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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22. 2022

거제의 낮과 밤

주말은 온전히 아이들과 같이 보냈다.

내가 살고 있는 거제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집과 학교, 유치원 갇혀 있던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소는 바다다. 

토요일 오전 우리는 맛조개를 잡고 싶다는 둘째의 말에 돗자리와 소금, 아이들 모래놀이 삽 정도만 챙겨서 와현 해수욕장에 갔다.

당연히 와현해수욕장에는 맛조개가 없을 것을 알았지만 모래를 파고 거기에 소금을 넣고 기다리는 행동을 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정도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바라보는 해수욕장의 풍광이 너무 아름다웠다.

미세먼지는 매우 나쁜 날이었지만 바다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햇살은 바다 위에 부서지도 파도는 쉴 새 없이 밀려오며 봄기운이 느껴지는 바다 바람이 매우 상쾌했다.

아이들은 장화로 신발을 갈아 신고 더욱 힘차게 발걸음을 남기면서 모래 위를 걸었다.

나도 파도에 휩쓸려 없어지는 발자국이나마 남기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모래를 걷는 느낌! 바닷물에 흠뻑 젖었다가 다시 빠진 그 모래! 숱한 파도에 이미 단단해진 모래 위를 걷는 느낌은 정말 좋다. 찰방찰방 거리는 모래는 거칠지 않고 매끄럽다. 매끄럽고 촉촉한 길을 걷는 비 오는 날의 달팽이처럼 미끄러지듯 걸어 다니는 나와 아이들이었다. 

해수욕장 끝까지 가면 바위가 모여있는데 그곳엔 소라게들과 고동, 따개비, 굴 등을 볼 수 있다. 몇 번 잡은 적도 많아 오늘도 바위로 향했는데 파도가 많이 너울져서 그런지 모래사장에도 미역, 톳, 파래? 미역귀? 이런 해초들이 가득했다.

고동 몇 개가 바위에서 움직이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잡아주고 다시 모래밭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땅파기에 돌입했는데 역시나 맛조개는 없었다. 그나마 파도에 휩쓸려 떠밀려온 해초 끄트머리에 달린 홍합이 보여 아이들과 같이 딸 수 있었다. 그런데 해초들 사이에 꿈틀거리는 검고 뭉클거리는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것도 꽤 많이 군데군데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아 군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검색해보니 바다달팽이 군소가 확실했다.

검고 물컹거리는 돌멩이 같이 생긴 이 바다 생명체는 모래밭 위에서는 죽은 듯 있다가 바닷물을 부어주니 사방으로 촉수를 내밀었다. 팔랑거리는 날개 같이 생긴 지느러미도 펼치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같이 신기한 바다 생명체를 한참 관찰하니 점심시간 때가 훌쩍 지나 집으로 왔다. 

바닷바람을 오랜만에 쐐서 그런지 온몸이 뭔가 두들겨 맞은 느낌이라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자는 것도 아니도 안 자는 것도 아닌 반수면 상태로 누워 있었다. 아이들은 물론 열심히 자기들끼리 잘 놀았다.  

토요일이지만 당직 근무가 있어 출근한 남편이 다섯 시가 넘어 들어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장승포에 있다는 송구 영신길 산책을 갔다. 작년? 재작년에 생긴 길인가 본데 우리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사실 일운 터널이 뚫린 이후로는 장승포에 잘 가지 않아 오랜만에 간 장승포였다. 토요일 저녁 시간대 꽤나 사람들로 북적일 시간일 텐데 장승포는 조금 한적한 분위기였다. 조용한 곳에 위치한 송구 영신길은 그 길 위로 쭉 올라가면 능포 양지암 공원이 나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저녁 먹고 산책 나온 것이 오랜만이라 아이들은 들떠서 오르막길을 쉼 없이 달린다.

그렇게 조금 걸어가니 예쁜 달과 별이 나왔다. 조금 더 올라가 보니 장승포 앞바다 위에 초승달이 떠 있었다.

산책로에 있는 거대한 보름달도 이뻤지만 그 위에 진짜 떠 있는 작은 초승달이 더 눈에 갔다. 잠깐 걸었는데도 숨이 차는 것을 보니 운동량이 요즘 부족한 게 확실했다. 아이들은 낮에 그렇게 잘 놀았는데도 밤에 여전히 기운이 넘친다.  

내가 살고 있는 거제의 낮과 밤을 모두 느꼈던 오늘, 오랜만에 참 상쾌하고 아름다웠던 것 같다.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도 좋지만 우리들만 아는 우리들이 좋아하는 그런 장소를 많이 찾아서 아이들과 같이 추억을 만들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나의 마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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