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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r 10. 2024

좁쌀 같은 내 인생


좁쌀같이 생각하니까 좁쌀같이 사는 거야.


내 인생이 다른 이에 비해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빠의 한 마디에 현타가 왔다. 이런 말을 듣게 된 배경은 요즘 세상이 하도 비트코인과 엔비디아로 뒤숭숭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없고, 비트코인 없는 인생은 좁쌀이 되어버리는 세상이다.


아빠는 투자에 관심이 많으시다. 시골에서 농사만 수십 년째 지으시는 70세 할아버지가 어떤 젊은이보다주식 시황 유튜브나 투자 관련 방송을 많이 들으신다. 공모주 청약 일정도 빠삭하시고 많은 수는 아니지만 배당받은 주식 공모가가 따상에 따따상까지 간 적도 있다. 무려 테슬라가 천슬라라고 불리던 시절에 주식을 갖고 계셨고 애플이 100달러 언저리였을 때부터 모았던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다.


어린 시절부터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7시 뉴스를 보던 그때에도 뉴스 끝날 때 올라가던 그날의 주식 시세의 빨간 세모와 파란 세모는 강렬했다. 뭔지는 몰라도 그때에도 아버지가 갖고 있던 한국통신(현 KT) 포항제철(현 포스코),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의 가격의 등락은 매일매일 확인했던 것 같다.  좀 커서는 겨울 방학 정규방송이 나오지 않을 때에도 텔레비전에서는 한국경제 TV 같은 주식 시황, 투자 상담 방송을 봤었다.


환경은 투자를 배우기 적합한 환경이었는데도 나는 그야말로 투자에 있어서는 문외한이었다. 돈이란 일을 해서 벌어야만 그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저축과 절약은 한 세트이고, 그렇게 정년까지 일해서 연금을 받고 노후는 편안하게 살면 최고라고 생각했다. 코로나 이후 주식 시장이 고꾸라졌다가 천장을 뚫을 때도 그런 상황은 전혀 몰랐다. 그냥 하루하루 우리 식구 잘 살고 내 일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좁쌀 같은 생각은 와르르 쏟아지던 수많은 기회들을 모두 놓치고 나서야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사실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껄무새 등장이다.


1. 2021년 3~4월 무렵 애플이 119달러였을 때 조금만 더 내리면 사려고 했던 것이 슬금슬금 오르자 기어이 못 산 일. 그러다가 2022년 다시 그 가격이 왔을 때는 뚱뚱하고 멍청한 네이버를 부여잡고 있느라 못 산 일.


2. 현금이 있었는데도 2022년 3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세상이 뒤숭숭했을 때 더 떨어지면 어쩌지 무서워서 갖고 있던 ETF가 좋은 가격이었는데도 추가 매수를 못 한 것.


3.  2023년 10월 코스피 2200 무너지네 마네 하던 그때! 미국 시장도 급락했을 때 있던 현금으로 뭐라도 하나 잡아 매수하지 못했던 일. 금리가 쉽게 떨어지지 않아 TLT(미국 장기채권 ETF)가 80달러 언저리까지 떨어졌을 때 갖고 있던 달러로 사지 않고 좀만 더 떨어지면 사자고 했던 것이 그 후 급속하게 오른 일. 그 이후 S&P500 주식들이 훨훨 날아가버렸다.


투자를 미루던 그때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확신을 요구하는 잘못된 편향이었다.

주식 시장처럼 급변하는 세계에서 확신을 바라다 확신을 얻게 된 것은 이 세상은 내가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 하는 자기 불신이었다. 하루를 온전히 바치고 정신까지 너덜너덜한 상태로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하며 투자 공부는커녕 이 가족을 유지하는 것도 버겁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들은 거듭 찾아오는 기회마저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애쓰고 산 결과가 좁쌀 같은 인생이라니.

농담처럼 날아온 한마디가 안고 있던 주머니를 터트려 그 안의 수많은 좁쌀들이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손으로 막으려 해도 한번 터진 주머니가 저절로 막힐 리 없고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넘쳐흘러 떨어졌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놓친 기회를 후회하며 사는 것보다. 기왕 깨지고 아픈 거 한번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사실 아빠가 나에게 한 말은 지나가는 말로 곱씹을 정도의 비난은 아니었다.

상황은 이랬다. 비트코인이 오르기 전에 아빠는 코인 상승세가 있을 거란 여러 유튜버들의 썰을 듣고 조금 있던 현금이나마 들어갈까 고민했었는데 결국 못 들어갔다고 후회하셨다. 아빠 말에 따르면 동생은 비트코인 소수 한자리 개수만큼은 들고 있다고 한다. 동생이 나에게 얼마 전 서울 아파트 무순위 청약 소식을 알려줬고 나는 그냥 흘려 들었는데 경쟁률이 150만 대 1이라나 뭐라나. 그런 확률에 기대 이런저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청약을 넣을 성격이 아닌 내가, 남들 다 하는 코인도, 미국주식도 안하는 딸내미가 아빠는 답답했던 모양이다.



해보고 안 된 것과
시도도 안 했으면서 안 될 거라고
미리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


그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

겨울 내내 들었던 실전 투자 강의를 다시 곱씹어 듣다가 이런 강의를 들어도 결국 귀에서만 맴돌다 손가락까지 이어지지 않았던 수많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확신이라는 오지도 않을 신을 기다리다 자산을 늘릴 수 있는 최적기인 지금을 놓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좁쌀 같은 한 줌도 안 되는 가진 것을 움켜쥐느라 진짜 내 삶이 바뀔 수 있는 시간에 손만 바라보고 웅크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되돌아보게 한 아버지의 한 마디.


하루를 살아도 피보다 진하게 살라는

어떤 부자의 이야기처럼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시간을 한번 시작해야겠다.

더이상 가족이든 어떤 누구에게도 좁쌀로 불리긴 싫다.

(오늘부터 코인, 주식하겠다는 선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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