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은 사 먹는거야.
주말에 친정에 갔다. 더운 날씨에 아버지 잘 계시는지 궁금하여 오랜만에 간 친정 나들이였다. 토요일 점심때에 맞게 도착하여 아버지와 점심을 먹은 후 집에 올라왔다. 6월인데 벌써 일주일째 푹푹 쪘다. 이렇게 6월부터 더우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면 어떻게 될는지 이번 여름이 걱정이었다.
아이들과 집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걷는데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뒷마당으로 향했다.
십몇 년 전 이 집을 지을 때 뒷마당에 심었던 앵두나무가 빨간 앵두를 가득 달고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어느새 무성해진 가지와 잎사귀 사이로 빨간 앵두가 여기저기 잔뜩 달려있었다. 한 움큼 따서 입안에 털어 넣었다. 조금 때가 지난 것 같았지만 여전히 시고, 달큼한 과즙이 입 안 전체를 휘감았다. 엄마가 먹는 모습을 보자 아이들도 한 두 개 열매를 따서 조금 내려앉은 먼지를 후 불고 올해 첫 앵두를 맛보았다.
역시 입맛은 통했는지 점심 먹고 배가 통통한 녀석들이 뒷마당에서 떠날 생각을 않는다.
이 가지 저 가지 나무를 돌면서 자기 손에 닿는 앵두를 처음엔 한 두 개, 나중에 주먹 가득 모아서 딴 후 입에 넣는다. 한 개 두 개 먹어서는 제 맛을 알기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입 안에서 우물우물거리더니 볼 안쪽에 씨앗을 몰아넣고 다 먹은 후 후두두둑! 총 쏘듯 씨를 뱉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이었나 보다.
나는 슬며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앞마당이었다.
처음 집을 지을 때 집 주변으로 오가피나무, 은행나무, 호두나무, 체리 나무, 보리수, 향나무, 철쭉에 소나무까지 엄마 아빠 두 분 취향껏 심은 나무들이 제때 전정을 하지 않아 거의 숲처럼 무성했다.
그 무성한 틈에서도 역시 돋보이는 것이 있었다.
보리수 열매였다.
보리수는 볼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 슬프다. 하지만 올해는 다 물러터진 열매가 아니라 싱싱하고 반짝이는 열매가 주먹만 하다. 과장이 심한 듯 하지만 앵두와 달리 통통한 보리수는 내 손가락 윗마디 하나 정도의 크기여서 먹을 때 한 개뿐이라도 입 안을 꽉 채운다.
첫맛은 달콤하고, 씨앗에 닿을 때면 떫은맛이 과히 상쾌하다.
새빨갛게 칠한 손톱처럼 반들거리고 매끄러운 과육은 목 울대를 넘어 그대로 넘어가버린다.
그리고 앵두처럼 씨앗은 툭! 무심히 뱉으면 끝!
이렇게 멋진 열매들이 온 마당에 가득한데 문득 한동안 잊고 있던 요리 본능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지금이야 공들여 반찬 해 먹는 것보다 한 끼 배불리 먹으면 그만일 고기, 계란 반찬으로 하루 하루 해 먹고 그마저도 일주일에 두어 번 배달을 시켜 먹고 있으니 한 집안의 살림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반성할 일이다.
그래! 잼이다.
이 맛있는 열매를 그냥 놔둘 수 없다.
놔두면 땅에 떨어져 흉해지고, 나무에 달려 있어도 맛을 잃고, 새들이 따 먹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러려고 아버지, 어머니가 심은 것은 아닐 텐데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
앵두잼? 어릴 때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 마치고 부슬부슬 비가 오던 날이었는데 엄마가 동생과 나를 시켜 앵두를 따라고 했다. 그때 살던 집에도 마당에 앵두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그게 그 시절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은근한 자랑이었다.
아무튼 비도 오는데 앵두를 따자니 가지에 찔리고, 잎사귀는 걸리적거리는데 우산은 들기 거추장스러웠다. 그냥 가지를 꺾어서 후드득 쓸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동생의 아이디어였던가? 쓰고 있던 우산을 뒤집어서 가지에서만 떨어뜨리고 나중에 한 번에 모아 담기 시작했다. 입은 오물오물 앵두를 먹고, 손은 바삐 놀리다 보니 금방 큰 소쿠리 가득이었다. 엄마는 큰 채반에 씻어 담고 솥단지 하나 가득한 앵두를 끓였다. 중간에 과육이랑 씨앗을 어떻게 분리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약간 탄 맛이 났지만 달콤했던 앵두잼은 식빵이 듬뿍 올려 먹으니 꿀맛이었다.
그래! 이거다! 든든한 앵두잡이? 가 세명이나 있어서 앵두 두 소쿠리는 금방이었다.
우리 집이 아니라 없는 유리병이랑 설탕을 남편이 사러 간 동안, 나는 앵두 씻기와 꼭지 따기를 했다. 아이들이 마구잡이로 딴 앵두는 조그만 꼭지가 다 달려있었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꼭지를 딸 때만 해도 금방 되겠거니 했는데 더 큰 문제는 내가 앵두잼 만드는 레시피를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무조건 감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단 앵두를 설탕에 넣고 끓이면 과육과 씨앗이 분리가 잘 된다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되돌아갈 수 없을 때 알게 되었고 나는 자연 그대로의 상큼한 앵두를 한 알 한 알 터트렸다.
위생장갑과 체를 준비했지만 과육이 커서 체에 눌러 앵두를 터뜨려도, 잘 내려가지 않아 체가 금방 과즙으로 막혀버렸다. 손가락 끝으로, 또는 손바닥으로 일일이 열매를 터뜨려서 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그 와중에 아들은 자기도 하겠다며 달려드니 짜증이 치솟았다.
할 거면 손톱을 깎고 손 여러 번 비누로 씻어 오라고 했더니 생전처음으로 손톱을 깎은 아들이었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둘이 나았다.
나는 사서 한 고생이고, 노동이고, 심지어 짜증스러웠는데 아들은 그 모든 게 놀이였다.
재밌다면 열매를 짓누르고, 재밌다면서 씨앗을 고른다. 뭐든 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나로서는 요행을 바랄 수 없는 수작업이 고통스러웠지만 놀면서 한 아들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제일 힘든 과육과 씨앗 분리가 끝나고 이제 중간 불에 뭉근히 끓이는 일만 남았다.
때 이른 삼복더위에 화산처럼 부글부글 끊는 잼이 팔뚝에 튈 때면 어린 시절 내가 먹었던 추억의 앵두잼은 악에 받친 인내와 고통의 잼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내가 이걸 다시 만들면 인간이 아니다.
잼은 사 먹는 거다.
수제잼이 비싼 이유가 다 있다!
라면서 악다구니를 떨었는데.
추억은 지나고 나면 항상 아름다운 법이다.
일요일 하루를 통째로 바꾼 잼이 5병.
새벽 3시 잠에서 깨서, 식힌 쨈을 병에 담노라니 잠결이라도 뿌듯했다.
딸이랑 이따금 하는 쎄쎄쎄 놀이 중
잼 먹고 놀이가 있다.
"잼 먹고 잼 먹고 잼잼 먹고 먹고, 너 먹고 나 먹고 프라이팬팬! 프라이팬팬! 엄마가 시장에서 돌아오신다."
본격적인 여름이 이미 시작된 요즘.
노랫말이 아닌 진짜 잼들이 가득한 우리 집 냉장고.
만드는 과정의 고통은 이미 추억이 승화되어 자랑스러운 수제잼으로 거듭났다.
달콤한 잼 같이 만들어 먹으니 좋구나.
다시는 만들지는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