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학폭위는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by 목동의 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조는 다음과 같다.


‘이 법은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① 피해자 보호와 ② 가해자 선도 조치가 이 법의 목적으로 맨 앞줄에 적혀 있는데 정말 그런지 모르겠다. 이 제도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학폭위는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가해자 보호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에게
수사라는 이름의 가해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앞서 받은 경찰서 조사와 학교폭력 조사관‧심의위원회의 접근 방식을 비교해 문제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1. 경찰은 피해자 진술을 먼저 듣고 가해자 조사를 한다. 이후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은 증거와 진술의 일관성 등 객관적 자료와 기준을 토대로 진실을 판단한다.

피해자, 가해자 진술을 모아놓고 피해자에게 모순되는 부분을 설명하라고 하지 않는다.

진실을 판단하는 건 전문가인 수사관의 몫이다. 아이의 진술 위주로 듣는다는 걸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특히 여러 명의 조사관과 심의위원들에게 둘러싸여 혼자서 모든 걸 설명해야 하는 상황, 이렇게 심리적 압박을 받는 강압적 환경에서는 어른도 제대로 진술하기 어렵다.

더구나 조사관이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주장을 읊어주며 이를 설명하라는 방식은 조사관이 가해자를 대신해 피해자랑 싸우고 있는 꼴이다.


2. 수사기관에서는 경찰이 1대 1로 아이를 전담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에 앞서 아이가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면 경찰서가 아닌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해바라기 센터에서 아동보호 전문가와 함께 조사받을 수 있다는 안내도 잊지 않았다.

미성년자인 아이를 배려해 보호자가 함께할 수 있었고 아이가 질문을 이해 못하거나 당황해 대답을 못하면 바로 보호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또 어린아이의 미숙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보호자가 아이와 소통하고 도와주는 걸 허락했다. 경찰은 그걸 ‘코치’라고 부르지 않았다.

보호자 없이 어린아이 혼자 2명의 조사관을 상대로 진행된 학폭위 조사는 아이의 진술만으로 보고서가 작성된다.

심지어 이 보고서는 피해 당사자도, 피해아이 보호자도 볼 수 없다.

(심의위원회 전, 학폭위 참석 안내서와 심의위원들의 질문을 통해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조사관이 편견을 갖거나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압박 질문, 유도 질문을 할 경우 어린아이 혼자서 자신을 보호하는 건 불가능하다.

더구나 조사관은 자신보다 힘이 센 2명의 어른들이다.


3. 경찰 조사는 객관적 증거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명확한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 아이 진술의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집착하며 말꼬리 잡는 식의 소모적 질문은 없었다.

증거보다 진술이 우선되는 심의위원회 운영 방식은 아이의 기억력과 진술 능력에 따라 학폭위 결과가 달라질 위험이 있다.

만약 아이가 기억력이 떨어지고 심리적으로 불안해 사실과 다른 대답을 하거나 제대로 설명을 못하면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 힘들어진다.

진술이 주가 되다보니 첨예하기 주장이 엇갈리는 경우 피해자는 억울한 결과를 받지 않기 위해 미리 진술 연습을 해서 가야 한다.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열심히 연습해서 간다.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사전에 변호사와 함께 예상질문을 뽑아 철저히 진술 연습을 시킨다고 들었다.)

진술 위주의 조사 방식은 객관적 사실에서 멀어지게 할 위험도 크거니와 이게 과연 교육적으로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


4. 경찰은 아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힌 후 조사를 시작했고 조사 과정에서도 아이와 눈을 맞추며 질문하고 경청하는 자세로 대답을 들었다.

아이가 심리적 압박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고 아이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심의위원회에서 가장 먼저 당황했던 것은 그들이 신원을 공개하지 않은 채, 질문할 때 고개를 돌려 진술자와 눈도 마주치지 않던 모습이었다.

조사관 조사 때도 얼굴을 보고 말하던 김현진 조사관과 달리 안선화 조사관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심의위원들도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고 그게 나름의 매뉴얼이었나보다 뒤늦게 이해했다.

하지만 처음 그런 모습을 봤을 땐 상대의 그런 태도가 굉장히 무례하게 느껴졌다.

당황스러웠고 불쾌했다.

상대방이 내 얼굴도 안보고 자기 얼굴은 가리면서 일방적으로 질문하는데 어떻게 그들을 믿고 편안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여러 명의 어른들이 아이 한 명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질문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그들은 아이와 눈 한 번 안마주치고 아이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않았다.


심의위원회 명단은 학폭 조치 이후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비공개 원칙으로 운영된다고 들었다.

조사관과 심의위원이 얼굴을 가리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조사와 판결을 받아야 한다면 어느 누가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까?

약자를 돕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약자를 괴롭게 하는 모순된 상황.

학폭위에서는 어른들이 폭력을 한다.

지금처럼 보수적이고 경직된 구조에서는 선한 의도의 조사관이나 심의위원도 피해자를 돕기 힘들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