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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구링 Jan 29. 2023

무기력을 극복했던 방법

과거의 나에게 위로받기

“외국 나가면 한국사람들이 더 나쁨.“

“한인식당에서 일하면 일본어 안 늘어요. “

“일본 가서 한국인들이랑 어울리지 마세요. “


일본 오기 전 일본 유학생 카페에 가입해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얻었다. 그중 하나가 외국에서 만난 한국사람이 더 나쁘다는 말과 한국인을 사귀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본어가 부족해서 자신감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 한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었다.


카페에 올라오는 구인공고를 찾아보았다. 7월이라 날씨가 더웠고 평소에도 냉면을 좋아하기 때문에 냉면집 공고를 보자마자 ‘여기다!’ 싶었다.

일본은 여전히 이력서를 손으로 작성한다. 편의점에서 이력서를 구입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한글로 쓴 뒤 일본어로 번역해서 이력서를 작성했다. 이력서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마음가짐은 어떤 일을 하더라고 시간만 채우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장이라면 어떤 직원을 채용하고 싶은지 생각하며 맡은 업무를 열심히 하겠다는 것이다.

아빠가 자영업을 하는데 가끔 직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떻게 일해야 사장(아빠) 이 힘들어하지 않고 신뢰할만한 직원이 될까? ’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빠가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도 일이 아닌 사람과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냉면가게로부터 연락이 와서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러갔다. 긴장했는데 사장님이 한국인이어서 편하게 한국말로 보았다. 역시 내 이력서를 보시곤 이렇게 정성스럽게 쓴 사람은 처음이라며 웃으셨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무기력을 극복했던 방법은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글쓰기였다. 일본 오기 전 가족들과 친구들이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었다. 그것을 떠올리며 주변 사람들이 응원해 주었던 문자 내용을 캡처해서 한 곳에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메시지를 봤더니 울컥하면서 신기하게도 힘이 났다. 이래서 글의 힘이 중요한가 보다.


그다음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힘든 이유를 적었더니 세 가지가 나왔다.

첫 번째는 언어. 일본어를 나름 공부했다고 자신 있게 왔으나 현실은 내가 들었던 정직한 발음이 아니었다.  일본인과 대화하는 것이 답답하고 두려웠다. 두 번째는 외로움. 집에 돌아가면 아무도 없다. 심심한데 만날 친구가 한 명도 없다. 매일 집밖으로 나돌던 내가 며칠째 집안에만 틀어 박혀있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문제였다. 한국에서는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걱정 없이 지냈는데 일본에 그렇게 생활하다간 월세를 낼 수 없게된다. 수입이 없기 때문에 써본적 없는 가계부를 쓰며 소비를 아껴야 했다. 문제를 직면하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눈에 보였다.

1. 언어 : 일본어 공부하기/ 선생님과 대화 많이 하기

2. 외로움 : 학교 생활과 아르바이트로 친구 사귀기/ 산책이라도 하면서 집에서 벗어나기

3. 경제적인 부분 : 아르바이트 구하기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문제와 해결 방법을 적으니 다시 용기가 생겨 내일부터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자기 전에 울면서 잠들었는데 이날 처음으로 울지 않고 잠들었던 것 같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일을 상상했다. 내가 일본 오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노인복지 일하기

-수영장 가기

-예쁜 카페 가기

-바다 보러 가기

-디즈니랜드 가기

-도쿄타워 보러 가기

-짱구마을 가기

-온천 여행 가기

-친구들과 도쿄 여행

•••


‘하고 싶은일, 지금 당장 할 수 있다면 해야지!!’

버킷리스트를 적고 바로 수영 가방을 쌌다. 이 집을 계약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도보로 갈 수 있는 수영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 집구 할 때 나의 조건*

1. 근처 수영장이 있을 것(걸어서 20분까지 ok)

2. 역에서 도보 20분 미만일 것

3. 집 근처 편의점이 있을 것 (5분 미만)


걸어서 15분 거리에 수영장이 있었다. 아마 수영가방 들고 수영장 갔던 그날이 혼자된 일본에서 처음으로 설레고 기분 좋았던 날이었다. 일일 입장권을 끊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샤워실 벽마다 [바디워시 금지]라는 안내장이 붙어있었다.

‘엥??’

일본 수영장이 한국 수영장과 다른점은 샴푸, 바디워시 금지라는 것이다. (한국 수영장에서 샤워를 안하고 들어가면 혼나는데..ㅎ)

찝찝한 느낌으로 물샤워만 하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수영을 하고 있는데 직원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내가 뭘 잘못했나? 겁을 잔뜩 먹은 나에게 직원이 친절하게 말했다.

“목걸이 착용 금지입니다. 괜찮으시면 저희가 보관해두겠습니다.”

일본 수영장은 악세사리 착용도 금지다. 직원에게 목걸이를 맡기고 남은 시간동안 수영을 마무리했다.

집밖으로 나와 수영장만 갔을뿐인데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이를 직접 경험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선생님과 대화거리가 하나 생겼네! 야호~


“센세! 제가 어제 수영장을 갔는데 바디워시 금지라고 쓰여있어서 놀랐어요.”

“맞아. 수영장에서 바디워시나 샴푸를 사용하지 않아. 한국은 달라? “

“네! 한국은 수영장 들어가기 전에 꼭 씻고 들어가야 해요.”

“오~ 그렇구나! 그런 점이 다르구나! “

*일본인 선생님과 일본어로 했던 대화내용


물론 선생님이 쉬운 단어로 천천히 말씀해 주신 것도 있었지만 대화의 자신감과 재미가 붙었다. 일본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다양한 주제로 일본인과 대화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난 일본 생활에 적응하고 숨겨왔던 나의 성격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출처 : 홈페이지 사진

집 근처 수영장. 큰 창으로 비추는 햇살이 정말 예쁘고 따사롭다. 멍하니 잠수하고 있을 때 물 속 하얀 반짝임과 나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게 참 좋았다.


나의 냉장고에 항상 들어있는

생수, 계란, 오렌지주스, 우유 +냉동밥


내 침대에 누우면 큰 창문으로 파란 하늘이 흘러간다.

일본은 하늘이 참 예뻤다. 하루에 한 번은 꼭 하늘을 올려다 봤다.






10년 후 나에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뭐 하고 있는지, 그래서 뭘 해야 하는지 답을 찾고 싶어서. 그 답은 없다. 지금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10년 후에도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2014년 일기-

5년 전에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5년 후에는 말이야. 그때 네가 꿈꿨던 일본에 와있어.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좋은 센터장님도 만나고 귀여운 아이들, 선생님, 강사님, 봉사자, 사회복무요원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해외여행도 가고 수영대회도 나가고, 사회복지 1급도 따고 4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더 성장하기 위해 용기 내서 일본으로 왔다! 지금까지 바쁘고 또 즐겁게 살면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사랑받으면서 행복하게 잘 지냈어. 앞으로도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진짜 진짜 잊고 있었다.

나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해하고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도전도 과감하게 하는 용기 있는 멋진 사람이었지. 혼자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좋은 것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었어. 힘든 일 있을 땐 힘들어하다가도 금방 해결책을 찾아서 다시 일어서는 게 나였지.

하늘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있고, 힘든 일 있으면 분명 다시 좋은 일 온다! 내 곁엔 좋은 사람들만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2019년 8월 3일 비공개 블로그 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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