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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Feb 16. 2023

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궁금하다 궁금해. 네 마음

스텝 1. 발 쿵쿵

-엄마가 무슨 왕이야? 세종대왕이야? 내가 왜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데?


스텝 2. 귀 막기

-나도 엄마가 하는 말 안 들을 거야.  

 말 안 한다면서 왜 계속 말하는데?


스텝 3. 아아아악!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뭐라고 하지 마.

 계속 그러니까 짜증 나잖아.


보통 이 3단계다.

미운 네 살로 끝날 줄 알았는데 미운 다섯 살, 미운 여섯 살에 이어 드디어 미운 일곱 살이 되었다.

우리 아들이 화를 안 내고 말할 때는 세 살 때까지였던 것 같다.

화를 내는 이유는 너무 다양해서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아이의 화는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 줄 몰라 딸과 나는 늘 노심초사다.


-일어나라고 할 때

-밥 먹으라고 할 때

-밥 먹고 그릇 치우라고 할 때

-씻으라고 할 때

-양치하라고 할 때

-자기가 보고 싶은 티브이 보여달라고 할 때

-영상을 보다가 끊길 때

-카시트가 잘 안 될 때

-원하는 카시트(차에 두 개 있음)에 타고 싶을 때

-간식을 더 먹고 싶을 때

-밥이 먹기 싫을 때

-엄마 아빠가 화를 낼 때(엄마 아빠도 화가 난다)

-엄마가 먼저 양치를 할 때(같이 하자고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놀고 있음)

-볼일 본 후 손 씻으라고 할 때

-출근 시간 10분 남아서 빨리 준비하라고 할 때

-장난감을 정리하라고 할 때

-보드게임을 하는 중에 불리하거나 질 것 같을 때

-우유를 마시라고 할 때


원하는 것이 있을 때나 하기 싫은 일을 하라고 할 때 아이는 화를 낸다.

화를 내지 않고 말하는 것을 너무 어려워한다. 화를 낸 후 울먹이며 원하는 것을 말할 때 너무 힘들어한다.

그래서 요즘 우리 집에 새롭게 생긴 규칙은 이렇다.


1.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놀지 않는다.

2. 울면서 짜증 내고 소리 지르는 말은 듣지 않는다.

3.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에게만 친절하게 대해 준다.


이런 규칙이 있어도 매일 밤이 더 놀려는 아이와 이제 그만 자고 싶은 엄마 아빠와의 반복되는 다툼으로 시끄럽다. 그 와중에 딸은 엄마 아빠의 짜증이 자신에게 불똥 튀지 않을까 마음 졸이는 모습에 미안하다.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다는데 왜 우리 아들이 그럴 때 나는 대범하게 생각하지 못하는지.

지금! 이 순간! 제대로 가르치고 싶은 마음.

아이를 바르게 가르쳐야 나중에 제대로 자란 어른이 될 것 같은 사명감 때문에 작은 행동 하나하나, 사소한 것도 그냥 못 지나치는 것이다. 기본은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 같은데.


오늘 아침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우유 반 컵, 모닝빵 1개, 꽈배기 반 개, 계란 하나, 방울토마토  5개, 귤 하나

아이 둘 다 우유를 싫어해서 200ml 한 팩을 반절씩 따라준다. 오물오물 잘도 먹길래 나는 병원 갈 준비를 했다. 다 먹은 딸아이는 그릇도 치우고 양치를 하러 갔다.

아들도 과일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일어서길래 그릇은 내가 치우려고 가까이 가 봤더니 우유가 그대로 있었다.


-**아, 우유 먹어야지.

-우유? 우유가 어디 있었는데?

-여기 바로 있잖아. 마시고 컵 치워

-몇 시 몇 분에 먹으라고 했는데? 나 못 들었는데?

-앞에 있었잖아. 빵이랑 같이 먹지. 어서 먹어.

-그러니까 몇 시 몇 분에 말했냐고?(이미 악을 쓰고 있음)

-아까 차릴 때  말했지.

-그! 러! 니! 까! 언제 말했냐고!!!!!!!!!!!!!!!!!!!!!!!!!!!!!!

-????????????????????????????????????????

-(발 쿵쿵, 발 차는 시늉) 난 못 들었어!

-.................................... 지금 화나?

-몰라!

-화나면 방으로 들어가. 화 가라앉으면 그때 이야기해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

-화장실 다녀와.  그리고 방에서 10분 있다가 나와. 


시작은 우유를 안 먹는 아이에게 우유를 먹으라고 말한 것이었다. 아이가 먹기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기는 싫지만 빵과 우유를 먹는 것은 우리 집 아침 식사의 일정한 메뉴다. 아이가 우유를 싫어하는 것을 안다. 차라리 우유가 싫다고 조금만 먹겠다고 말하면 당연히 그렇게 하라고 했을 것이다. 아이는 거기서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말하는 것 대신 화를 선택했다.

나도 화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똑같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10분 후)

아이의 방을 열었더니 가져가 둔 우유를 다 먹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화 이제 다 풀렸어? 아까 왜 그랬어?

-우유 먹기 싫어서 그랬어요.(갑자기 존댓말)

-응. 앞으로 우유 먹기 싫으면 조금만 먹겠다고 말해.

-네. 엄마 미안해요.(갑자기 사과까지)

-응. 괜찮아. 엄마도 **이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아이는 양치까지 다 하고 평소보다 10분이나 빨리 등원 준비를 마쳤다. 한바탕 화를 내고 나면 아이는 후련한 것인지, 미안한 것인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할 일을 알아서 한다.

아이가 화를 내기 시작한 이후 정말 많이 싸웠다. 싸움의 원인은 이미 생각나지 않고 버릇없이 말하는 아이의 태도에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나는 아이를 두고 아이가 원하는 것 모두 해주기엔 나의 한계가 명확했다. 크고 작은 다툼들 속에서 아이도 나도 조금씩 알게 됐다.


화가 날 때는 서로에게서 떨어져라.

화가 난 이유로부터 도망가라.

화를 꺼트릴 수 없으니 화난 장소에서 벗어나라. 


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가만히 안고 있으면 몽글몽글 아이의 살 냄새와 따뜻함이 온몸에 퍼진다. 그 순간 너무 사랑스러워 행복함이 넘친다. 분명 사랑하는데 가끔, 아니 종종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잊지 말아야겠다. 화내는 이 순간도 정말 소중한 아이와의 시간이라고.


(사진 출처 - 아따맘마 중 일부, 무한도전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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