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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n 08. 2022

직접 사는 맛

수요일은 아파트 장터 가는 날

수요일은 아파트 장터가 있는 날이다.

아파트 장터라고 할 것도 없이 커다란 컨테이너 트럭 한 대가 도착하면 그곳이 장터가 된다.

야채와 과일을 파는 사장님이 자신의 군단을 이끌고 아파트 입구 공터에 자리를 잡으면 그곳이 장터이다.

사장님은 혼자서 오지 않는다. 크게 과일과 야채 코너로 나뉘는데 과일은 사장님 포함 3명이 계산, 포장, 배달을 하고 야채는 평소에는 여자분 한 분만 계시는데 사실 과일보다 더 많은 손님이 찾기 때문에 종종 어머님으로 보이는 여사님 한 분이  더 오실 때가 많다.

커다란 트럭이 아파트 공터에 도착할 시간인 2시 가까이 되면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점심도 먹고 운동도 하고 빨래도 개고 씻어야 밖에 나갈 수 있는데 아직 준비가 되지 않고 시간만 가기 때문이다.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면 벌써 많은 사람들이 트럭 앞을 서성인다.  


사야 할 것들은 소박하다.

달걀 한 판(마트보다 1000원 싸다), 손두부(시판 두부보다 단단하고 고소하다), 오이, 감자,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방울토마토, 바나나 정도이다. 온라인 장보기가 있는데 뭐 이런 것을 번거롭게 직접 사느냐 할 수 있다.


물론 나도 핸드폰으로 쉽게 장을 본다. 주로 이용하는 네이버 장보기에서는 홈플러스, GS프레시몰, 이마트까지 우리 집 앞으로 매일 배송을 해준다.

거기서는 우유, 라면, 고기류, 빵 등을 산다.

멤버십 할인도 있고, 매주 발행하는 쿠폰도 있어 조금은 저렴하다는 느낌으로 장을 본다.

구매 확정 후 리뷰까지 간단히 쓰면 적립도 쏠쏠하다.


그런데 왜, 나는 수요일에 아파트 장터에 갈까?

사장님이 친절해서?

아니다. 내가 계산해달라고 하염없이 눈길을 보내도 다른 손님부터 계산해주신다.


순간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장보기로 하면  번의 터치로   하나  들이고  앞까지 배송을 해준다. 냉동제품이나 신선제품은 드라이아이스 포장까지 완벽하다. 하지만 이미 하면 환불이 안된다. (환불은 되지만 번거로움) 고민 고민하다가  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숙고의 시간이 길다.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저렴한 쿠폰을 찾다가 제를 미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직접 장을 보면 즉흥 구매가 가능하고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바로 살 수 있다.

감자를 살 때 5000원어치가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고 비싸다 싶으면 안 살 수 있다.  두부 살 생각이 없었더라도 다른 손님이 두부를 살 때 엿보이는 하얀 두부의 속살을 보고 저녁 반찬으로 두부 구이로 결정을 한다. 고구마나 꽈리고추 등 나는 잘 안 사는 야채를 다른 손님들은 어떻게 반찬을 하는지 엿듣다가 마치 나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듯 산다.

미리 정해진대로 사는 온라인 장보기와 다른 손맛이 느껴진다.

이렇게 두 손 가득 둥그렇고 뚱뚱하고 얇기까지 한 비닐봉지를 들고 와야 기분이 좋다. 마음이 꽉 찬다.


또 다른 이유는 천 원에 두 개, 이천 원에 3개가 가능하다.

물론  온라인 장보기에서도 1개, 2개 살 수 있지만 이런 가격제가 마음이 편하다. 당근이 한 개에 천 원(비쌈)이라고 하면 안 사는데 2천 원에 3개라고 하면 덥석 집는다. 요즘은 날이 더워져서 오이 값이 조금 저렴해져서 2개에 천 원이지만 몇 주전까지만 해도 한 개에 천원일 때도 있었는데 그때도 3개에 2천 원이라고 해서 3개씩 사서 그냥 슥슥 껍질만 벗겨 썰어 주거나, 김밥에 넣었다. 다른 야채는 입에도 안대지만  오이, 당근, 버섯만은 우리 집 두 녀석의 유일한 채소 섭취원이기 때문에 이렇게 조금 더 저렴한 아파트 장터에서 산다.

늦으면 없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두부 두 판, 계란은 5-60판 정도 가져온다. 그렇게 말하면 많은 것 같지만 2시에서 3시는 아이들이 방과 후 하고 하교하는 시간이거나 유치원, 어린이집 하원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이다.

엄마들은 아이들 마중 겸 장을 보기 때문에 3시 이후에 가면 두부나 계란은 이미 동이 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못 살 수도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몇 판 안 되는 계란을 차지했고 그래서 이번 주는 안심일 때 느껴지는 안도감.  그래서 내가 아파트 장터 트럭 앞을 주시하고 빨리 가려고 하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장보기가 일상이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핸드폰으로 구매를 하여 멤버십까지 가입하였더니 더 자주 이용하게 됐다. 쇼핑이 이렇게 편할 수도 있구나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 물론 집 근처에 하나로 마트가 있고 몇 블록만 가면 대형마트도 있다. 하지만  마트는 아이들이 꼭 같이 가고 싶어 하고 그러다 보면 장난감, 간식을 안 살 수 없다.

아파트 장터는 같이 가도 아이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들이 별로 없는지 꼭 사달라고 하는 것이 없어서 같이 가기도 부담이 덜하다.

장터는 직접 사는 맛이 있다. 단골이라고 에누리도 못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반찬거리를 사는 맛이다.

재료를 보고 손에 넣는 순간 계획이 다 세워진다.

수요일은 어김없이 오고 늦으면 다음에 사면되지만 오늘따라 어쩐지 우리 딸과 아들이 된장국에 넣은 감자랑 두부가 맛있다고 하니 오늘도 장보기를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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