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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22. 2023

젊은 나에게

금요일 오후였다.

일찍 나갔다가 아들을 데리러 다시 들어오느니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이 났겠다 싶어 교실에 있었다.

다음 주에 있을 공개수업 자료를 미리 인쇄해서 코팅을 하려고 했는데 우리 학년 연구실에는 코팅기가 없어 6학년 연구실에 들어갔다. 겉으로 봤을 때 아무도 없어 보여 연구실 옆반 6학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연구실에 들어갔는데 6학년 선생님이 아이들과 간식을 드시고 계셨다.


-아이고!! 선생님 죄송해요. 아무도 안 계신 줄 알고. 옆 반 김**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들어왔어요.

코팅기 좀 써도 될까요?

-예. 물론이죠.  같이 드세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금방 하고 나갈게요.


괜히 아무도 없는 남의 집에 들어갔다가 들킨 기분으로 머쓱해져서 코팅기를 틀고 빨리 예열되기를 기다렸다.

코팅할 거리가 꽤 되어서 한참 있었다.

선생님만 있다면 모를까 아이들이 있어서 괜히 말 걸기가 쑥스러웠다.

귀에 꽂은 이어폰이 이렇게 고마울 때가.

괜스레 노래를 흥얼거리며 볼륨을 더 높였다.

금요일 오후에 아이들과 어떤 일로 남아서 이야기를 하는 줄은 잘 몰랐지만 높은 볼륨 너머로 선생님과 아이들의 대화는 스스럼없이 편안해 보였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꾸미지 않고 투명했다.

아직 어린 선생님과 어린아이들.

언젠가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이십 대는 어떤 모습이었지?

한 마디로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날들이었지만 늘 주눅 들어있었다.

첫 직장 첫 동료 선생님들은 늘 나를  챙겨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와 동갑이거나 1-2살 많은 비슷한 나이대의 선생님들인데도 나를 어린 후배처럼 챙겨주는 모습에 늘 받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같이 지낸 시간에 비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큼 편하지만은 않았다.

경력 많은 선생님들은 그들만의 두터운 벽이 있어 다가가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그다지 친절한 선생님도 아니었던 것 같다.

많이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그것을 전달할 기술도 참을성도 부족했다.  

작은 학교라 많은 업무로 늦은 퇴근과 이른 출근을 반복했지만 실수가 많았다.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하려고 했던 일들이 많았다.

잘하지 못하면서 큰 일을 떠맡고선 부담스러우면서도 내색을 못하고 웃는 얼굴을 하고 발은 늘 종종거렸다.

하다못해 수요일에 하는 직원 체육 연수(라 쓰고 배구)에 자리를 지키지만 내 쪽으로 오는 공 하나 제대로 맞받아치지 못해 실점 연속이었다.


25살 9월에 시작한 첫 직장 생활을 한 작은 학교. 그 학교를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나를 믿지 못하고 자책했던 시간이었다.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조용해지는 짧은 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져 한마디라도 먼저 꺼내려고 마음속으로 어떤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고 또 했다. 그도 아니면 그냥 듣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그저 듣고 어떻게 반응을 보내야 하는지 잘 몰라 그냥 듣기만 했다. 가만히 앉아서 남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의 감정선을 이해한 척 호응하는 때가 많았다.  

어른도 아니면서 어른인 척. 그걸 들키고 싶지 않은데 너무 티가 나는 어린애.


그때 나는 나에게만은 너그럽지 못했다.

아는 것 하나 없으면서 잘난 척하지 마.


여름이 시작되던 어떤 휴일에 두 명의 제자들과 숲을 누비며 나무 이름과 풀이름을 외우며 그림을 그렸던 그때의 내가.

밤늦게 연극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가기 힘든 아이를 집까지 태워주며 좁은 논두렁 길을 헤매던 그때의 내가.

눈이 펄펄 날리던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눈을 던지며 놀던 내가.

운동회날 새벽부터 만국기를 달겠다며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던 내가.

강당 무대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노래를 부를 때 피아노를 치며 같이 노래하던 내가.

그땐 왜 작고 부끄럽게 느껴졌던 걸까.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환하고 빛나는 나였는데


금요일 오후.

아이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며 환하게 웃던 그 선생님을 보면서 느꼈던 쑥스러움을 알았다.

이제는 그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시간도 마음도 내줄 수 없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또다시 지금의 나에게 너그럽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며 놀랐다. 그런 후회는 이젠 하고 싶지 않다.


젊었던 나도 지금의 나도 충분히 빛난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어느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젊은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어.

네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해.

지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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