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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22. 2022

어머니의 마음은 바다보다 넓어라

어머님이 싸주신 달래와 시금치를 다듬어 달래된장국와 달래무침, 시금치나물으로 저녁으로 먹었다.

달래는 양념을 해서 줄기보다 맵싸한 밑동을 아삭아삭 씹어 먹을 때 맛이 더 좋다.

아이들은 생으로 무친 것은 먹지 못해서 새우와 함께 달래 된장국을 끓여 주었더니 구수하니 맛있단다.

평소라면 시금치는 쳐다보지도 않던 둘째도 누나가 맛있게 먹으니 한 입 크게 오물오물 먹더니 밥 위에 턱 올려 잘 먹는다.

 

우리집 냉장고는 어머님이 챙겨주신 푸릇푸릇한 봄나물, 채소, 참외, 밑반찬으로 풍년이다.

어제 성주에서 가져온 것들을 보자면

시금치, 봄동, 부추, 참외 2봉지, 쌀 한포대, 삶은 시래기, 파김치 한 통, 우엉김치 한 통, 깐마늘 한 봉지, 볶음 참깨 한 봉지, 시판 참기름 한 병, 어머님표 들기름 한 병, 대파 2봉지(한 봉지는 깐 것, 나머지 한 봉지는 베란다에 두고 먹을 수 있는 흙채로 담아 온 대파) 이렇게 많다. 이렇게 챙겨주신 덕분에 우리집 냉장고에은 마늘, 참기름, 들기름, 간장, 된장, 볶은 참깨가 끊이지 않고 자리한다.

 

지난 주말에 다녀온 성주 시댁은 설 이후로 오랜만에 다녀왔다. 지난 설에 다녀온 이후 두달만에 다녀온 것 같다.

아버님 생신이 삼주전에 있어서 가족 모두 모일 계획이었지만 아버님이 코로나 확진이어서 남편만 살짝 다녀왔다.

아버님 생신 때 우리가 오면 챙겨 주실 요령으로 많이 준비해두신 모양인데 그때 못 주신 것까지 해서 이번에  많이 챙겨주신 것이다.

설에 다녀왔을 때도 어머님께서 챙겨주신 음식, 생필품으로  안이 비좁을 정도였는데 일단 가져오면 버리지 않고   먹고  쓴다.


예전에 아이들이 없었을 때는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참외, 채소, 쌀을 잘 먹지 않고 어느 정도 먹으면 상하거나 물려서 버렸던 적도 많다. 바쁘신 어머님이 다듬을 새도 없이 흙이 잔뜩 묻은 달래, 부추 같은 것들을 챙겨주실 땐 미처 다듬어 먹기도 전에 상한  때도 있었다.

아직 살림이 어색하여 반찬 하나 해 먹기 힘들 땐 보내주신 나물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고민고민하다 대충 해먹고 치워버렸던 적도 있었다. 사실 택배로 보내주신 여러 채소들은 더위에 무르거나 상한 일도 있어서 입도 대기 전에 버린 적도 있다. 일일이 봉투에 종류별로 넣어 보관해야 할 때는 아이들 챙기는 것도 힘든데 불평하기도 했다. 참..못됐다.

 

자식들에게 먹일려고 며칠 전부터 준비하는 어머님의 마음을 내가 어찌 알까?

 먹지도 못할 많은 양이라 조금만 달라고 하고 싶어도 어머님의 마음이 담긴 음식들이라 며느리인 나는 차마 사양하지 못할  남편은 단칼에 거절하여 민망한  때도 있었다.


어제 갔을 때는 먹기 좋게 삶은 우엉과 싱싱한 쪽파와 갓을 미리 씻어 두셔서 먹기 좋게 자르고 양념만 치대서 우엉김치, 파김치를 뚝딱 만들었다.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김치는 처음 먹었을 때는 사실 간이 너무 세서 먹기 힘들었지만 나도 결혼 8년차라 시댁 김치 맛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익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것이 맛이 좋다.

 

예전에 엄마 살아계실 때 시어머님이 챙겨주시는 그런 반찬, 채소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챙겨주는 것이 사돈 재미야. 고맙게 잘 받아."

나는 "먹기도 힘들고 만들기도 힘들어. 조금만 주셨으면 좋겠는데 항상 다 먹지도 못하고 버려."

처음엔 그럴 수 있지만 갈수록 고마울 것이라고 했는데 여러 해가 지나서야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많이 챙겨주시고도 아이들이 차에 타자 손에 만원 짜리 한 장 씩을 또 쥐어 주신다.

그렇게 많이 받고도 염치없는 며느리는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고  차에 탄다.

다음에 갈 때는 용돈이라도 조금 더 챙겨와야겠다.

며칠 동안 싱그러운 우리집 식탁을 생각하니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보다 넓어라... 루시드폴의 노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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