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Feb 11. 2023

진짜 안녕

종업식 마지막 날의 일기

토요일 오후 나는 카페에 있다.

얼마 만에 혼자 있는 시간인 줄 모르겠다. 수영장을 다닐 때는 새벽 시간은 온전히 내 시간이었는데 발가락 골절 이후 새벽 시간도 내 시간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심각하게 혼자 있고 싶었다. 마침 남편이 토요일이라고 아이 둘을 데리고 부산에 놀러 간다며 아홉 시도 안 돼서 집을 나갔다. 그때까지도 나는 침대에 있었다. 누워서 책도 보고 핸드폰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딸이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 해?

-엄마 누워 있어.

-엄마 허리 안 아파?

-좀 아픈 것 같네.

-오늘 뭐 할 거야?

-엄마? 계속 누워있을 건데


딸이 생각하기에도 내 허리가 좀 걱정되는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8시에 누워서 침대 밖에 나간 것은 물 마실 때 밖에 없는 것 같다.

계속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어제는 졸업식 겸 종업식이었다.

어제 있었던 일을 적어야겠다.


강당에 9시 10분에 가서 교실에 돌아오니 11시 40분이었다. 2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서 있었던 것이다. 3년 만에 대면 졸업식(대면 졸업식이라는 말도 이상하지만)이 있었다. 시작 시각이 9시 반이어서 5학년은 미리 강당에 가서 6학년이 들어올 때 박수를 치기로 했다. 곧 강당에 빽빽하게 학부모님들이 들어섰고 6학년도 들어섰다. 우리들의 임무는 너무 간단했다.


1. 박수 치기

2. 노래 크게 부르기

3. 조용히 있기


5학년이 내년 졸업식을 미리 체험해 보는 것은 좋은 교육적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길어질 땐 미리 경고가 필요했다.

일단 박수를 너무 많이 쳐야 했다.

6학년 4반이 들어오는 내내 박수를 치는 것은 할만했지만 그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교장선생님에게 졸업장을 받는 내내 박수를 치는 것은 사전약속이 아니었는데 아무튼 아이들은 그렇게 박수를 강요받고 있었다.

학부모들의 시야를 가려서 혹시나 자녀의 소중한 졸업식 사진에 내 모습이 들어갈까 맨 뒷자리로 이동했다.

같이 모인 5학년 선생님들의 눈은 졸업장을 받는 6학년들이 아닌 자기 반 아이들이 너무 티 나게 떠들지는 않는지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100여 명의 아이들이 모두 졸업장을 받았다.

이제 첫 번째 임무가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옆반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건넸다.


-어제 유치원 졸업식에서 교장선생님이 기분이 좋으셨나 봐요.

-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말이 기시더라고요. 엄마들 힘들어하던데요.

-흠.... 오랜만에 학부모님들 보고 반가우셨나 봐요.


이번엔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교장선생님은 첫째로 시작한 어미가 마지막으로, 끝으로, 다시 한번, 끝을 알 수 없는 부사를 계속 늘이면서 싱글벙글 말씀을 하셨다. 문제는 말 중간중간 빌 때마다 우리는 눈치게임처럼 박수를 쳐야 했다.

아무튼 교장선생님의 인사가 끝나고 이제 다음 순서인가 싶었지만 역시나 학교운영위원회,  동창회,  학부모회분들이 괜히 온 게 아니었다. 비슷한 분량, 비슷한 내용, 비슷한 어조의 이야기를 3명 연달아했다.

우리 반에서 가장 정석대로 행동하는 아이 역시 박수를 대강 치고 허리가 점점 구부러져가고 있었다.

이쯤 되니 내 다리도 말을 듣지 않았다. 두 눈은 미친 듯이 빈자리를 찾고 있었지만 단 하나도 없었다.

겨우 축사가 끝나고 학교 밴드부 공연이 이어졌다. 우리 반 아이가 보컬이라 마침 그 아이 자리가 비어 그곳으로 빛의 속도고 달려가 잠시 앉았다. 아이의 상큼한 목소리와 노력이 엿보이는 기타 베이스 드럼 연주가 잠들어있던 졸업식장을 깨웠다.

좀 앉아 있으니 졸업식의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졸업생들의 마지막 영상과 재학생들의 축하 영상에 이어 우리 반 아이들이 그렇게 연습한 '이젠 안녕'을 열창하고 교가까지 부르니 한 시간 반가량 이어진 졸업식이 끝났다. 이렇게 교실로 들어갔으면 했지만 이번에 많은 선생님들이 전근을 가시기도 하고 방송으로 그동안 했던 종업식을 강당에서 하기에 우리는 의자 정리를 했다. 강당에 깔린 수많은 의자들을 정리하고 곧 1-4학년 아이들이 들어왔다.


