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큰 변화

6학년 담임 2주 차 적응 중입니다

by 다시

6학년 담임이 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계단이다.

작년에는 본관 현관문을 지나면 바로 우리 교실이 보였다. 층수로는 2층이지만 1학년 교실 앞 신발장까지 계단 열몇 개면 금방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6학년은 신발장이 1층에 있고, 교사 신발장도 같은 층이라 거기서부터 신발을 갈아 신고 나면 5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 출근 시간이 아이들이 몰리는 등교 시간대보다 이르긴 하지만 그래도 엘리베이터는 아침에는 웬만하면 안 타려고 하기 때문에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갔다.


1층부터 2층까지 계단 4번 * 13개 = 52개.

3층부터 4층까지 계단 4번 * 12개 = 48개.

100개다.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는 주차장부터 학교까지 천 개의 계단이었는데 그때보다 괜찮다며 위안 아닌 위안을 삼으며 헉헉 거리면 우리 교실이 보였다. 그나마 계단에서 가까운 것이 고마웠다.

겨우 3층 더 올라온 것뿐인데 계단을 오를 때마다 1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온 것이 새삼 놀라웠다.

달라진 것이 또 있다면 아침 시간이다.

새 학기 2주째, 우리 반 아이들은 아침이면 아직은 조용하다.

1학년 아이들은 아침 시간이 늘 바빴다. 인사를 나누는 일도, 제출해야 할 서류를 걷는 일도, 새 학기에 필요한 학습 준비물 꾸러미를 들고 오는 아이들을 맞이하며 정리해 주는 일도 다 내 몫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교실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때, 컴퓨터 학교 메신저에도 쪽지가 가득 쌓이고, 학부모 소통 SNS에도 빨간 알림 숫자가 늘어났다. 도서관을 가는 아이,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러 가는 아이. 아직 안 온 아이. 파악을 하려면 학부모로부터 온 쪽지 확인은 필수라 아침 시간은 늘 정신없었다. 아침 시간에 잠깐 연구실에서 차 한잔이라도 타올라치면 그 사이 놓치는 것들이 많아 여유는 사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까지는) 아이들은 헉헉 대며 올라온 후 계단에 대해 약간 불만이 있긴 해도 바로 자리에 앉는다. 바구니를 앞에 두어 개 두고, 안내장을 종류대로 제출하라고 칠판에 적어두면 알아서 척척 안내장을 제출한다. 안내장 제출 기한을 넘기는 아이도 없다. 아침활동도 글쓰기나 필사를 하고 있는데, 요일마다 제시해 주면 알아서 학습지를 가져간다. 타공기로 학습지에 구멍을 뚫어 제본링에 끼우는 것까지 한번 알려줬더니 실수 없이 척척이다. 1학년 아이들도 1학기 정도되니 자기가 스스로 제본링에 학습지 끼우는 것은 됐지만, 타공기 사용까지는 못했다. 학습지에 글을 쓰거나 필사하는 활동은 조용하고 시간도 좀 걸리기 때문에 나중에 등교하는 아이들의 가방 내려두는 소리와 적당히 떠드는 소리가 이윽고 지나면 종이 위에 연필 지나가는 소리만 들린다. 내가 쪽지 확인한다고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제일 크다.


16년 교사 경력 중 6학년 담임은 처음이라 긴장됐던 것도 사실이다.

오죽하면 선생님들 커뮤니티에 6학년 담임이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 뭐가 있을지 찾아보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답변이 무표정, 명확한 지시, 공정한 규칙, 친구 같은 교사 절대 금지, 미움받을 용기였다.

6학년을 많이 해봤다던 다른 선생님들의 조언도 마찬가지였다. 초등 마지막 학년을 가르치는 교사의 태도는 단호하고 분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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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가 그럴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무표정이 안된다.


3월 3일 첫날. 교실에 들어가니 2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여자 아이, 남자아이. 등교시간보다 훨씬 일찍 온 아이들은 책을 꺼내 읽고 있었다. 먼저 인사하고, 교실 창문을 연다고 교실을 돌아다니는데, 내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아이들은 숨도 쉬고 있지 않았던 걸까? 먼저 말을 거는 아이가 없었다.


1학년이라면 선생님 이름이 뭐예요? 선생님 나는 누구게요? 선생님 배고파요. 오다가 친구 만났다요.

헉헉 내가 1등이다. 이런 말들이 교실 가득 와글와글 했는데, 6학년 우리 반 아이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3월 3일 첫날 봤던 매화

먼저 가서 말을 한번 걸어볼까?

