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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29. 2023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석가탄신일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 아침 장수에서 출발하여 경기도 안양까지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출발했을 때는 별생각 없었다. 사촌 오빠가 카니발 9인승을 빌려서 큰외삼촌 내외분, 외당숙, 이모 내외분, 우리 아버지, 나와 우리 딸, 사촌 오빠까지 딱 맞게 9명이 차에 탔다.  하늘은 흐렸고 맨 뒷좌석은 좁았다. 작은 방지턱 하나를 넘을 때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고속도로에 들어가자 그런 느낌은 좀 덜했는데 실제 속도에 비해 뒷좌석 체감 속도는 너무 빨랐다.

이모도, 외삼촌도, 사촌 오빠도 다들 오랜만에 뵙는 거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묻지 않아도 건너 건너 들어서 근황은 알고 있어 반가운 마음 반절, 어색한 마음 반절이었다.


사촌 여동생은 정확히는 우리 엄마 남동생, 그러니까 우리 둘째 외삼촌의 첫째 딸이다. 어린 시절 명절이나 휴가 때 곧잘 내려오던 동생과는 제법 잘 지냈다. 그러나 각자 학교에 다니고 생활권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서로 연락하는 일은 없었고 아빠를 통해서 취업은 했는지 어디에 다니는지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 동생이라 사실 결혼식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무턱대고 가겠다고 하기에 거제에서 가는 여정이 너무 길었다.


아무튼 우리집 대표로 가게 되었고 실제로 결혼식은 너무 재미있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참가의 의미가 있었던 행사였다. 사실 그 차 안에서 사촌 여동생과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외삼촌 때문에 가는 것이었다. 내 결혼식에 오셨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명절과 집안 행사 때마다 계속 만나고 있는 외삼촌 딸의 결혼이기 때문에 간 것이다. 나와 같이 동행했던 친지분들도 대부분 같은 이유였다. 드디어 큰딸을 결혼시키는 외삼촌을 축하하러 그 먼 길을 불만 없이 갈 수 있던 것이다.


결혼식장에 2시간 전에 도착했다.

11시부터 30분 간격으로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내가 결혼했던 9년 전과 지금은 결혼식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틀은 여전했다.

웨딩테이블에는 각기 다른 커플들의 사진들이 시간차를 두고 계속 올라가고 내려갔다. 신부대기실에 있는 신부들은 비슷한 스타일의 웨딩드레스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비슷한 인사를 받으며 사진을 찍었다. 신랑과 신부 어머님이 먼저 화촉을 점화한 후 신랑 등장, 그 후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등장. 서로 맞절을 한 후 주례 없이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맞절을 한 후 성혼선언문을 듣는다. 신랑 신부의 가족이나 친구들의 편지를 읽고, 재미있거나 가창력이 우수한 지인의 축가를 듣고 그다음 양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한 후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오면 하늘에서 꽃가루가 휘날리며 결혼식은 마친다. 그다음 양가 직계가족의 사진 촬영, 일가친척의 사진 촬영, 끝으로 친구, 지인, 회사 동료의 사진 촬영까지 하면 진짜 결혼식은 끝이 난다.

30분의 짧은 영화가 끝난다.

"그렇게 신랑과 신부는 행복하게 결혼했습니다."

해피 엔딩이다.

그땐 몰랐다.

그것이 엔딩이 아니라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진짜 결혼은 결혼식이 아니라는 것을.


결혼 전에는 결혼식의 주인공은 당연히 신랑과 신부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끼면 허례허식이고 진정한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웨딩 촬영을 하고, 결혼식 드레스와 메이크업, 헤어를 결정하고, 청첩장 디자인을 결정하고, 폐백 음식을 정하고 모든 것이 나와 남편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결혼식은 우리들의 축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짝거리는 조명과 아름다운 꽃들, 새하얀 드레스와 공들인 화장까지 주인공인 분명 나였다.

결혼식을 위해 찍었던 수많은 사진과 그날 찍었던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분명 내가 가장 빛나고 있었다.

모두 우리를 보고 있고 우리에게 쏟아진 축복의 말들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았다.

결혼식날 웃고 있는 입꼬리는 아팠고 시간이 지나가는 것만 느껴질 정도로 제대로 정신 차리기 힘들었다.

시간은 접힌 듯 사라졌다.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에너지를 쓴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아깝지만 그때는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기에 남들 하는 만큼은 하자 싶었다.


내가 결혼식에 신경쓸 동안 엄마 아빠는 그동안 적어두었던 축의금 명부를 꺼냈다. 그다음 청첩장을 보낼 친지분들과 친구분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사실 내 친구나 직장 동료보다 친척, 동네분들, 아빠 엄마의 친구분들이 더 많았다. 그분들은 내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기보다 큰딸을 결혼시키는 우리 부모님을 축하하러 오셨다. 그게 그거 아닌가 싶지만 그분들에게 결혼식의 주인공은 부모님이었고 얼굴을 비춰야 다음에 있을 또 다른 결혼식에 초대할 수 있는 것이다. 가는 만큼 오는 품앗이다.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은 평소 볼 수 없었던 일가친척들을 대부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인천에 살고 계신 막내 외삼촌 내외분과 사촌 동생들. 이종사촌 언니와 형부와 두 조카들. 아직 싱글인 이종사촌 동생과 그 남자 친구.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살고 계신 정확히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얼굴은 익숙한 외가 친척분들까지 나랑 딸도 인사하느라 바쁜 시간이었다. 3시간을 달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안도감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 이상이었다.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은 이 세상,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보는 친척들의 무슨 대수야 싶겠지만 그래도 큰 일을 치르고 나면 뼈저리게 느낀다. 인생 혼자 살 수 없다.  

새로운 출발을 한 사촌 여동생.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결혼식의 반짝거리는 모습을 간직하며 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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