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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구링 Jan 08. 2023

온 우주가 도왔던 나의 유학

남의 나라 어르신 돌보러 일본으로 갑니다.

온 우주가 나의 유학을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일곱 가지로 적어봤다.

첫 번째, 에쿠키 가오리를 시작으로 일본 소설, 일본 드라마, 일본 영화 등 일본 문화를 좋아했다.

두 번째, 혼자 처음 간 해외여행이 도쿄였고 4박 5일 동안 편안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음식도 사람도 분위기도 일본이 나랑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세 번째, 퇴사하기 몇 개월 전부터 취미로 배워보고자 일본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네 번째, 친한 친구가 일본 유학 중이었고, 근무했던 센터 사회복무요원도 일본 유학생이었다. 유학 준비, 일본 생활 중에도 많은 도움과 위로를 받았다.

다섯 번째, 유학원을 찾아갔는데 일본어 학원 바로 옆건물이었다. 유학 서류준비가 수월했다.

여섯 번째, 퇴직금으로 유학자금이 마련됐다.

마지막으로 그때 나는 솔로였다.

모든 방향이 일본유학에 맞춰진 덕분에 10월 입학을 계획하였으나 7월로 앞당겼다.


가장 당황했던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취해본 적 없는 딸이 갑자기 집을 나가겠단다. 그것도 일본으로.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다시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왜 일본에 가고 싶은지, 가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한 달 생활비, 생활비를 어떻게 벌 것인지, 언제까지 있을 것인지, 다녀와서 한국에서의 계획 등을 알려달라고 했다.

엄마는 먼 곳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냐며 반대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양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구체적인 보고서로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한글 파일을 켜놓고 어떤 식으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사회복지사로 일했을 때의 사업계획서 양식이 떠올랐다. 나의 유학을 하나의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 사업이 필요한지, 목적, 목표, 예산, 일정, 기대효과 등 양식에 맞춰 작성해보니 나의 일본 유학의 그림이 그려졌다.


온 가족이 모여 앉은 곳에서 나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진심반 장난반으로 준비한 보고서가 나의 유학생활에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다. 확고한 나의 주장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가족들에게 유학을 허락받았다. 이제 진짜 간다!


떠나기 몇 주 전부터는 한국과의 이별을 준비했다.

친구들과 만나 여행을 갔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막내 동생이 진짜 가는 거 내며 입을 삐죽거리며 울었다. 그 모습을 보니 울컥했다. 막둥이의 눈물은 나의 눈물버튼이지만 눈물을 가리기 위해 장난스럽게 동생의 우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었다. 사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마음은 걱정 80 설렘 20이었다.


가장 큰 이별은 수영장과의 이별이었다. 한참 수영에 빠져있던 때라 새벽수영, 저녁수영 하루에 2번 수영을 갔다. (하루 루틴 : 수영-일-수영) 마지막 아침 수영수업이 끝나고 강사선생님한테 그동안 감사했다는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선생님 저 오늘 마지막이에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뭐야?? 왜 어디 가는데?”

“일본에서 어르신들 돌보는 일하고 싶어서 유학가요. “

그러자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남의 나라 할머니들 돌보러 일본까지가? 여기서 우리나라 할머니들 돌봐줘!”


모든 것이 나의 유학을 착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눈떠보니 어쩌다 남의 나라 할머니들 돌보러 일본에 가게 되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실행력이 좋은 사람인지 몰랐다. 출국하기 전날에는 잠이 안 왔다. 그땐 걱정 150 설레 0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미쳤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가족들이랑 편하게 살고 싶다.. 가기 싫다...

하지만 언제든지 돌아올 우리 집이 있었기에 마음의 걱정을 꾹꾹 눌러 담고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으로 떠나는 날.

일주일 정도는 동생과 함께 지내면서 살림을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자취경험이 전혀 없었고 동생은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생활해본 경험이 있었다.)

나의 눈물버튼 (통통시절) 막둥이

애써 눈물을 삼키고 장난치며 찍었던 사진





떠나기 전 아빠와 드라이브를 했다.

평소 장난기 많던 아빠가 진지하게 물었다.

아빠 : 일본 안 가면 안 돼?

나 : 웅! 나 꼭 가고 싶어~ 왜? 아빤 내가 안 갔으면 좋겠어?

아빠 : 아니. 아빤 가서 경험하고 오면 좋지. 근데 엄마가 많이 걱정해.

나 : 우리 엄마를 우째..

아빠 : 엄마 걱정 안 하게 연락 잘하고 조심히 다녀와.

그리고 힘들면 참지 말고 그냥 와.


아빠의 마지막 말이 참 든든했다.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갈 우리 집이 있다는 사실에 용기가 났다. 엄마, 아빠 그동안 험한 세상 안 보여주고 따뜻한 집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몸 건강히 잘 다녀올게요!


2019년 7월부터 2020년 8월까지

1년 동안의 일본유학생활 기록


<할머니들 돌보러 일본까지 갔습니다.>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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