이름이 뭐니? 묻기엔 아이들 책상에 내가 이미 이름표를 붙여놔서 이름은 알았다.

나는 누구누구야~ 소개를 하기엔 나도 민망하고 그래서 3월 등교 첫날 9시.

22명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앉을 때까지 계단 올라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헉헉대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책, 안내장만 보고 있었을 뿐이다. 1교시 전 화장실도 다녀오고, 물도 마시라고 했는데도 묵묵부답. 최근 들어 가장 시간이 안 갔던 때가 바로 3월 3일 1교시 전 아침활동 시간이었다.


9시 1교시 종이 울리자 조금은 긴장된 분위기가 누그러졌고 나도, 아이들도 서로 소개를 하고 나서야 교실에 희미하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만 났는데 나부터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표정은 일단 실패였다.


또 달라진 것은 그날 해야 할 공부를 그날 모두 다 한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이냐면 1학년 땐 수업 계획 40분을 알차게 준비해 가면 사실 반도 못하고 다음으로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그림책 한 권 읽기는 사실 5분~10분이면 끝나지만 아이들이 그림책 중간중간 끼어들어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림책 읽는 것에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교과서 내용으로 넘어가고, 그날 해야 할 분량을 끝내는 목표를 완성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우리 반 수업은 40분에 할 양을 준비해 가면 30분 안에 끝내버린다.

첫날 할 일은 이랬다.


1. 교사 소개 안내장 나눠주기

2. 첫인사

3. 자석 이름표 만들기 후 자기 소개하기

4. 교장선생님 인사 영상 시청하기

5. 새 학기 안내장 배부하기

6. 삼각 이름표 색칠하고 만들기

7. 자기소개판 만들기

8. 교과서 가져오고 이름적기

9. 사물함 정리하기

10. 간단한 놀이하기

11. (설마.... 하면서 준비한) 좋은 노래 필사하기

12. (내일 해야지 하면서 미리 복사한) 1년 후 나에게 보내는 타임캡슐 만들기


시업식 당일엔 전담 선생님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교실에서 6교시를 온전히 다 보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걸 다해버렸다. 설마 싶어서 준비한 필사 학습지와 타임캡슐 만들기도 아이들은 초등 6학년의 위엄을 보이며 핵심만 간단히! 너무 성의 없지도, 너무 꼼꼼하지도 않게 딱! 알맞은 형식으로 완성을 해버렸다.

만약 글씨가 엉망이었거나, 색칠을 안 해 성의 없이 보였다면 당연히 다시 해오라고 했을 텐데 첫날이라 아이들도 이미 학기마다 해봤을 그런 학습지도 나름 열심히 완성해서 제출했다. 경험치도 있었을 것이다.

첫날부터 영상을 보여주긴 싫었는데, 하교까지 20분이나 남아서 안전교육 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1학년이면 저 위의 내용을 다하려면 3일은 걸렸을 것이다.

학습지 하나 완성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너무 꼼꼼한 아이와 너무 대충 하는 아이가 양 끝점에 있고 촘촘하게 다른 결과를 보이는 아이들에게 서로 다른 피드백을 해야 했던 1학년이었다.

6학년은 학습 내용을 제시하면 그걸로 끝! 그 시간 안에 웬만하면 해결해 버린다.


물론 2주가 지난 지금, 우리 반 아이들이 여전히 아침 활동 시간에 숨소리도 안 쉬는 것은 아니다.

첫날 바로 교실에 어울리는 무리가 생겨버렸고, 혼자 있는 아이, 복도에서 뛰는 아이, 친구 찾으러 멀리 끝반까지 가는 아이, 교사가 한 마디 하면 열 마디 하는 아이, 관심받고 싶은 아이, 혼자 있고 싶은 아이, 말 걸면 놀라는 아이, 예?를 말끝마다 하는 아이, 모여서 춤추는 아이, 춤추면 놀리는 아이, 놀리면 쫓아가서 때리는 아이 등등 별의별 아이들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첫날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교과목이 많아져서 준비하기 힘든 것이나 아이들 키가 나보다 대부분 크다는 것 등. 사실 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이미 각오한 것들이라 큰 혼동은 없었는데 저런 사소한 것들이 오히려 내가 이제 6학년 교사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월요일 아침까지 이제 몇 시간 안 남았는데 아이들은 또 어떤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까. 1학년 교사에서 6학년 교사로 적응하는 일은 만만치 않지만 소소한 차이를 몸소 체감하며 서서히 6학년 담임으로 바뀔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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