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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22. 2022

친정집에 오면 하는 일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고 생각하기

장수에 오랜만에 다녀왔다.

토요일 아침 바등거리며 챙겼어도 10시가 넘어서 차에 탔고 통영 서호시장에 들러 해물을 사가자니 또 지체되어 11시가 다 되어 진짜 집으로 출발했다. 아이들이 곤히 잤고 나도 또 설피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남편 혼자 부지런히 운전하여 12시 50분쯤 장수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남의 집 일을 가 같이 점심을 같이 먹지 못한다고 하셔서 우리끼리 식당에 들러 뜨끈한 갈비탕에 밥을 먹고 집에 올라갔다.


아직 장수는 벚꽃이 남아있었다.

만개는 한참 지나 이제 지나가는 바람에도 꽃잎이 후두둑 떨어졌다.

집에 올라가니 마당에는 복숭아 꽃이 쨍한 분홍빛으로 피어 집 둘레의 반을 감쌌다.

철쭉은 몇 송이 미리 핀 꽃이 있었지만 대부분 꽃봉이가 맺혀 있었다.

남의 집 일을 가신다고 했는데 트럭이 마당에 두대나 있어서 아버지가 돌아오신 줄 알았다.

짐을 챙겨 집 안에 들어가니 어둑하니 커튼을 반쯤 쳐 놓고 아버지는 누워 계신다. 낮에 맥주를 세 병이나 드셨다고 잠이 와서 누워 계셨다고 한다.


설에 오고 오랜만에 온 외갓집에 아이들은 이방 저방 쏘다닌다.

나도 짐을 대충 두고 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제 모내기를 시작하여 바쁜 동네 아저씨 모판을 차로 나르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 집은 모내기 안해요?"

"작년부터 안했지. 귀찮아서 더 못해."

아버지는 작년에도 일하기 싫어서 더는 못하겠다고 하시더니 올해도 기어이 일을 시작하시려는지 집 옆에 있는 모종하우스 고치는 일을 하셨다. 집 옆의 밭은 예년과 다르게 잡초가 푸르다. 민들레 잡목이 점차 우거져있다. 이 밭은 작년에 인삼 농사 짓는 농부에게 6년간 임대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농어촌 공사에서 흙이 좋다며 흙을 파가고 평탄하게 갈아준다고 해서 공사하기 기다리는 중이다.

인삼 농사 짓는 밭은 아버지가 다른 밭을 소개해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다.

"그 아저씨네는 얼마나 벼농사를 많이 하기시에 아빠까지 가셨어요?"

"벼농사만 백마지기를 해."

백마지기? 숫자에도 약하지만 얼른 계산이 안되어 다시 묻는다.

"우리 선멀 논이 몇 마지기인데요?"

"닷마지기 정도 되지."

아랫 동네에 있는 논도 꽤 넓은데 자그마치 스무배가 넘는 넓이다.

그 곳에 모내기를 하려면 일손이 모자라겠다.

일이 힘들진 않으셨지만 일하면서 드신 맥주가 영 취기가 돌았다고 하신다.

그래도 다원이에게 학교 이야기도 묻고 본인 주식 이야기도 끝이 없이 하신다.

저번에 출국하기 전 민수가 집에 들르면서 아이들 초콜릿이랑 내 화장품을 샀는지 두고 갔다.

잘 지내는지 연락도 안하는데 이렇게 챙기는 것을 보면 가끔은 민망하다.


남편과 애들은 동네 공원에 놀러 가고 아버지는 바깥에 나가셨다.

나도 방을 정리한다. 가져온 음식을 정리하고 오래묵은 내 방 이불도 턴다.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도 없어서 창문과 현관을 열어 두고 청소를 한참 했다.

여기 저기 먼지를 닦고 빨랫감을 정리하고 서랍 위 물건을 보기 좋게 정리한 것 뿐이지만 금방 말끔해셔서 마음이 편안하다. 도대체가 집에 오면 쉬지를 못하지만 그렇다고 먼지가 부옇게 앉은 집안을 바라 보는 것은 더 편하지 않다.


