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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ug 09. 2022

외갓집에서의 8박 9일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어디든 가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었다.

일단 우리 동네 안에서 바다로, 산으로, 그도 아니면 바운스나 레고 카페 등으로 돌아다녔다.

그래도 부족해서인지 아이들과 내 마음은 어디로든 가고 싶었고 외갓집을 언제 가냐고 성화였다.

친정아버지만 계신 외갓집이 집보다 더 자유롭다고 여겼는지 외갓집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7월 마지막 날을 며칠 안 남기고 전북 장수의 외갓집으로 향했다. 

때마침 남편의 휴가기간이었지만 맞물린 시운전 일정으로 이번 휴가는 반납하게 된 남편 없이 나 혼자 아이들을 챙기고 갈 예정이었다. 

일주일 넘게 있을 예정이라 짐을 싸는 것도 일이었다. 아이들 옷가지부터 물놀이 도구, 여벌 신발, 모자, 캠핑용 의자 및 파라솔까지 야무지게 챙기니 자동차 트렁크도 모자라서 보조석까지 짐이 가득했다.

짐 챙기랴 운전하랴 힘에 부치는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아이들은 신이 났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잔소리 거리로 가득한 집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좋았는지도 모른다. 


거제에서 두 시간 거리의 전북 장수는 나의 고향이다.

장수란 이름처럼 물이 긴,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라고 알려진 고장이지만 일반 사람들은 몇 번씩 말해야 알아듣는 잘 모르는 까막 산골이다.

여름엔 비가 많이 오고 매우 덥지만 겨울이면 그만큼 눈이 많이 오고 추운 해발 고도가 높은 분지 지역이다.

이곳에서 나는 태어났고 자랐지만 진학과 취직 때문에 이런저런 곳으로  몇 년간을 떠돌다가 거제로 간 이후에는 어떤지 고향이라고 해도 전처럼 막연히 편안하지는 않았다. 고향의 모습도 내가 변한 것만큼 많이 변했고 무엇보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거나 늙어 가는 그곳이 갈수록 낯설어지기 때문이다. 

6월 엄마 제사 이후로 오랜만에 온 집 마당 한편에 백합이 몇 송이 밝게 피어있었다. 누가 가꿔주는 이 하나 없이도 꽃들은 줄기를 세우고 꽃망울을 터뜨려 마당 안에 향기를 뿌리고 있었다. 여름이면 보는 백합이다.

아버지는 오이 농사를 마치시고 이젠 토마토 농사에 전념하고 계셨다. 내년이면 일흔이신 아버지는 그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새벽에 일어나 토마토 하우스를 돌보고 한낮에는 낮잠을 주무시는 생활 패턴을 이어가고 계셨다. 그렇게 무리하지 말라고 말씀드려도 흘러가는 말일뿐 아버지의 관심은 온통 토마토에 집중되어 있었다. 

집에 방학이면 일주일 정도 머물렀는데 주로 하는 일이라곤 아버지 식사 챙겨드리는 것이었고 아이들과 근처로 산책을 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여름은 좀 달랐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나의 강박은 여전했고 아이들은 엄마의 손을 이제는 덜 타는 어린이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전주, 무주, 남원, 진안, 임실 등 장수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다른 도시에는 새로운 놀거리, 볼거리가 가득했기에 이번 여름 방학에는 장수를 기점으로 여행을 가자고 마음먹었다. 

날씨가 관건이었다.

7월 말부터 8월 초, 지난 한 주 장수의 날씨는 비! 구름! 비! 구름이었다.

조금 개었다 싶으면 이내 하늘이 흐려졌고 구름이 용솟음치는 하늘은 시종 무거웠다.

그래도 떠나고 싶은 것이 여덟 살 딸, 여섯 살 아들, 그리고 서른일곱 엄마의 공통된 마음이었다.

장수에 있었을 때 가본 곳에 대한 정리를 하며 글을 쓴다. 





