다.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이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노래를 듣던 중 내가 생각났다고 하셨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이 같은 노래를 듣고 “이거 니 노래 아니야?”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내 노래인가 보다….


지금은 수고한 나를 토닥이며 이 노래를 듣는다. 아이들이 차려준 밥을 먹고, 아이들이 어린 동생들을 돌봐주는 동안 차도 한 잔씩 마신다. 누구는 전교 1등이란다. 어떤 아인 애교가 많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피며 내 감정을 읽는다. 그리고 안마도 해준다. 그간 네 잎클로버의 행운을 찾느라 세 잎클로버의 행복을 놓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행복에 둘러싸였으면서….




생각해 보니 나는 꽁꽁 닫고 살았다. 사실은 웃는 얼굴로 남의 얘기는 잘 들어주지만, 내 얘기는 잘하지 않았다. 아이들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기에 바빴지, 나를 돌보지는 못했다.


그 옛날 우리 엄마가 했던 것처럼 나도 똑같이 그러고 있다. 예를 들어 사과 몇 쪽이 생기면 좋은 거 애들 주려고 냉장고에 넣어 놓고 나는 먹지 않고 기다렸다 애들 깎아줄 때 밑동 쪼끔 먹는 거, 아님 “껍질이 몸에 좋데~” 과일껍질 먹기.”엄마 뭐 먹고 싶어?” “엄마는 괜찮아~ 니들 먹고 싶은 거 먹어.”사탕 하나 생겨도 내 입이 아닌 가방에 들어간다. 조만간 아이입에 들어가 있겠지? 생각해 보니 서운함은 내가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늘 나에게 묻고 챙겨줬는데 난 왜 내 몫을 챙기지 않고 깊숙이 넣어두거나 쟁여두고 나눠줬을까? 내가 엄마라서? 새끼를 챙겨야 해서? 그런 엄마만 봐와서? 그래야만 할 것 같고 내 맘이 편하다는 이유로 난 내가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걸 미뤘다. 하지만 내 속이 편하고 내가 밝아져야 집이 잘 돌아가는 걸 안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달라져야겠다. 내 몫을 내 자리를 찾아야겠다. 그렇게 나의 힘을 키우고 내 안에 내 얘기를 잘 들어줘야겠다. 그게 내 욕심과 절약이 아닌 더 잘 살아낼 원동력이 된다는 걸 알기에~  “엄마는 커피마실게~” “나 도서관 좀 다녀올게~!” “이것 좀 도와줄래??” “엄마는 고기 좋아해~!!”내 존재감을 찾아야겠다. 아무거나랑 괜찮아는 이젠 안녕~! 하지만 아무 때나 남발하면 안 되겠지? “엄마 왜 저래~ 갑자기 변했어~ 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데”  이런 결과는 아니 니깐.. 하하.. 이렇게 변한 거 없이 마음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내속에 내가 웃고 있다. 힘내자~ 정혜숙~!! 나에게 온 특별한 손님들과 잘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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