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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Feb 07. 2023

이별은 바쁘다

종업식 3일전 교사 일기

개학하고 한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바쁘다.

지난주엔 2023학년도 시예산 사업 신청 및 계획서 작성, 남은 예산 다 쓰기, 반 편성, 생활기록부 입력 및 수정, 다른 학년 생활기록부 수정, 학생 상담, 학부모 상담, 수행평가 정리, 교과서 마무리까지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훌쩍 지나버렸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생활기록부 작성이 가장 오래 걸리고 까다롭다. 매번 방학 때 다 끝내자고 다짐하지만 방학은 속절없이 지나가서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와야만 서두르게 된다. 그렇게 급하게 한 업보로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봐도 오탈자와 어색한 문장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내가 일단 1차로 마무리하면 옆 반 선생님께 2차 점검, 다른 학년 선생님이 한번 더 점검해서 수정하고 연구부장님께 보낸다. 연구부장님이 점검하고 거기서 수정할 사항이 또 생기면 다시 고친 후 결재를 올린다.

연구부장님-교무부장님-교감선생님까지 거치고 마지막 교장선생님의 결재가 나면 그제야 통지표 인쇄를 한다. 아이들이 학기말이면 받는 두어 장의 얇디얇은 종이는 1년간의 기록이고 종업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 선생님들의 손길을 거쳐야만 완성될 수 있다.

장인이 오랜 기간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드는 수제품.

비유가 적절할진 모르겠으나 생활기록부에 담긴 시간과 고민은 종이의 무게만큼 가볍지는 않다.

 

언뜻 보기엔 그저 어디서 다 본 것 같은 투박한 문장일지 몰라도 생기부 작성을 할 때만큼은 그 아이 한 명이 내 머릿속의 중심이다.

기억나는 행동, 표정, 좋아하고 잘하는 것, 조금 부족했던 부분, 숙제는 어떻게 하는지, 맡은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사물함 책상 정리는 잘하는지,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밥은 잘 먹는지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한다. 뚝딱 문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쓸 수 있다. 그렇게 생기부를 입력하고 통지표를 인쇄한 후 교사 이름 옆에 도장을 찍는다.

진짜 아이들을 이별할 시간이라는 뜻이다.


종업식이 다가오니 새로운 학년에 올라갈 설렘, 누구랑 같은 반이 될지 궁금함 때문에 교실은 혼란하다.

아이들은 마지막이라는 생각보다는 새로운 시작에 더 두근거리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순간 나는 마지막에 집중하고 있다.

완벽한 이별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바쁠 예정이다.

방학 과제였던 선생님께 편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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