1. 장수 번암 물빛축제 (7월 30일)


도착 후 이틀은 장수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비가 시시때때로 내려서 어디 가기 애매했다.

작은 영화관에서 어린이 영화를 한 편 보고 여름휴가철을 맞아 인근에서 축제를 한다기에 아이들과 들른 정도였다.

장수군 번암면에  있는 방화 댐 아래에 물빛공원이 들어선 것은 꽤 오래전인데 코로나로 최근 2-3년은 하지 않았던 물빛 축제를 오랜만에  개최한다고 해서 느지막이 가보았다.

비가 왔다 그치기를 반복해서 축제를 할까 싶었는데 마을 주민들의 동네잔치처럼 소박하지만 들썩이며 벌어졌다.

오후 늦게 간 탓인지 여러 행사는 이미 끝이 났어도 축제의 하이라이트 격인 메기 잡기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물빛 공원 아래 큰 폭의 하천 둑을 막아두고 거기에 많은 수의 메기를 풀어놓았다고 했다. 삼천 원의 참가비를 내면 커다란 투명 비닐을 주었는데 우리 아이들도 하고 싶은지 들어가자고 했지만 많은 사람이 들어가 있는 그곳에 발을 담기가 힘들었다. 조금 더 크면 꼭 하자는 약속을 하고 메기 잡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물을 막아둔 보 근처에 가서 두 팔을 물에 담근 채 허우적대며 메기를 잡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보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이었는데 겁도 나지 않는지 황톳빛 물속에서 어디 있는지도 모를 메기를 잡는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는 모습은 재밌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들보다 아무래도 손이 재빠르고 힘이 있는 어른들이 몇 마리씩 잡자 주최 측은 이제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자고 어른들은 빠지게 하고 아이들끼리 메기를 잡도록 했다. 그 모습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적잖이 흥미를 끌어 특히 물고기를 좋아하는 둘째가 계속 엄마 손을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옆에 있던 아주머니께서 잡은 메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른 팔뚝만 한 메기였다. 책에서 보던 메기 그 모습보다는 날씬했지만 허옇고 굵은 수염이 진짜 메기였다. 작은 축제였지만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신나게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 비 오는데 전주 - 어린이 창의체험관과 동물원


전주는 장수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전북에서 가장 큰 도시다. 전주에서 삼 년을 살았고 결혼 준비를 거의 전주에서 한 터라 결혼 전까지는 전주에 거의 매주 갔었던 것 같은데 거제로 내려간 이후에는 전주에 갈 일이 없었고 간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결혼식 때문에 갔었다. 올해 초 겨울에 아이들과 국립 전주 박물관에 소속된 어린이박물관에 갔었고 한옥 마을에 들러 점심을 먹었는데 그때 기억이 좋아서 다시 한번 전주에 가기로 했다.

비가 계속 오는 날이어서 운전하기 부담스러웠는데 톨게이트를 지난 직후 급커브길에서 차바퀴가 심하게 미끄러져서 자칫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가는 내내 갈까 말까 고민을 한 것이 무색하게 전주에 도착하자 빗줄기가 잠잠해졌고 가고자 한 창의체험관에 무사히 도착했다.

전주에서는 꽤나 인기 있는 체험 장소여서 예약을 가기 2주 전에 미리 해 놓았기에 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할 체험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여권 사진 찍기, 쇼핑하기, 운동 능력 측정하기, 자동차 정비, 한옥 쌓기, 착시 체험 등 한 시간 반의 체험 시간이 모자랄 정도여서 쫓아다니기에 바빴다.