아이들과 남편이 곧 들어와서 저녁밥을 해 먹었다.

시장에서 산 낙지와 가리비를 손질했다.

낙지가 아직도 살아있어 아이들이 손으로 누르고 만지작 거리면서 논다.

낙지나 문어 이런 종류는 손질하기가 영 마뜩찮다. 눈과 입을 떼고 내장을 꺼내도 다리는 꿈틀거린다.

일말의 미안함인가...

내손으로 하기 힘들어 남편을 불러 손질했다.

낙지로는 연포탕을 끓이고 가비리는 쪘다.

다원이는 해물을 좋아하지 않아 낙지와 가리비는 손에도 대지 않아 갈비를 조금 구어 따로 주었다.

시언이는 낙지를 야들야들한 다리 살 부분은 오물조물 잘 먹는다. 가리비는 내장부분은 싫어해서 관자 부분만 따로 떼어주니 잘 먹는다.  이 녀석은 문어 낙지 오징어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먹는 것도 좋아한다.

남편과 아빠는 소주에 잘 드신다.

코로나 확진 이주에 입맛이 많이 떨어졌다는 아버지는 밥 보다는 국을 잘 드셨다.


사실 이번에 집에 와서 가장 많이 이야기 한 것은 차였다.

아버지가 예전에 산 차를 민수가 명의 이전하여 탔는데 이번에 멕시코에 가면서나보고 가져 가라고 하셨다. 처음에 말하셨을 땐 우리 차도 아직 타기에 멀쩡하고 괜찮아서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보니 집에서 묵히기엔 아깝고 이번에 바꾸면 앞으로 7-8년은 더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큰차라서 유지비가 나갈 것 같은데 그래도 좋은 차를 얻게 되었다.

이번에 가져가지 않고 5월에 올 때까지 명의 이전에 대해 알아보고 그때 가져가기로 했다.

동생이 타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속에 들어가보니 훨씬 널찍하고 깔끔했다.


아버지가 뭘 주셨을 때 한번을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은 적이 없다.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기보다는 이것을 받았을 때 부담스러울 나의 마음이 먼저였다.

"부담가지지 말고 잘 타고 다녀."

내 마음을 알고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정작 아버지 본인도 낮에 일한 집에서 챙겨 주신 찰밥 한덩어리를 받을 때 쉽게 안 받으시고 극구 사양하셨다고 한다.

차라리 무엇을 줄 때 마음이 편하지 받기만 하는 것은 불편하다.

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받기 보다 이로 인해 내가 또 무엇을 해야 하나 부담스럽다.

상대방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마움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내력인가?

마음의 빚을 싫어하는 것은 아버지나 나나 마찬가지다. 


저녁을 잔뜩 먹어서 그런지 일찍 잠에 들었다. 시골의 아침은 빨리도 온다.

여섯시 갓 넘은 시각이었지만 왠지 늦은 것 같아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다.

아이들은 아침 먹고 마당에서 신나게 논다. 엄마 아빠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여기 저리 잘 돌아다닌다.

마당 한 켠에 쌓여 있는 나무 구석구석도 살펴보고 하우스 안에 있는 각종 농기구가 뭔지 슬쩍 슬쩍 건드려도 본다. 특히 둘째는 잡초가 우거진 밭을 내복바람으로 뛰어다닌다.

"왜 이렇게 잘 뛰어?" 물으니

"우리집에서는 이렇게 못 뛰잖아."


점심 때가 되어 집에 갈 채비를 하자

둘째가 "엄마! 다음에는 외할머니 무덤에도 가자!" 말한다.

"그래, 가자!  말해줘서 고마워." 대답하니 비로소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 잘 있어! 다음에 또 올게."

집을 나서며 엄마 사진을 보고 말했다.

5월에 올 때는 꽃도 한 송이 들고와야겠다.

이쁜 우리 엄마 옆에 심어둔 철쭉이 올해는 더 이쁘게 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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