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잘못한 사람이 없다

by 목동의 밤

교육청으로부터 답변이 왔다.

먼저 심의위원회 당일, 심의실 복도에서 가해자를 만난 사고와 관련한 답변이다.

‘심의위원회는 학생들의 참석 시간 및 대기실을 다르게 해 서로 접촉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심의 당일, 희준이네가 통지된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도착한데다 지정된 출입구가 아닌 곳으로 왔고 은호의 화장실 사용으로 우연히 마주치게 됐기에 양해 부탁한다’는 답변이었다.


조사관 관련 민원에 대한 답변도 논조는 비슷했다.

긴 문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안 조사는 양쪽의 주장을 듣는 과정이고 최종 결정은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서 세밀하게 검토해 종합적으로 한다, 전담 조사관이 학생과 보호자를 더 세심하게 대할 수 있도록 최근 역량 강화 연수를 실시했다’

길고 장황한 문장 어디에도 사과는 없었다.

심의회 직전 희준이네를 만난 사고는 오롯이 희준이네 잘못이었고 조사관 관련 민원도 ‘최종 결정은 심의위원회에서 한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조사관 잘못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심의회 직전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맞닥뜨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면 여러 변수를 고려해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교육청은 예정 시간보다 일찍 지정된 출입구가 아닌 곳으로 온 희준이네를 탓했고 마침 그 시간에 화장실을 이용하려 한 은호를 탓했다.

하다못해 앞으로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어떠어떠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도 없었다.


심의위원들의 부적절한 질문과 발언에 대한 답변도 비슷했다.

‘관련 질문들은 피해 학생의 피해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했으며 민원인이 제기한 내용과 심의위원들의 실제 발언은 다소 상이하다, 하지만 진행 방식에서 민원인이 느낀 점에 대해 심의위원들에게 전달하겠고 심의위원 역량 강화 연수도 진행할 계획이다. 심의위원회 판단은 위원회 고유 권한으로 결과에 불만족한다면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한마디로 ‘심의위원들의 발언은 모두 필요한 질문이었고 결과에 불복한다면 행정소송을 제기하시라’가 되겠다.

어느 대목에서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답변이니 앞으로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발생할 거라 이해하면 되는 걸까?


엉터리 조사보고서에 대한 해명도 없었고 심의위원들의 부적절한 발언도 모두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이었다. 경찰 조사와 비교해 심의위원회의 어떤 점이 잘못됐고 어떤 부분에서 아이가 상처받았는지 제도 개선 방안을 포함해 장장 8장에 달하는 내용의 민원을 썼다.

그렇게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A4 한 장으로 돌아온 답변서는 피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가득했다.


성의도 없었고 진정성도 없었다.
다친 사람은 있는데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잘못한 이가 없으니 개선할 것도 대책이랄 것도 없었다.
교육청의 이런 태도가 시종일관 피해자 탓만 하던 가해자들과 뭐가 다른지 묻고 싶었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