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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Sep 29. 2022

아빠 보고 싶어

"아빠 보고 싶어!"

아빠가 없이 지낸 지 3일 차, 딸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터지듯이 나온 한 마디였다.

남편은 조선소 시운전 부서에 근무한다. 배의 마지막 공정인 시운전은 여러 가지 기술적 점검을 하기 위해 짧게는 하루에서 일주일까지 배를 타고 우리나라 가까운 바다부터 먼바다까지 돌아다닌다.

지난주에 5박 6일, 이번 주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6박 7일 일정으로 떠났다.

남겨진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한다.

나는 학교로, 큰 아이도 학교, 둘째는 유치원으로 매일을 바삐 보내고 있다.

학교 다녀와서 간식 먹고 놀다가, 도서관도 가고, 운동장이나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오면 씻고, 저녁 먹고 매일매일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아이들에겐 피곤한 엄마가 해 줄 수 없는 아빠와의 놀이가 그리웠나 보다.


아빠가 보고 싶단 딸은 아침부터 아빠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다.

핸드폰이 생긴 직후 엄마와 아빠에게 문자 보내는 방법을 알고 나서부터 열정적으로 문자를 보낸다.

바빠서 문자 한 통 보내기 힘든 아침에 딸이 보내는 메시지는 남편에게 든든한 위로였는지 남편과 딸은 떨어져 지내는 동안 부쩍 연락이 잦다.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해도 아빠가 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딸은 심심할 때면 옆으로 와서 툭툭 아빠 보고 싶다고 하니 나 역시 심장이 말랑해져서 말을 건넨다.

"엄마도. 아빠 보고 싶다."


남편이 진짜 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나 혼자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집안일이 감당이 안되어서 그런 것인지. 후자 쪽으로 조금 더 기울지만 진심으로 남편의 빈자리가 심심치 않게 느껴진다.


아침에 아이들 가방에 물 넣어두기

아침에 먹을 과일 깎아서 잘라 놓기

금방 금방 쌓이는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와 일반쓰레기 버리기

물통에 보리차 끓여 놓기

저녁 먹고 나서 설거지 하기


사소한 일이지만 나눠서 할 때와 내가 혼자서 다 해야 할 때 일은 크게 느껴진다.

다행히 둘째가 이제는 샤워도 혼자 할 수 있고, 양치나 옷 갈아입는 것도 잘하고, 더욱이 떼쓰는 일이 많이 줄어서 아이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적어졌지만 둘이 할 일을 혼자서 하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남편과 싸울 때 남편의 방어용 고정 멘트가 있다.

"내가 안 하는 게 뭔데?"

그러면 나는 이렇게 공격했다.

"그럼 하는 건 뭔데?"


뭘 하는지 격한 감정에 휩싸일 때는 남편이 하던 집안일들이 작고 또 작아 보이고 내가 하는 일들은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보여서 그런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며칠씩 집에 없으면 빈자리가 느껴진다.

거들 일손이 필요한 걸까?

옆에 있는 남편의 존재가 필요한 걸까?


아침 저녁엔 쌀쌀하고 낮에는 여름처럼 습하고 덥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이리저리 다니면서 일하고 있을 남편이 안쓰럽다가도 혼자 아등바등하고 있으면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의 불쾌지수처럼 열화가 솟구친다.


오늘 딸 공책에서 귀여운 그림을 발견했다.

눈이 초롱초롱한 예쁜 여자 아이와 그 곁에서 하트 뿅뿅을 날리는 두 남자아이 그림이었다.

너무 귀엽고 재밌어서 누구를 그린 거냐고 하니까 엄마를 그렸단다.

엥? 나라고?

아닌 것 같아서 다시 물어보니 엄마를 보고 있는 아빠와 동생을 그렸다고 한다.

정말 아닌 것 같았지만 딸이 그렇다니까 알았다고 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곰곰이 그림을 다시 보았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남편과 연애를 하던 동안 그때의 남편은 이런 눈을 하고 나를 보았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나의 편의와 필요에 의해 남편을 찾고 있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남편을 보았다. 순수하게 아빠를 그리워하는 딸아이에게서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순수하게 남편 자체를 그리워하던 시간이 분명히 있었다.


시간은 열심히 흐르고 있고 일주일도 벌써 반이나 흘렀다.

이번 시운전 기간은 아빠를 기다리는 딸처럼 나도 콩닥콩닥 남편을 그리워하며 바삐 시간을 보내봐야겠다.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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