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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Oct 03. 2022

너의 핸드폰

다섯 달 전에 육아휴직 후 달라진 것들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복직 후 한 달이 되었다.  복직 후 달라진 것은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달라졌다기보다 원래대로 돌아온 것인데 학교로 돌아온 내게 사람들은 다들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원래 있던 곳에서 잠시 떨어져 있다가 이제 다시 제자리에 왔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익숙한 듯 낯선 느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종종 느끼는 이런 낯섦이 힘들다는 증거일까?

낯선 것은 학교에서만은 아니었다.

집에서 평소엔 볼 수 없었던 낯선 장면들이 목격되었다. 그것은 아이의 휴대폰 때문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복직 몇 주 전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주었다. 8살인 첫째는 핸드폰을 언제 사줄 거냐는 말을 자주 했었는데 휴직 중이었을 때는 내가 때맞춰 데리러 가면 되고 학교 끝나면 학원을 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집에 와서 항상 같이 있었기 때문에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하지만 2학기에는 학교 다녀와서 텅 빈 집에 혼자 있을 아이가 걱정이 되어 핸드폰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을 갖게 된 후 아이는 스스로 사용 규칙을 만들어 식탁 옆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놓았다.

-학교에서 사용하지 않기(아이는 핸드폰을 학교에 가져가지 않는다. 집에서만 사용 중이다)

-핸드폰을 막 쓰지 않고 필요할 때만 쓰기(어플은 아직 사용하지 않고 문자와 전화만 사용한다)


간단하고 명확한 규칙이었지만 디테일이 조금 부족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어 보충했다.

처음 아이에게 핸드폰을 줄 땐 전화나 문자 외에 다른 기능들은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아이는 핸드폰의 다양한 기본 기능들에 대해 하나씩 스스로 터득했다. 카카오톡이나 유튜브 등을 보지는 않아도 그냥 핸드폰 하나만으로도 처음인 아이에겐 충분히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주로 사용하는 기능은

1. 전화하기

딸은 영상 통화가 아닌데도 전화기를 얼굴 앞에 대고 영상 통화처럼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는 하지 않는다. 엄마야? 아빠야? 바로 신원 확인부터 들어간다.


2. 문자 보내기

대상이 엄마 아빠 외에도 외할아버지, 사촌 언니에게 수시로 문자를 보낸다. 답장이 올 때까지 보낸다.


3. 사진 찍기 

동생, 엄마, 아빠 사진을 계속 찍어준다.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표정이 한결같다.


4. 배경 화면 바꾸기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배경 화면을 수시로 바꾼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꾼다.

자기 핸드폰인데 동생, 아빠, 엄마 얼굴이 메인이다.


5. 계산기와 캘린더 사용하기

구구단을 못 외우지만 계산기로 문제를 낸다.

가족들의 생일을 입력하기 위해 자주 안 보는 사촌들의 생일까지 묻는다. 그 아이들의 생일은 나도 모른다.


6. 안전문자 알림 확인해서 알려주기

덕분에 나는 안 보고도 오늘 몇 명 확진이 되었는지 안다.


7. 커버 바꾸기

커버 두 개를 끼웠다가 벗겼다가 반복한다. 커버가 마음에 안들 때는 그냥 벗긴 채 사용한다.


8. 배터리 확인하기

웬일인지 아이의 핸드폰은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아이는 배터리를 수시로 확인하고 충전한다.


지금까지 사용하는 기능들은 이렇다.

사실 아이에겐 이미 핸드폰과 비슷한 아니 훨씬 다양한 기능을 가진 장난감들이 많다. 시크릿 쥬쥬 셀카폰, 시크릿 쥬쥬 노트북, 시크릿 쥬쥬 터치패드가 그것이다.

딸내미를 가진 엄마들은 다 알고 있을 이런 장난감들은 지금 아이의 핸드폰보다 훨씬 재미있다.

가격이 사악하긴 해도 아이는 이미 그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카메라 사용법, 문자 보내기, 게임까지 안 해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아이는 몇 번 갖고 놀다가 잊어버리고선 또 다른 장난감을 찾았다.


핸드폰은 이런 장난감보다도 훨씬 기능이 적다. 현재까지는.

그러나 핸드폰은 장난감과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사람과의 연결이다.

아이는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면서 다른 사람과 연락을 혼자서 주고받는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출근한 아빠에게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모습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던 언젠가의 내 모습과도 닮았다. 엄마에게 하트를 열개씩 눌러 문자를 보내고 몇 달에 한 번씩 보는 사촌 언니의 주말  스케줄도 알고 있다. 외갓집에 가기 전 외할아버지에게 언제 도착할 거라고 세심하게 소식을 알리고 앞니가 네 개나 빠졌지만 개의치 않고 활짝 웃는 셀카를 찍어 할머니에게 보낸다.


연락을 주고받는 상황, 연결된 느낌이 아이에겐 소중했을까?


육아시간을 쓰고 나오면 3시에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5학년은 수업이 2시 40분에 끝난다.

아이들 보내고 알림장 다시 정리해서 올리고 책상이라도 정리하자 치면 벌써 3시 반이다.

업무 기안하고 결재받을 것들도 있고 학년 일도 있고, 더군다나 저번 주는 내내 전화 상담 기간이었다.

육아시간에 맞춰 나오기는 언감생심이다.

아무리 빨리 준비해도 9월 내내 4시는 훌쩍 넘고 둘째까지 데리고 집에 오면 4시 40분이었다.


아이는 학교 마치면 3시 40분에 집에 돌아온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한 시간 가까이 혼자 있는다.

집에 와서 손발 잘 씻고 아침에 챙겨둔 간식도 스스로 꺼내 먹고, 알림장과 가정통신문도 식탁 위에 얌전히 둔다. 물통도 싱크대에 두고 장수풍뎅이 톱밥 말랐는지 확인하고 물도 뿌려준다.

집에서 자기가 할 일을 다 마친 다음 아이는 조금 외로웠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의 외로움을

핸드폰 너머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몇 글자의 다정한 문자로 달랬던 걸까


평소 아이들이 핸드폰을 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이나 방과 후 계단 아래서 옹기종기 모여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면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내 아이의 핸드폰은 외로움을 잊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점점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 지금의 이런 생각이 가소로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대신 아이 곁에 있는 핸드폰이 고맙고 유용하다.

아이가 다른 신세계를 알아버리기 전에, 닭살 문자도 많이 보내고 전화도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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