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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Nov 10. 2022

달을 보는 아이

11.8 개기월식을 보다

어중간한 인생을 살아오면서 개기월식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화요일 오후, 퇴근 후 아이들과 같이 꽃을 보러 갔다가 짜장면도 먹고 카페에 들러 시원한 자몽에이드 한잔을 마셨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적당한 시간을 기다렸다.

바로 개기월식!

아침 뉴스에서 오늘 개기월식이라고, 천왕성 엄폐도 볼 수 있다면서 진귀한 우주쇼가 될 거라고 들어서 관심이 가긴 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뉴스에서 들은 짧은 지식으로 간단히 안내하고 저녁에 한번 보라고 이야기했는데 말한 당사자가 안 보면 면이 안 설 것 같기도 하고 저녁 먹은 것이 과하기도 해서 아이들과 같이 공설 운동장에 갔다.

공설 운동장은 우리 동네에서 비교적 높은 곳에 있기도 하고 주변에 높은 아파트도 많이 없어서 잘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공설운동장 스탠드 쪽 조명이 너무 밝아 뭔 일인가 했는데 아저씨들이 열심히 공을 차고 계셨다.

그래도 그 환한 조명 너머로 하늘에서는 개기월식이 진행 중이었다.

손톱만큼 남은 노란 달이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실시간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개기월식을 이렇게 일부러 시간을 내서 보러 온 것도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작아지는 달과 흐릿하게 붉어지는 달을 보면서 연방 신기해했다.


운동장을 천천히 걸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트랙을 달렸고, 많은 분들이 저녁 식사 후 운동하고 계셔서 나도 달리고 싶었지만 그날따라 구두를 신어서 달릴 수 없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싸늘해진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엄마 손을 잡고 달리고 싶은 아들과 딸은 차가운 엄마 손이라도 잡아주었다.

천천히 사라지는 달을 보며 걷는 기분이 좋았다.

운동장을 뱅글 한 바퀴 돌면서 가장 달이 잘 보일 만한 곳을 찾았다.

이제 곧 개기월식이 될 것이었다.

노랗게 테두리만 조금 남은 달이 짠! 하고 사라지는 모습이 제일 잘 보일 것 같은 곳을 찾았다.

아파트 사이로 달이 가렸다가 보였다가, 공설운동장 주변을 두른 은행나무 사이로 보였다가 안 보이길 반복하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뻥 뚫린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 갔다.

그나마 조명이 덜 비추는 곳이라 개기월식을 잘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운동장 언덕 너머 난간으로 가고 싶어 했으나 어두워서 아래에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동글동글 까만 옷을 입은 아이는 핸드폰 카메라로 달을 계속 찍고 있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였다. 먼저 말을 거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내 옆에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우리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 넓은 운동장에 많은 아저씨들이 형광색 유니폼을 입고 달처럼 번쩍이는 빛을 내며 운동을 하고 계셨고, 트랙에는 산책 겸 걷기 운동하는 아주머니들, 달리고 있는 젊은 청년들이 많았다.

그 사이에서 나와 우리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만 한 방향으로 달을 보고 있었다.

10분쯤 같은 장소에 있으니 점점 달이 움직일수록 거리가 좁혀졌나 보다.

개기월식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 되자 아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달을 찍으려고 나왔어요.

나한테 하는 말인가 싶어 주변을 보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대답을 했다.


-그래?  나도 달 보러 왔어.

-한 시간 전부터 나와서 보고 있었어요.

-진짜? 추운데 대단하다.


아이는 내 대답을 듣자 자기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아무리 확대를 해도 흐릿하게만 잡히는 내 핸드폰 카메라와는 차원이 다른 달 사진이었다.

그냥 조금 관심이 있는 아이인가 싶었는데 사진을 보니 이 아이는 진심이었다.


-어제도 나와서 찍었어요. (사진 보여줌)

-그래? 사진 진짜 잘 나왔다. 나는 아무리 찍어도  흐릿하게 나오는데. 사진을 잘 찍는구나.

아이가 사진을 보여주자 뛰어다니던 우리 아이들도 엄마가 누구랑 이야기를 하나 싶어 옆으로 다가왔다.

이 형은 누구지? 엄마는 왜 모르는 사람이랑 이야기를 하지? 아이들은 궁금했나 보다. 나도 궁금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야?

-네. **초등학교 다녀요.

-아~ 진짜! 나도 거기 다녀.   

-선생님이세요?

-응. 너는 몇 학년이니?

-6학년이에요.

-선생님이 달 보라고 숙제 내주셨어?

-아니요? 그냥 보고 싶어서요. 달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요.

-여기서 집 가까워? 늦었는데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아니에요. 집 바로 앞이에요. 집에서 잘 안 보여서 나왔어요.


아이는 얌전한 말투로 상대방에 대해 예의를 지키며 과하지 않게 자신의 업적(?)을 보여주었다.

초등학생 아이가 핸드폰으로 찍었다고 하기엔 너무 멋진 달 사진이었다.

확대를 하고 그 상태에서 더 확대를 할 수 있는 핸드폰 기종으로 보였다.

아이가 찍은 사진도 물론 멋졌지만 그 시각에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학원을 가거나, 티브이를 보지 않고 하늘을 보고 있는 아이의 단호한 시선이 대견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도 아니고 사실 같은 학교에 있다고 다 알 수도 없어 처음 보는 아이였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기특하다는 말보다 멋졌다.


그 시각, 개기월식과 천왕성 엄폐가 2-300년 만에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달을 보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너른 운동장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던 것은 우리들 뿐이었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같이 서 있다 보니 모르는 아이라도 갑자기 친근감이 들었나 보다. 서로 찍은 사진도 보여주고 주로 그 아이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감탄하다가 하늘도 보고, 점점 더 붉어지는 달을 보며 잠깐 신기해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더 서있기 힘들어 그 아이와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데 아이는 우리가 가고도 계속 하늘을 보고 달을 보고 있었다.


달을 보는 아이.

혼자서 어두운 하늘을 응시하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고학년 남학생들에 대한 어떤 편견이 있던 나는 그 아이가 동화책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어떤 아이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갔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강당에 있는 물품을 정리하고 있는데(내일이 학예회, 창고를 정리해야 이동 가능)

우리 반 아이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우리 반 아이랑 어제 본 아이가 같이 있었다.

진짜 우리 학교에 다니는 아이였다.

아이는 내 책상에 작은 선물을 놔두고 왔다고 했다. 고맙다고 말하고 보냈는데 세상에 일을 마치고 책상에 가보니 진짜 선물이 있었다.

온몸에 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근 십 년간 아무도 청소하지 않은 듯한 물품 정리함을 혼자서 정리하고 와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아이는 나에게 포기하지 말고 꿈을 이루라고 쓴 책갈피를 선물로 주었다.

나에게 포기하지 않아야 할 꿈은 무엇일까

그 밤, 달을 보면서 그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나는 어떤 꿈을 이루고 싶은 걸까

내 일상에서 꿈이란 단어는 이미 잊은 줄 알았는데 나도 다시 꿈을 꿔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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