이런 체험 장소는 아이들에게도 낯설지 않았고 체험 내용은 부산 과학관의 어린이 과학관과 비슷하고 아이들이 자주 가는 키즈카페에 있는 놀이 도구와 비슷했지만 그런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아이들은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체험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가려고 하자 시간도 남고 비도 완전히 그친 상태라서 아이들과 남은 시간을 보내고자 근처의 동물원으로 갔다. 땀이 많이 나고 더위를 심하게 타는 첫째라서 만약 땡볕에 동물원을 가자고 했으면 입구에서부터 힘들어했을 텐데 다행히 비가 그친 후라 시원하고 사람들도 많이 없어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전주 동물원은 오래된 동물원이다. 그런데 전주에 3년을 살았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친구들과 주로 놀았던 곳은 전북대 근처나 객사 주변 시내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와 주말이면 전주를 갔었는데 그때마다 했던 것은 쇼핑이었다. 동물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이다. 지난겨울에도 한번 오려고 했으나 그때는 코로나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한동안 개장을 안 했었고 이번 여름에 드디어 갈 수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도 동물원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기린, 하마, 코끼리 등이 있는 서쪽 구역은 아프리카 초원 숲으로 다시 꾸미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도 평소에 볼 수 없던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어 아이들은 좋아했다. 물론 내가 제일 좋아하긴 했지만.

너희들처럼 싸우는 미어캣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동물 이름은 많이 늘었다.

냄새나고 생긴 것만 봐도 무서워했던 뱀이나 악어, 원숭이 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담력이 생겼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안 닮아서 본능적으로 곤충, 공룡, 포유류, 어류, 파충류에 끌렸기 때문에 집에서 보는 책이나 영상도 대부분 그런 종류의 영상을 보기 때문에 나도 이젠 익숙해졌다.

이슬비처럼 비가 조금씩 내리기도 했지만 동물원 전체에 나무가 많아 대부분 막아주었고 오히려 비가 내리니 더욱 시원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 돌아다니고 다시 장수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또 비가 쏟아부었다. 다시 엉금엉금 조심해서 돌아가야 했다. 




3.  물 맑고 산 깊은 무주 - 무주 반디랜드 곤충전시관 & 물놀이장


역시나 아침 날씨는 무척이나 꾸물꾸물했다. 갈까 말까 또 고민만 하다가 그냥 출발했다. 혹시나 해서 차에 물놀이 준비물을 잔뜩 챙겨서 챙겨가는데 덕유산 휴게소를 지날 무렵 햇빛이 쨍하니 나왔다.

무주 반디랜드는 결혼 전에 아이 아빠와 데이트를 했던 곳인데 그때는 겨울이었고 매우 황량했던 기억이었는데 다시 간 무주 반디랜드는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교회에서인지 아이들이 잔뜩 물놀이장을 찾은 듯했는데 우리는 우선 곤충전시관에 갔다. 

곤충전시관은 입구에서부터 사마귀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룡, 곤충, 물고기, 식물의 성지였다.

네 가지가 모두 있는 곳은 흔치 않았는데 몇 년 전 리모델링을 해서 전시관 안에 아쿠아리움과 식물원까지 있었다. 입구에서 우리 아이들이 외갓집에서 많이 보았던 벌레를 또 발견했다.

중국 청람색 잎벌레라는 벌레였는데 우리는 이제껏 청풍이로 알고 있던 벌레였는데 이름이 이렇게 길었다니.

그곳은 곤충 표본의 천국이었다.

말로 다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곤충 표본이 전시되어 있어서 아주 커다란 곤충 백과였다.

한순간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전시관 구석구석에 희귀하고 신기한 곤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살아있는 곤충은 아니었고 박제된 곤충들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소름이 돋았지만 그동안 갔던 어느 전시관보다 내용이 훌륭했다.

한 바퀴 돌고 나서 돔 영상관에서는 바다에 관한 영상이 상영되어 우리 둘째가 신나게 보았다.

아쿠아존은 내륙 강에 서식하는 다양한 민물고기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작은 식물원에는 작아도 온갖 종류의 관상식물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종류의 생물에 대해 관찰한 후 조금 쉬고 물놀이장에 갔다.

물놀이장은 아이들 무릎 정도 깊이라서 튜브 없이도 잘 놀 수 있었다. 

