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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n 24. 2024

아빠의 카톡 프로필

카톡을 자주 보지 않는다. 예전엔 카톡 프로필을 바꾸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고, 다른 사람들 프로필을 보면서 근황을 아는 것도 쏠쏠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것도 뜸해졌다. 카톡으로 안부를 나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지인들의 새로운 메시지보다 광고 문자, 개인정보 동의 문자 등이 더 많이 오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남편이 금요일 오전에 보냈다던 카톡도 일요일에서야 확인했다.

이 정도면 정말 무심한 것도 맞다.


지난 주말 친정을 다녀온 이후 날씨가 더웠는데 아버지는 잘 계시는지 싶어 카톡을 하나 보낼까 하다가 아빠의 프로필을 열어봤다. 메인 프로필이 재작년에 우리 아이들과 갔던 덕유산 향적봉 등반 사진으로 2년째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바탕 사진도 작년에 친척분들과 가셨던 한라산 등반 사진이다.


별 생각 옆이 왼쪽으로 사진을 쓸어 보았다.

어딘가의 산과 절, 어디선가 찍은 멋진 조각상, 꽃, 새들,친구분들, 친척분들과 여행에서 찍은 단체사진들이었다. 어떤 사진은 셀카로, 어떤 사진은 누군가 찍어준 아버지의 표정은 훨씬 다채로웠다.

아버지 여긴 어딘가요

계속 넘겨보니 아빠 젊은 시절의 사진도 나왔다.

내 기억에도 아직 남아있는 90년대 유럽 여행 사진(동네에서 같이 오이 농사 지으시던 오이 작목반 아저씨들과 같이 갔던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여행으로 기억됨)이 나왔다. 그때의 아버지는 내가 3학년 10살이었으니 42세.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젊은 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에펠탑 앞에서,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 유리 지붕 앞에서, 노트르담 성당 계단 앞에 있으셨다.

마른 몸에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양복 차림새의 젊은 아버지는 같이 간 동네 아저씨들과 환하게 웃고 계셨다.



이윽고 나오는 사진들은 더 젊은 시절의 아버지였다.

듣기만 들었던 아버지의 서울 생활 모습, 리비아에서 일하셨을 때의 모습까지.

어릴 때 집엔 3권의 앨범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아버지와 엄마의 결혼, 신혼 시절 앨범

두 번째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앨범

세 번째는 나와 동생의 어린 시절 앨범이다.

하지만 제일 분량이 많았던 것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이었다.


어릴 땐 서랍장에 있던 앨범을 꺼내보며 주로 내 어린 시절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중엔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매일 농사일로 바쁜 아버지의 당시 모습과 참 달라 이상했을 만큼 아버지는 세계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신 것 같다.

리비아라는 북아프리카의 더운 사막 나라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했던 경력만 봐도 나의 좁아터진 국내파 바운더리와 스케일부터 남달랐다.


지난봄에 아버지와 밥을 먹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리비아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 사진으로 보고 짐작만 했었던 내용을 생생하게 아버지의 말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계속 놀라워하자 아빠는

"넌 그것도 몰랐냐?"

오히려 무심한 딸에게 더 놀라는 아버지였다.  


그렇게 계속 넘기는데 이번에는 내 모습이 보였다.

예전 대학 시절 통통한 볼살의 어렸던 내가 있었다. 나도 잊고 있던 내 사진들이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니 가슴이 털썩 내려앉았다.

고등학교 친구와 둘이 떠났던 인도 여행에서의 사진을 아빠 카톡 프로필에서 볼 줄이야. 그 사진들은 이미 추억 속으로 건너단 옛 싸이월드에 올려 두었던 터라 핸드폰 상으로는 볼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때 사진들을 당시 여행 후 인화해 두었고 앨범은 고향집에 있었다. 아마 어느 날인가 아빠가 앨범을 넘겨 보시면서 핸드폰으로 찍어 카톡 프로필로 해두셨나 본데 전혀 몰랐었다.


그립고, 아득한 마음 반절.

내 기억과 정반대로 20대 초반의 내 모습이 오동통한 얼굴에 촌티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었음에 당황스러웠다. 그 시절의 추억은 아름답지만 외모까지 품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서둘러 손가락으로 화면을 쓸어 넘겼다.


이어지는 사진들은 역시 우리 아이들과 조카들의 아기 때 모습이었다. 물론 지금도 많이 이쁘고 귀여운 아이들이지만 그때의 모습은 사진만으로도 그때 우리 아이들의 살 냄새까지 되살아났다. 사랑스러운 손자 손녀들의 사진까지 알뜰이 카톡 프로필로 해두셨음은 처음 알았다.


카톡 프로필을 봤을 뿐인데 단 5분의 시간에서 아버지 인생의 50년을 대충 돌아본 것 같았다.

아버지의 카톡 프로필에서 내 20대를 보고,

아버지의 20대를 보았다.

지금 내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였을 나와 동생을 보았다.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한 아버지의 30-40대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속속들이 모를 아버지의 일상과 아버지의 관심사를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엄마를 쏙 빼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나였지만

언젠가부터는 아버지 웃는 모습을 닮았다는 말에 의아했는데 카톡에서 아버지의 웃는 모습과 내 대학 시절 모습이 묘하게 닮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무심한 딸이라 아빠가 100장 훨씬 넘게 카톡 사진을 바꾸는 동안에도 앞에 서너 장 정도만 확인했다.


현재 지금의 내 카톡 프로필만 신경 쓰느라 잊었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아버지의 카톡에서 여전히 살아있었다.

나는 잊었던 내 과거를 아빠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면 나도 이젠 아빠의 지금을 지켜줘야 할 것 같았다.

핸드폰 사진첩 가득한 나와 아이들 사진 속에서 우리 아빠 사진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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