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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Nov 18. 2022

그냥 여기 이렇게 있어도 되는 것

지난주 학예회에 옷을 너무 얇게 입은 채로 강당에 오래 있어서 그랬는지 그 이후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았다. 우리 아이들도 하루 이틀 목이 갈라지더니 찐득한 콧물이 콧구멍에 꽉 차고 가래 끓는 소리가 며칠 동안 이어졌다. 지난 주말 시댁에 가기 전에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처방받은 약을 먹은 후 아이들은 차도가 좀 있어서 이번 주에는 말짱하게 학교랑 유치원에 갔다.

문제는 또.. 나다.


지난 2월 말 코로나에 걸린 이후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잘 쉬고 잘 먹고 충분히 잤더니 건강하다고 스스로 느꼈을 정도였고 수영도 하고 있어 나름 체력도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2학기 들어서 우리 아이들은 감기에 끊이지 않고 걸렸지만 나는 아이들과 물고 빨고 해도 감기 비슷한 증상도 없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번 주는 아니었다.

토요일 일요일 성주에 다녀오고 집에 오는 길에 해인사에 들렀다.

거의 10년 만에 가는 해인사에 우리 아이들과 같이 가니까 더 좋았는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걷는 내내 온몸이 한기가 돌았다.

그렇게 집에 와서 다음 날 출근을 할 때 목이 살짝 따끔했다. 약을 계속 먹고 있었기에 별 거 아니겠거니 했는데 월요일 수업을 마치니 목소리가 변한 것이 느껴졌다.


살짝 허스키하고 평소의 내 목소리보다 낮은 톤의 갈라지는 목소리.

이것은 지난번 코로나 증상이었던 목소리 변조의 신호인가 싶었다.


지난번 코로나에 확진되었을 때 나는 열도 심하지 않았고 콧물 가래도 없었지만 유독 심했던 것이 이틀 정도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았다. 인후통이 너무 심했고 목이 타는 듯한 느낌에 열이 목구멍에서만 나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그렇게 목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목소리가 변하니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자가진단키트를 했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월요일 오후부터 하루에 2번씩 새벽에 한 번, 퇴근하고 한 번 키트로 확인을 했다.


학생들과도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쉬는 시간, 아침활동시간, 점심시간 할 것 없이 내 자리로 모여드는 아이들을 제지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나 먼저 침묵하기

교실에서 재잘대지 않는 선생님을 보니 아이들도 역시나 재잘대는 것이 좀 덜했다.

아침에 등교한 아이들이

"어? 우리 반 왜 이렇게 조용하지?" 할 정도였다.

성공인가 싶었지만 역시나 쉬는 시간이면 쪼르르 이런저런 민원을 제기하는 아이들 통에 거리 유지는 힘들었다. 교실에서 수업 도중 마시던 물도 줄였다.

10번 마실 것을 1번 마시는 것도 생각하고 마셨다.

화요일을 그렇게 보내니 몸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이상하게 아침에는 목소리가 멀쩡했다가 오후가 되면 갈라지는 것이 성대결절인가도 싶었지만 일단 조심하는 것과 자가진단키트만이 방법이었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다.

수요일 아침, 옆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선생님께서도 감기에 걸리셨는지 목소리가 변해있었다. 며칠 전부터 감기가 심해 본인도 자가진단키트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을 할 뿐이었다. 그날 오후에는 전교직원 심폐소생술 연수가 있어서 강당에 전 교직원이 모였다.

원래는 심폐소생술용 인형을 가지고 연습을 하는데 이번에 오신 강사님은 짝꿍과 함께 실전처럼 연습을 하자고 하셨다.


잉? 싶었지만 10.29 참사에서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기에 군소리 없이 연습을 했다.

흉부 압박과 기도 확보,  기도 폐쇄 시 하임리히법 등을 알려주었는데 직접 짝꿍과 하다 보니 더 기억에 잘 남았다. 옆반 선생님과 정말 즐겁고도 유익하게 연수를 받고 집에 돌아갔는데 저녁 무렵 옆반 선생님께 온 문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선생님께서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헉 싶었다.

거의 증상도 없었고 목소리도 조금 돌아와 있었기에 의심하지 않았는데 다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가진단키트를 했다. 시간을 두고 연속으로 했지만 음성이었다. 그래도 의심쩍어 다음날 출근 전에 신속항원검사를 하러 간다고 교감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자가진단키트 음성이면 출근하라고 하셨다.


목요일 아침.

이미 자가진단키트도 했고 아직은 음성이었지만 걱정과 두려움, 불안감을 정말 가득 안고 교실에 들어갔다.

여느 때처럼 인사를 건네지 않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조금은 거리감을 느꼈는지 다가오지 않았다.

평소보다 조금 가라앉은 교실은 하루 종일 침착한 듯했으나 다시 붕붕 떠올랐다.

무엇보다 검사 후 결과에 따라 일주일 동안 아이들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수업을 마치자는 생각에 6교시 수업을 다 했다.


수업이 끝난 후 별안간 아이들에게 이런 말이 하고 싶었다.


나는 평소 학생들에게 기대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뭔가를 가르쳐주고 알게 되는 과정이 힘든 학생이 많기 에 부푼 기대보다는 현재에 충실히 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너희들을 만나고 아침이 기대가 된다.

학교에 가는 것이 설렜다.

오늘은 뭘 알려주면 좋아할까?

뭘 하면 재미있어할까?

그렇게 기대하게 만들어줘서 참 고맙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뭉클했다. 어디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닌데 그저 검사받으러 가는 것뿐인데 오늘 아니면 못 할 말처럼 해버리고 나니 시원했다.

그리고 조퇴하여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기다리는 15분이 참... 길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아직 내 몸에 있는 바이러스가 검사 결과에 잡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일단 오늘 학생들과 일주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함을 다시 알게 되었다.

방과 후 보충지도까지 다 하고 마지막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4시가 다 되었다.어둑어둑해지는 교실에 혼자 있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오늘은 출장 다녀온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고 했기에 나 혼자 있을 수 있어 참 좋다.

어두워서 더 좋다. 모니터 화면만 빛난다.

점차 어두워지는 교실을 바라보니 언제 아이들로 가득했는가 싶다.

청소하고 가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교실 바닥을 지저분하지만 나도 청소하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라서 그냥 이렇게 글만 쓰고 있다.


그냥 이렇게 여기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건강하다는 것, 무사하다는 것, 그냥 이렇게 있어도 된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젠 진짜 정리하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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