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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Nov 06. 2022

그날 밤, 별빛은 밝았다

10 29 정말 오랜만에 아이들과 캠핑을 갔다.

재작년 이맘때 갔던 근교의 캠핑장이었다. 아이들은 모처럼 가는 캠핑에 몹시 설렜고   내내 캠핑에 대한 느낌과 설렘과 계획과 기타 등등을   없이 이야기했다. 전날엔 문방구에 들러 텐트를 꾸밀 장식품도   샀다. 아이들은 장식품보단 장난감에 관심이 많았지만 적당히 차단하고 텐트에 달아놓을 풍선과 가랜드를 사서 돌아왔다.


당일 아침, 얼마나 분주했는지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모처럼의 토요일 아침인데도 7시도  되어 일어났고 그보다  자고 싶은 엄마 아빠는 아이들의 성화에  이겨 겨우 눈을 떼고 아침 식사 준비부터 캠핑에 먹을 반찬거리, 텐트, 침낭, 갈아입을 , 의자, 테이블, 일회용품, 전기담요 기타 등등 분주히 움직였다. 그만큼 신경도 날카로웠다.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이것저것 물건을 만지면 날이  목소리로 제재했다. 차에 이것저것  욱여넣으니 우리가  자리만 겨우 남았다. 우리들의 인내심도 비좁게 남아 가는  내내 잔소리와 짜증과 울음이 뒤섞인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하지만 이내 도착한 캠핑장은 탁 트인 바다가 보이고 이제 막 낙엽이 지는 플라타너스가 예쁜 곳이었다.

언제 그렇게 신경질을 냈는지 잊어버리고 텐트도 뚝딱뚝딱 금방 설치하고 점심도 꿀떡꿀떡 잘 먹었다.


긴 오후였다.

아침에 서두른 탓이었는지 캠핑장에 사람도 많이 없었고 우리 사이트는 넓은 공터가 옆에 있어서 캠핑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노는지 의자에 앉아 다 볼 수 있었다.

남편과 배드민턴도 치고, 아이들과 공놀이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긴 오후를 천천히, 느긋하게 보냈다.

하늘은 높고 넓고 파랗고 아무튼 좋았다.

바람이 쌀랑하긴 했지만 코끝이 시릴 정도는 아니었고 적당히 선선해서 텐트 안에서도 한잠 자기 좋았다.

오후가 지나자 바다 끝으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닷물이 서서히 차오르면서 양식장이 있던 얕은 바다는 찰랑거렸고 산 너머로 타는 노을은 점점이 흩어지며 여기 해가 있었노라 이야기했다. 빨간 햇빛을 머금은 구름이 겹겹이 쌓였다가 흘러갔다.

저녁은 금방 밤이 되었고 우리는 장작불을 햇빛 삼아 책도 보고 저녁도 먹으며 이야기하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별 인기척도 없었는데 스르륵 깼다.

아이들이 크면서 넷이서도 넓던 텐트가 이젠 좁았는지 뒤엉켜 서로의 팔과 발이 베개가 된 채 그렇게 잠이 들었기에 불편해서 깼는지도 모르겠다. 핸드폰을 찾아보니 어디 갔는지 안 보여서 남편 핸드폰을 보니 11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저녁을 짜게 먹어서 일단 물을 마시러 텐트 밖으로 나갔다.

텐트 안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자동으로 눈이 번쩍 뜨였다.

잠들기 전에 입고 잤던 얇은 패딩으로는 이제 밤공기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일단 장작불을 피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의자에 앉아 불을 뒤적이니 여태 살아있던 불씨들이 휘휘 날아올랐다.

장작 두어 개를 올리니 연기만 폴폴 났다.

다시 불을 붙여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불씨가 점점 커졌고 장작 두 개에 불꽃이 감싸며 불길이 살아났다.

화로에서 가까운 다리는 뜨끈뜨끈했는데 볼은 차가웠다.

늦은 밤이라 연기 피우는 것이 조심스러웠지만 나처럼 밤늦게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어 그냥 그렇게 있었다.

하늘을 보니 별이 무척 많았다.

별 많은 것이 뭐 새로울 것도 없었지만 나 혼자 보는 별이 아깝고 귀했다.

핸드폰을 찾아야 했다.

이 장면을 찍어야 해!

다시 텐트로 들어가 뒤적였지만 어딜 봐도 없었다.

아이들 침낭 밑에 깔렸는지 찾을 수 없어 도로 나왔다.

그냥 내 눈으로 하늘을 담기로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내 위로 떠있었고 그 별빛이 고스란히 머리 위에 쏟아지는 밤이라니.

아름다웠다. 그리고 남은 불씨가 다 사그라들 때쯤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잠을 잤다.

그날 밤 별빛은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이었다.

다행히 핸드폰은 텐트 안에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포털 사이트 앱을 열었다.

믿기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2022 대한민국에서 절대는 일어나서는  되는 사건이었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아버지에게 전화가 문자가 여러 차례 오고 우리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음을 알린 후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았다.

살아있음이 감사했고, 살아있음이 미안했고,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임을 또 잊어버린 내게 자책감이 들었다.

그 반짝이는 별들을 지켜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내가 어제 그토록 아름답다고 이야기한 별빛들은 그 모든 일들을 이미 알고서 그렇게 반짝였는지,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을 또다시 겪어야 하는지 모든  의문 투성이었다.


2014년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때와 같은, 그때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황망히 잃어야 하는 젊은 별들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나와 내 가족이 살아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엔 너무 아프고  두려운 일이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앞으로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위기를 넘겼으므로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2014년, 그렇게 아픈 봄을 보냈는데 8년이 지나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왔다.

2022년 10월, 우리는 얼마나 더 차가운 가을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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