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학폭위 그 후

(42) 싸움을 위한 싸움

by 목동의 밤

우리는 행정소송을 하지 않기로 했다.

변호사들은 승소 확률이 높다고 했지만 다시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기엔 아이도 나도 너무 지쳐있었다.

수백, 수천만원에 이르는 소송 비용도 부담이었다.

결정적으로 행정소송을 하려면 '형 집행 정지'부터 해야 한다는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강준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가해자가 1호, 3호 처분을 이행하지 않고 졸업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행정소송 중 가해자 졸업과 관련한 법 해석도 다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강준이에게 조치 이행 의무가 있는지 애매해하는 변호사도 있었다.

행정소송의 이유가 희준이의 ‘혐의없음’ 때문인데 소송이 끝날 때쯤이면 강준이는 중학생이 된다.

행정소송에서 희준이의 학교폭력이 인정될 가능성은 높았다.

강준이는 같은 처벌(1호, 3호)을 받거나 그보다 강화된 4호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초등학교 때 잘못으로 받은 처벌을 중학생이 돼서 이행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다.


강준이가 중학생이 되더라도 조치 이행은 이뤄질 거라 판단한 다른 변호사는 행정소송에서 4호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면 해볼만하다고 했다.

4호부터는 학폭 기록이 졸업 후 무조건 삭제되지 않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심의를 거쳐 삭제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렵게 2년 후 삭제 결정이 나온다해도 그게 가해자에게 벌이 될까?

중3이면 생기부 기록이 삭제돼 고등 입시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터였다.


행정소송을 고려한 결정적인 이유는 희준이의 ‘혐의없음’ 때문인데 강준이의 조치 이행 의무도 행정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예된다고 하니 득보다 실이 많은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학폭위까지 오는 동안 사과 한마디 없는 가해자들을 보니 학폭위 조치 결과를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즈음 우리가 학폭위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사건이 있던 날 가해자 부모들이 즉각적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고 먼 길을 왔을까?

학폭위와 형사고소를 진행하면서도 줄곧 그들이 중간에라도 연락하지 않을까 기다렸다.

늦게라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소송을 취하할 마음도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심의위원회에 가서 가해자들의 뻔뻔한 거짓말에 두 번 상처 입는 꼴만 당했다.

가해자들이 너무 괘씸했지만 싸움을 위한 싸움의 소용돌이에서 이제 나와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