아이들로 가득 찬 강당이 얼마만인지 모두가 모인 강당 종업식은 진짜 오랜만이었다. 6학년들이 학급으로 돌아가 졸업식을 마무리하는 동안 우리는 또 교감, 교장선생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통이라도 들고 왔어야 하는데 나도 아이들도 지친 상태로 종업식을 했다.

가시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우리 학교에 신규로 발령받아서 2-4년 근무하신 젊은 선생님들이 원하는 지역으로 가셨다. 개인적으로 대화하지 않았던 선생님들도 많았지만 그중 우리 딸 유치원 선생님이셨던 두 분 유치원 선생님들도 다른 학교로 가신다고 하니 서운했다.


일단 미션은 잘 완수했는지 교무 부장님께서도 5학년 고생했다고 먼저 들어가라고 하셨다.

강당에서 빠져나오니 흐렸던 하늘은 이미 개서 밝은 햇살이 눈부셨다.

이처럼 맑은 공기라니.

교실로 오니 나는 뭔가 할 힘이 없어 철퍼덕 앉았는데 아이들은 놀자고 한다.

얄짤없이 교실 청소를 다시 한번 하고 교실에 없던 동안 온 메신저를 읽었다.  


해야 할 일

1. 통지표 배부 및 마감(반편성 알려주기)*

2. 봄방학 근무 상황 결재 올리기*

3. 비전자문서 편철**

4. 예술강사(3월 수업 언제 시작할지, 사전 방문)**

5. 학급 & 업무 희망 신청서 작성 ***


일단 알겠고 밥 먹으러 갔다. 마지막 날인데 밥이 짰다. 사실 밥이 잘 안 넘어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전날 일찍 잤는데 6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그동안 찍었던 사진으로 영상 만들기와 아이들 선물로 담임 상장을 주려고 했는데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했다. 비교적 시간이 조금 걸리는 영상 만들기를 했다. 사진을 이어 붙여서 조금 영상 효과만 주면 되니까.

영상을 만들면서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은 딸 도시락 싸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는 종업식인 오늘까지 급식을 했지만 딸네 학교는 3교시하고 마치기 때문에 끝나고 돌봄 교실에 가야 했다. 돌봄 교실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을 싸면서 영상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금방 했다.

밥은 남편이 하고 콩나물국, 계란말이, 소시지 볶음 이 정도만 하면 되니까.

만들고 난 설거지도 남편이 했다. 국을 식혀서 보온도시락에 담고 상큼한 레드향까지 담아 도시락을 완성했다. 오래간만에 아침에 빵이 아니라 밥으로 아이들도 아침을 잘 먹었다. 열심히 만든 계란말이는 당근이 들어가서 그런지 잘 안 먹었지만 남은 것은 내 입으로 들어가면 되니까  하고 정리를 하는데


순간 등골이 오싹!

둘째도 오늘 도시락 싸야 하나?


나와 같은 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둘째는 초등학교랑 항상 같은 급식 스케줄이었다. 그래서 어제 유치원은 수료식을 했지만 오늘 급식을 할 줄 알았는데 급히 안내장을 찾아보니... 도시락을 준비하라고 쓰여 있었다.

출근 10분 전.  8시에 이 문구를 읽은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선생님께 웬만하면 연락을 안 하는데 급히 문자를 보내니 선생님께서 전화를 거셨다.


-어머니! 아이들은 오늘 돌봄 교실에서 같이 도시락 먹습니다.

-네. 선생님 ^^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정신이 바사삭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아침에 만든 반찬은 다 아이들이 이미 먹은 후였고 계란말이 두어 개, 국 조금, 밥만 있는 상황이었고 보온도시락이 없었다. 반찬통 하나에 밥 반절 담고, 첫째 도시락에서 소시지 몇 개와 계란말이를 꺼내 둘째 도시락에 나눠 담았다. 다행히 과일이 남아 있어 몇 개 넣었다. 이렇게 도시락을 어영부영 싸 보내니 벌써 출근 시간이었다. 우리 애들이 밥을 잘 먹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내 손을 이미 떠났기 때문에 더 신경 안 썼다.

안내장 안 읽은 내 잘못이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항상 혼자 다니는 우리 반 성실이가 (정말 성실함. 항상 일찍 와서 교실 창문 다 열고 바르게 앉아서 수업시간 기다림) 급식소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운동장에서 노는 다른 아이들을 보고 있는 건지 그냥 바람을 쏘이고 있던 건지 말을 건네려고 했는데 나를 보자 급히 일어나길래 아이를 붙잡았다.


-같이 가자!

걸음을 서서히 멈추어 뒤뚱거리며 걷는 선생님의 속도에 발을 맞추었다.

-오늘 졸업식 때 힘들었지?

-........ 네.

-선생님도! 너무 힘들었어. 아이고 계단은 왜 이렇게 많냐

-........ 네.

