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피해자는 세상 전체와 싸운다

by 목동의 밤

학폭위 조치 결정을 받고 열흘쯤 지나 경찰로부터 사건 통지를 받았다.

희준이, 강준이 모두 가정법원으로 송치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는데 내게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학폭위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많은 일들을 겪으며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던 상황이었다.

그제야 온몸에 들어갔던 힘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즈음 나는 세상 전체와 싸우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가해자들과 나중에는 조사관과 심의위원회를 위시한 교육청 전체와.

심의위원회에 다녀온 후 2개 기관에 민원을 넣었다.


하나는 교육청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영장 운영 지원과 지도 감독을 하는 구청이었다.

수영장을 상대로 안전관리 의무 위반으로 소송을 걸자는 변호사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개인 대 개인의 싸움도 이렇게 피가 마르는데 일개 개인이 기관을 상대로 또 다시 소송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수영장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구청에 수영장 관련 민원을 넣었다.


안전요원을 포함해 모든 강사들이 그 상황을 몰랐다는 것도, 강사 혼자 2개 반을 전담한다는 것도 말이 안됐다.

수영장 내부에는 CCTV도 없었다.


민원을 넣고 새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날 그 시간에 있었던 강사들이 모두 가해자 부모에게 사실관계 확인서를 써줬다는 사실이었다.

확인서를 써준 강사들은 은호의 담임 강사C와 내게 거짓말을 했던 안전요원 B를 포함해 모두 4명이었다.

사고 당일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대체 무슨 사실관계 확인서를 써줬다는 걸까?


이 사실은 수영센터 팀장과의 통화에서 우연히 알게 됐다.

그는 내가 강사들이 사실관계 확인서를 써준 것에 분개해 민원을 넣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강사들이 가해자들을 위한 탄원서를 써준게 아니라며 해명할 요량으로 전화한건데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설명처럼 탄원서가 아니니 오해를 풀면 되는 걸까?

가해자 부모들이 강사들에게 진술서를 요청하고 다닌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그걸 진짜로 써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중립적 입장을 지켜야 한다며 우리의 부탁을 거절했다.


아이들 안전과 관련해 책임이 있는 그들은 중립적일 수도 없었지만
중립적인 척도 하지 않았다.

강사들이 가해자 부모들에게 전달한 사실관계 확인서의 내용을 내가 볼 방법은 없다.

확실한 것은 그 서류들이 가해자 부모들의 부탁으로 작성됐다는 사실이다.


내가 4월 사건에 대해 그토록 간절하게 증인 요청을 했을 때 그들은 거절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며 거짓말까지 했는데.

이 상황에 이르니 문제는 나일지도 모른다는 망상까지 들었다.

세상 전체가 가해자와 한편이 돼 나와 은호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사실은 아무 문제 아니라고 세뇌시키는 것만 같았다.


모두들 하나같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이기적이었다.


이래서 학폭위는 피해자가 이길 수 없는 사건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비단 수영장뿐일까?

학교라고 다를까?

교육 현장에서 폭력이 발생했는데 그게 사실이 되면 아이들 보호의 의무가 있는 교사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거다.


조사관들과 심의위원들도 어떻게든 사안을 축소하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아이들 장난으로 넘기며 일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아한다는 느낌.

(일을 크게 만든 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들인데…)

이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조사, 사실 확인이란 이름으로 피해자에게 무수한 폭력이 자행됐다.

내가 오해하는 거라면 비전문가들이 수사와 판결을 맡아 벌어진 무능의 결과로 이해하면 될까?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