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상 학부모가 이긴다?

by 목동의 밤

교육청으로부터 학폭위 결과를 받기 전, 조사관과 심의위원들에 대해 민원을 넣었다.

당시 내게는 학폭위 결과가 중요하지 않았다.

조사와 심의 과정에서 어른들이 아이에게 2차 가해를 했다는 사실에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다.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신고한 건데 엄마인 내가 은호를 불구덩이 속에 밀어넣은 것 같았다.


학교폭력 신고는 “살려달라”는 절규이자 비명이었다.

학폭위 후 은호가 느꼈던 공포, 분노와 억울함은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사관의 유도심문과 심의위원들의 2차 가해에 아이는 또 한 번 가슴을 치며 아파하고 분노해야 했다.

은호가 압박 질문을 받고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던 모습, 말문이 막힐 때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내가 준비해 간) 증거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나를 보던 간절한 눈빛이 생각나 가슴이 미어지고 심장이 죄어들 듯 아팠다.


은호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수시로 고개를 들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괴로움은 자기혐오와 자기 학대로 이어졌다.

어쩌자고 이 어린 것을 이 더러운 판에 끌어들였나?


학폭위에서 그간의 피해 사실을 말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조사관이 이미 ‘쌍방 장난이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아이에게 답을 유도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심의위원회에서도 명확한 증거가 있는 사안에 대해 여러 명의 어른들이 불필요한 질문을 계속하던 모습은 그들 역시 잠정적 결론을 내린 채 원하는 답을 유도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학교폭력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한 학부모의 발언이 눈에 띄었다.

아이의 학폭 사건 이후 피해 학생들을 지원하는 푸른나무재단에서 자원봉사 상담사로 일하는 분의 발언이었다.


학교에서는 권력이나 재력보다는요.
진상 학부모가 오히려 힘이 센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학교에서는 민원 들어오는 게 제일 힘든 거고,
그 엄마가 수시로 학교 오고 계속 클레임 걸고 이러면 그걸 무마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피해자 측 엄마한테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막는 학교도 있어요.
그래서 목소리 크고 좀 비논리적이고 그런 사람들이 더 힘을 갖는 것 같던데요.
상식적인 선에서 대화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더 피해를 보는 거 같아요.
상식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안 된다고 하면 끝까지 가는 거죠.”

(출처: 슬로우 뉴스, “처벌 중심의 학폭위, 가해자의 반성도 피해자의 회복도 없었다.” https://slownews.kr/92058)


내가 너무 점잖게 굴어서 아이가 어른들에게 그런 폭력을 당한 걸까?

조사관 조사 때 정식으로 민원을 넣었다면 심의위원들이 ‘저 엄마 보통 아니다’며 조심하지 않았을까?

심의위원회에서 그들의 무례함에 왜 화 한 번 못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힘 있고 돈 있는 학부모가 아니니 목소리 큰 진상 학부모가 돼서라도 아이를 지켰어야 하지 않았을까?


P.S

학폭 사건에서 가해자는 다수, 피해자는 한 명인 경우가 많다.

‘다구리에 장사 없다’는 우스갯소리는 어른들 싸움도 똑같다.

숫자가 많으니 그 중엔 힘깨나 쓴다는 학부모가 있을 확률이 높다.

정보도 인맥도 돈도... 혼자인 피해자보다 여럿인 가해자 쪽이 훨씬 유리하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가해자 부모들은 목소리도 크고 드세다.

힘이 센 사람들이 상식도 없고 '인간의 도리'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대개의 피해자 부모들은 점잖고 순하다.


학교와 학폭위가 피해자 편을 들 이유가 없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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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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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민원과 뒷감당이 두려운 나약한 인간으로 그 자리에 앉은 게 아니지 않나?

자연인으로 그 자리에 앉아 판결을 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당신들, 공정한 심판관 역할을 하라고 직책을 받은 거잖아.
그럼 최소한의 사명감, 책임감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잖아.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