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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노르망 Nov 08. 2023

산책하다 산 책

열두 번째 산책로 - 『빛의 과거』


열두 번째 산책로 - 『빛의 과거』  



 『빛의 과거』로 말하면, 망막에 이상이 왔다는 사실을 알기 전 무심결에 집어 들었던 책이다. 다른 독서가들의 습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순간 마음에 들거나 꼭 읽겠다 싶은 책이 중고 서점에 나타났을 때 미리 홀딩해 두는 버릇이 있다. 그러자니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꽤 된다. 이런 버릇은 중고 서점을 오랜 기간 오갔던 습관으로 강화된 면도 있을 것이다. 그 책이 언제까지 그대로 있을지 예측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빛의 과거』가 바로 그런 습관의 수혜자로 낙점된 책이었다. 


딱히 은희경 작가를 좋아해서였다기 보다는 – 그러기에는 이 작가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었다 – 이름이 익숙한 작가에 대한 독서의 의무감, 혹은 몇 번이고 이 작가의 책을 읽고자 결심했음에도 번번이 무산되곤 했던 데 대한 일종의 보상 심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중고 책이지만 신간이었기에 상태가 양호했고, 무엇보다 책의 간명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몇 광년 너머의 머나먼 우주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현재의 빛이란 이미 멀고 먼 별에서 오래전에 뿜어져 나온 과거의 빛, 즉 빛의 과거일 것이다.





작가가 의도한 바가 이러한 나의 생각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독자로서 나의 차원에서 작품을 읽어낼 뿐. 그런데 이런 내 생각대로의 해석은 때로 절묘하게 내가 처한 상황 –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 과 일치할 때가 있다. 마침 이 책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작품을 읽기 전 미리 작가 후기를 흘끔거리는 것 또한 나의 오랜 독서 습관 중 하나다. 그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유독 강할 때, 그리고 그 작품이 쓰인 의도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둔 채 책을 읽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독서의 순서를 과감히 역행하여 작품 후기를 슬쩍 훔쳐본다. 『빛의 과거』의 후기를 마주하다가 무심결에 거기에 남겨진 작가의 고백을 듣게 되었다. 은희경 작가가 이 책을 출간하고자 했던 당시, 그만 망막에 구멍이 생겼다는 사연이었다. 


초고도 근시인 까닭에 항시 시력에 민감하고, 망막 열공이나 박리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던 나로서는 작가의 이 상황이 충분히 공감되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고르고 작가 후기를 먼저 읽은 시점은 아직 내가 망막 질환을 얻기 이전이었으므로, 그 공감의 정도가 망막 변성 이후만큼 강력하지는 않았으리라 추측된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시점은 눈에 이상이 온 이후였다. 그리고 나는 사실 이 책을 읽기보다는 ‘듣게’ 되었는데, 그것은 안구 주사를 맞은 이후 직접 내 눈으로 책을 읽을 수 없어 룸메이트의 낭독으로 독서를 대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작가 후기만 읽고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작가를 동정하는 입장에 있었다가, 나 역시 작가처럼 망막에 문제가 생기고서야 비로소 책의 내용과 만난 것이다.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작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동병상련의 어조로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빛의 과거』는 처음 몇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온전히 ‘듣기’를 통해 완독 한 책이라는 점에서도 내겐 의미가 깊다. 하지만 보통 인상 깊은 문구들을 필사하며 꼼꼼히 독서에 임하는 나의 독서 습관을 영 벗어나서인지, 이 책의 내용이 세심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재회한 대학 시절 친구로 인해 되살아난 과거의 기억들이 주 내용을 이루었다는 정도이다. 


다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은희경 작가 특유의 섬세한 화법이 흥미로왔고, 70년대 후반이라는 작품의 시간적 배경과 여자 대학 기숙사라는 공간적 특성이, 실제 그 공간을 경험한 바 있는 내 어머니의 회상 멘트들과 어우러지며 친숙하고 아련하게 다가왔다. 어머니의 시대가 뿜어내던 빛이, 이 소설을 통해 지금의 세대에 막 도달한 느낌이랄까. 


동시에 그 책은 작가의 망막 열공을 그저 타인의 경험으로 마주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머지않아 비슷한 질환으로 고통받게 된 상황에 처해서야 실감하게 된 어떤 기이한 빛이자 메시지이기도 했다. 또한 그 책은 내 눈의 상태가 양호했던 빛의 시절의 과거이기도 했다. 그러니 은희경 작가가 뿜어낸 글은 여러모로 보아 내겐 『빛의 과거』라 할 만하다. 


또한 그 과거의 빛은 나의 미래에도 끊임없는 영향을 끼치게 될 터였다. 『빛의 과거』 이후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라는 또 다른 단편집을 시작으로 『새의 선물』에서 『비밀과 거짓말』에 이르기까지. 사고의 속도를 광속으로 높여가며 이후로 나는 은희경 작가의 매력적인 과거와 현재의 작품들을 섭렵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때로 하나의 작품은 그 작품을 쓴 작가가 미처 의도하거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확실히 그건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 경험과 본성, 독서 취향 및 관심의 방향, 그가 처한 특별한 상황 등과 결부되어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기도 한다. 독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책의 제목이나 내용은 도리어 책 속의 주인공들보다 독자들 자신에게 한층 더 걸맞게 각색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가 ‘작가의 죽음과 텍스트의 열림’이라고 표현했던바 역시 이와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 역시, 먼 훗날 누군가에게는 작게나마 빛이 되어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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