나름 수영을 배웠다고 아이들에게 발차기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물속에서 놀았다. 구명조끼를 입어 둥실둥실 떠다니며 배영을 하는 아들을 보니 아이들은 배움을 어디 장소에 어떤 선생님을 통해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놀면서 배운다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몸을 눕혀 하늘을 바라보며 발을 차는 것이 저절로 되는 모습이 신기했다.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저렴한 이용료와 세 가지로 구분되는 구역이 아이들이 원하는 깊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서 그런 듯했다.

50분 물놀이 후 10분 동안은 간단한 간식을 먹으면서 쉬고 다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코로나가 다 무엇인지, 아이들이 놀 권리를 아무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 놀고 지친 아이들은 금세 잠이 들었고 나는 그 짐을 다 들고 다시 장수로 향했다.



4. 정겨운 남원- 광한루, 천문대, 김병종 미술관 그리고 미안 커피


남원은 장수에서 정말 가까운 편이다. 예전에는 번암을 지나면 남장수 ic가 있었는데 이곳이 사라지고 동남원 ic가 들어섰다. 장수 읍내에서 번암까지는 길이 좀 험한 편이지만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몇 분 안 걸려서 남원에 도착한다.

아침에 그렇게 흐리던 하늘은 또 남원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깨끗해졌고 심지어 태양은 피부로 꽂히듯이 타올랐다.

첫째가 힘들어하는 순간에 쮸쮸바를 하나 물리고 광한루에 들어갔다. 입구에 있는 500년 된 팽나무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나무의 늠름한 자태때문이라기 보다 그 밑의 시원한 그늘 때문이었다.

광한루는 곳곳에 오래된 나무와 정자, 벤치가 많아서 더위에 약한 우리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잉어처럼 연못에 있는 잉어들은 정말 커서 용왕님 같았고 길과 나무, 오작교 모두 세월을 간직한 모습이어서 어린아이들과 비교되었다. 아이들은 그 오래된 나무와 누각을 지나면서도 세월을 비껴가며 재빨리 걸었다.

나만 어렸을 때 왔던 광한루의 모습과 비교를 하며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다시 느꼈다.

 

입구에 있던 500살 가까이 된 팽나무

천문대는 춘향 테마파크 안에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주간 관측을 하지 못했지만 커다란 망원경을 보았고 돔영상관에서 4D 영상을 보았다. 달에 대한 영상이었는데 중간중간 바람이 나오고 의자가 흔들릴 때마다 아이들이 놀라서 손을 잡아주었다. 우리 꼬마들에게는 어려운 항공, 우주에 대한 전시가 많아 조금 지루해했지만 관람을 끝내고 천문대 앞에서 먹는 김밥을 제일 맛있게 먹었다. 

천문대 바로 아래 김병종 미술관이 있었다. 미술 앞이 장관이었다.  미술관 입구로 들어가는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가운데로 양쪽으로 넓은 계단에 물이 가득 차 있어서 넘칠락 말락 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아이들에게 미술관 들어가기 전 몇 가지 약속을 하고 천천히 들어갔다.

높은 습도의 바깥과 달리 쾌적하고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자 그림을 볼 마음이 들었다.

높은 천장, 두 개의 전시장을 연결하여 눈높이에 둔 작은 그림들이 여유 있게 걸려있었다. 그림을 볼 때 둘째가 너무 가까이 가면 잡느라 정신이 없긴 했지만 아이 나름대로 그림을 자세히 보려고 하는 것이라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림에 부쩍 관심이 많은 딸은 이 그림은 어떻고 저 그림은 어떻고 종알종알 쉴 새 없이 말을 하느라 조금 시끄러웠지만 전시장 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 말없이 그림을 보는 시간을 가질 때는 나름대로 생각하는 모습이 좋았다.

아이들과 이처럼 정제된 장소에 갈 때마다 긴장을 한다.