-운동장에서 좀 놀지

-........ 괜찮아요.

-(헉헉 계단이 너무 많다) 교실에서 선생님이랑 놀까?

-........ 괜찮아요.


그렇게 교실에 왔는데 아이들은 반편성을 기원하는 부적? 종이에 되고 싶은 반을 적어서 가슴, 등에 붙이고 돌아다녔다. 성실이가 복도에서 서성이길래 같이 놀자고 손을 끌었다.

평소에 아이들이 많이 하는 게임 중 블리츠라는 게임이 궁금했는데 물어봐서 같이 했다.

금방 2-3명 아이들이 옆에 붙어서 같이 했다. 처음에는 성실이랑 마지막으로 이야기도 나누고 조용히 하려고 했는데 나의 승부욕은 아이와의 마지막 호젓한 시간은 이미 잊고 게임에 눈이 돌아가서 아이가 딴 카드까지 뺏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게임에 열중하니 평소에 같이 어울리지 않았던 아이들도 같이 게임을 하면서 점심시간이 지나갔다. 성실이는 이미 게임에서 비켜서 관망하고 있었다.


점심 먹고 나서 기운이 나서 5교시는 체육을 했다. 나는 다리도 성치 않고 옷도 정장이라 같이 못해서 자유시간을 주었더니 배구, 피구, 농구, 축구, 공으로 할 수 있는 놀이는 다 하고 있었다. 마침 같이 강당을 쓰는 다른 반이 오지 않아서 오랜만에 넓은 강당이 우리 반 차지였다. 아까는 그렇게 아이들로 미어지더니 이제는 한가하게 우리 반만 있어 좋았다.

지난번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떨어진 세 번째 발가락 뼈가 단 하나도 붙지 않았다고 했다.

많이 움직이냐고 하길래..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하니 그렇게 계속 움직이다가는 끝까지 안 붙을 수 있다고 했다. 발가락이 굽어질 거라면서....


그 이후 조금 조심했는데 체육관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니 몸이 움찔거렸다.

그래서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배구 서브 연습을 했다. 혼자 노는 애들 몇몇이 옆에 오길래 같이 주고받기를 하는데 나는 나대로 빨리 움직이지 못하니까 제대로 못 받고 아이들은 배구를 해 본 적이 없어 받질 못했다.

그래도 빠릿빠릿한 여학생 둘이랑 재미나게 서브를 주도받았더니 기분이 좋았다.

교실로 돌아와 이제 마지막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불렀다.

이 시간 뒤로 아이들을 이렇게 부를 수 없었기에 그냥 불렀다.


-5학년 2반!


반편성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으로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통지표를 나눠주니 교실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같은 반이 된 아이를 찾고, 기뻐하고 실망하는 아이들 모습 속에서 이제 이 아이들은 내 손을 떠났다고 확실히 생각했다. 몸은 아직 같은 교실에 있지만 아이들은 이미 6학년 배정반으로 향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한동안 지켜봤다.


-5학년 2반!

대답 소리가 작아 다시 불렀다.


-5학년!

-2반!


헉!  순간 목이 매였다.

쟤들은 저렇게 기뻐서 좋아서 날뛰고 있는데 부끄럼을 모르는 내 눈이 벌게지기 시작했다.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종업식이라고 눈물이 났던 것은 10년 전 첫 담임을 했던 아이들을 올려 보낼 때가 전부였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교실에서 제일 열심히 공부한 똑똑이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었는데 그 아이를 보면 진짜 울어버릴 것 같아서 그쪽으로 절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을 만나서 정말 좋았어. 너희들을 잘 가르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모두 너희에게 알려줬어. 그래서 지금 눈물이 나는 것은 후련해서야.  이 교실을 나가면 이제 너희는 5학년 2반이 아니야. 그러니까 선생님을 오래오래 기억하지 마. 나는 너희의 길고 긴 인생에서 잠깐 만났던 선생님으로 이름도 기억하지 않아도 돼. 그냥 너희들이 앞으로 훨훨 날아가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이야. 잘 가.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문지르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보냈다. 아이들이 모두 앞으로 와서 인사를 하고 갔다. 울면서도 아이들이 놓고 간 준비물, 짐 없는지 확인했다. 똑똑이랑 이쁜이들이 편지를 줬다. 그래, 그거면 됐다.

교실 정리는 다음 주에 다시 하면 되니까.. 마지막으로 희망 업무와 학년을 적은 신청서를 교감선생님께 보냈다.

그렇게 어제 있었던 일을 적으니 오후도 훌쩍 지났다.

아빠랑 부산 갔다가 집에 도착했는지 딸한테 전화가 왔다.

어제의 후련함은 일주일 뒤 부담감으로 분명히 다가올테지만 오늘은 좀 쉬어도 되겠지.

진짜 이별했다.



작가의 이전글 이별은 바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