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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구링 Jan 24. 2023

나홀로 일본

눈물의 신라면

일본으로 가는 길은 동생과 함께 했다. 동생은 여행 겸 자취 한 번 해본 적 없는 언니를 위해 먼 일본까지 동행해 주었다. 덕분에 일본어학원 입학, 쉐어하우스 계약, 생필품 구입, 우체국 택배 받기, 구청에서 주소등록까지 마쳤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생필품 구입에서 돈이 많이 나갔다. 프라이팬, 냄비부터 청소용품, 책상, 침대이불까지 필요한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인테리어에 큰 욕심이 없는 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저렴한 다이소에서 구입했는데도 예산보다 지출이 많이 나갔다.


오전에는 일본어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동생과 도쿄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여행과 생활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이때 격하게 느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생은 비싼 식사를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원했다. 한 끼에 천 엔(약 1만원)이 넘는 밥을 먹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교통비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생활하기 위해 계획했던 식비는 500엔(약 5천원) 안쪽이었다..)


동생과의 여행은 경제적으로 부담되었지만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됐다. 마음 속 반반의 갈등도 끝이 보였다. 마지막날 동생은 공항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가만있어봐.... 공항버스 1000엔, 왕복 2000엔....


매일 맛있는 것과 필요한 것들을 아낌없이 사주던 통큰 언니에서 아껴 써야 하는 쫌생이 언니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동생과의 시간을 돈으로 계산하게 되었고 지갑이 가벼워질수록 마음이 쓰라렸다.


공항에서의 점심이 내가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비싼 밥이겠구나. 동생은 면세점 구경을 간다며 비행기 시간보다 일찍 들어갔다.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를 위해 일본까지 와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도와주었던 동생을 돈 때문에 더 잘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돈이 뭐라고...


눈물을 꾹꾹 참으려고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버스 안에서 터져버렸다. 동생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 더 많은 곳을 보여주지 못한 것, 더 맛있는 거 사주지 못한 것, 공항버스비가 아까워서 동생 혼자 가기를 잠깐이나마 바랐던 것. 이제 내 옆자리에 동생이 없다는 것. 이 넓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나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 두렵고 무섭고 외로웠다.


집에 오니 참 민망하게 배가 고팠다. 돈을 아끼기 위해 라면을 끓였다. 먹다말고 또 눈물이 났다.

‘나 이제 어떻게 살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국물 몇 번 떠먹고 숟가락을 내려놨다. 아까운 나의 한 끼 식사를 눈물로 버려야 했다.


그날 저녁 지갑을 탈탈 털어 가계부를 작성했다. 지금까지 총얼마를 썼는지, 앞으로 얼마나 아껴 써야 하는지 재정비가 필요했다. 예산을 초과해 버린 지출 때문에 앞이 캄캄했다. 3개월 정도는 일하지 않고 쓸 생활비와 월세를 준비해 왔지만 너무 세상물정을 몰랐던 과거의 나였다. 방법은 두 가지다.

1. 쫄쫄 굶고 3개월 월세내기

2. 아르바이트 자리 알아보기


의욕도 의지도 없이 슬픔만 가득한 방에 앉아 지갑을 정리하고 있는데 또다시 눈물&콧물 버튼이 눌려졌다. 동생이 남겨놓은 쪽지와 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난 일본에 혼자 남겨졌다. 나의 오랜 꿈이자 하고 싶었던 것을 위한 도전이었다.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만들었던 보고서를 다시 보았다. 내가 왜 일본에 왔는지,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했다. 당장 눈물을 멈추는 법을 몰라서 눈은 울고 있었지만 머릿속 한편으로는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만 생각했다.


‘당장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구해야해.’


이제는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맛있는 밥을 해주는 엄마도, 용돈을 주던 아빠도, 나에게 잔소리하는 언니같은 동생도, 마음 여린 귀여운 막내도, 웃고 떠들 수 있는 친구도 없이 홀로 일본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방법을 찾고 나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동생과 함께 생활용품 쇼핑.

(동생이 필요한 것을 메모해 왔다. 파워 J)

구청 가서 주소 등록

나의 쉐어하우스. 잘 부탁해!

눈물 펑펑 흘렸던 동생의 쪽지.

그리고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만 엔....


이제부터 진짜 나홀로 일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날의 일기 : 낯선 도시와 따뜻한 핫도그


긴자에서 쇼핑하다가 도토루에서 쉬고 있는데 옆 테이블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여행 온건지 물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부 이해하지 못했지만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모습이 참 좋았다. (지금까지 여행했던 나라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잠시 자리를 비우시더니 핫도그를 사다주셨다. 힘들었던 하루와 일본에서의 슬픈 감정들이 녹아내리는 기분..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감사합니다. 일본에서의 좋은 기억을 적을 수 있게 해주셔서.


(2019.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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