뛰지 마라, 크게 말하지 마라, 만지지 마라, ~하지 마라 라는 말이 귀에 인이 박힐 만큼 해도 아이들의 귀는 나를 향해 있지 않고 자신의 내부로 향하기 때문에 나의 말은 그들을 맴도는 잔소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절을 지키면서 조금씩 시야를 넓히는 모습을 부모로선 기특하고, 한 명의 관람자로선 죄송한 그런 시간이었다. 

그 시간 끝에 마시는 커피는 그래서 황홀했다.

미안 커피라는 카페 이름은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라는 뜻이지만 나처럼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 잎에 들어가는 아이스크림 덕분에 비로소 찾아온 평화의 시간이 고마웠다.




5. 다시 장수 - 방화동 계곡


전주, 무주, 남원을 돌고 임실을 갈까 했다. 임실에 있는 치즈테마파크가 구경하기 좋다는 여러 블로그 글을 보았고 장수에서 출발해도 한 시간이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라 갈까 싶었지만 멀리 가기엔 내 체력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장수에 있으면서 방화동 계곡을 안 가면 섭섭하기에 오전에 쉬고 점심 먹고 바로 출발했다.

산속 굽이굽이 들어가면 있는 보석같이 파묻혀 있는 방화동 계곡은 명칭마저 방화동 가족휴가촌이다. 산골짜기 사이에 흐르는 얕지만 깨끗한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는 그곳에 어찌 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바다의 미지근하고 불투명한 수질에 비해 계곡물은 일단 투명하고 찌릿할 정도로 차가웠다. 오전에 소나기가 내린 후라 나뭇잎마다 맺힌 빗방울이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후드득 떨어졌다.

아이들은 자리를 잡자마자 계곡으로 들어갔다.

바위가 많고 바닥에 자갈들이 미끄러웠으며 날카로워 다칠까 걱정됐지만 아이들은 또 저마다 재밌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첫째는 수경을 쓰고 얼굴을 물속에 넣으며 잠수를 연습하고 둘째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 튜브를 타고 물이 흐르는 대로 내려오며 놀았다. 나도 처음엔 같이 놀았지만 수온이 너무 차가워서 햇볕이 고이는 너럭바위에 앉아서 손을 뻗어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첫째를 임신한 8년 전 여름, 친구와 함께 이곳으로 물놀이를 하러 왔는데 그때도 너무 추워 들어가지 못했는데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이곳의 물속에 마음 놓고 들어가긴 그때나 지금이나 힘들었다.

물이 정말 투명했다.  맑고 차가운 그  물속에서는 크고 작은 물고기가 돌아다니고 다슬기가 바위 밑에 몇 마리 붙어 있었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가족들이 그곳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오슬오슬 떨면 밖으로 나와서 데크에 누워 쉬었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산이라 해가 금방 지는 것 같았다.
5시가 넘은 시각 조금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다시 빗방울이 떨어져서 정리하고 돌아왔다.  




이번 여름, 외갓집에 있던 기간은 8박 9일이다.

처음엔 8박 9일 하니까 굉장히 긴 시간처럼 느껴져서 힘들면 거제로 돌아와야지 했는데, 아이들은 마지막 날이 되니 며칠 더 있고 싶다고 했다. 장수 근처에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서 그 시간이 심심하진 않았다.

아이들 둘과 나의 시간. 아이들이 어렸을 땐 그 많은 짐을 들고 어딜 가도 준비가 쉽지 않았고 마음이 편하지 않고 몸이 힘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 컸다고 나는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어디로든 아이들과 갈 수 있게 되었다.

참 더디게만 가던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특히 아이 아빠 없이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마음에 큰 부담이었지만 제 할 일을 알아서 하는 첫째와 이제는 말귀를 조금 알아듣는 둘째가 내 옆에 있어 셋이 하는 여행이 즐거워졌다. 

그냥 아이들과 친정에 간 일일뿐인데 글로 쓰니 뭔가 대단한 기행을 한 것 같이 느껴진다.

흐르는 시간 속에 기억을 붙잡고 싶어 아무렇게나 쓰는 글이지만 지난 며칠을 이렇게 쓸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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