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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구링 Feb 10. 2023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다.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아르바이트는 아이스크림집, 샌드위치 가게가 전부였다. 식당일은 일본에서 처음 해보는 것이다. 저녁 시간은 전쟁터였다. 손님이 나가면 바로바로 테이블이 채워졌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빠르게 테이블 정리하기, 메뉴 주문받기. 나름대로 정리한다고 했는데 매니저가 나에게 한마디 했다.


"바쁘니까 치울 때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지 말고 한 번에 많이 쌓아서 가세요."


그때부터 나의 냉면그릇 쌓기가 시작된다. 물냉면을 주문한 손님 테이블을 치울 땐 고난이도였다. 육수가 가득한 냉면 그릇은 맨 위에 쌓아두고 흘리지 않게 조심히, 하지만 빠르게 정리해야 했다. 게다가 주방에는 모두 네팔 사람들뿐이었다. 정신없이 바쁜 상황 속에서 일본어도 못하고, 자신감도 없는 내가 네팔 사람들이 하는 일본어를 제대로 알아듣기란 냉면그릇 쌓기보다 더 어렵고 긴장됐다.


"내가 한국말 배워서 말하는 게 더 빠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말이지만 그 당시엔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나의 눈물 버튼이 눌려졌다.

화장실 청소를 하러 가는 척, 변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매니저는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감시 아닌 감시를 시작했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숨을 쉬면서 내 일을 대신했다. 그리고 내 옆으로 조용히 와서는 나에게 말했다.


"사고뭉치네."


그날은 퇴근하고 지하철에 카드 찍는 순간부터 집까지 울면서 갔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인복이 좋아서 어딜 가도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사랑받을 줄 알았다. 겪어본 적이 없는 일이라 어떻게 극복하고 맞서야 하는지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슬퍼하는 것뿐이다. 욕이나 신체적인 공격만이 폭력이 아니라 차가운 눈빛과 표정, 무시하는 행동도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인복 좋은 내 인생도 끝이야..'

'그냥 그만둘까.. 매니저 보기 싫은데..'


순간 나의 가벼운 지갑 사정과 사장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가서 내가 해야 할 일만 하고 오면 되는 거야. 사람에 집중하지 말고 일에 집중하자.'


마음먹고 방을 나왔는데, 쉐어하우스 복도 게시판에 한국말이 적혀있었다.


'어학공부 힘내라! 너라면 가능해!'


이모코 상이다! 나와 동갑인 일본인, 며칠 전에 주방에서 이야기 나누다가 라인을 주고받았다.

라인으로 이모코 상이 글을 쓴 건지 물어보니 구글 번역해서 썼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해주었다.


"모처럼 일본에 왔으니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갔으면 좋겠어."


이렇게 좋은 사람을 옆에 두고 보지 못했다. 세상에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나쁜 사람도 아니다. 나와 잘 맞지 않은 사람일 뿐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말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슬프게 만들고 기쁘게 만든다. 이왕이면 나는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말만 하고 싶다. 그렇게 하자!



며칠 뒤 일본어학원에서 조별로 포스터를 만드는 활동이 있어서 새로운 친구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나와 같은 조였던 사람은 중국인 3명과 한국인 1명, 베트남인 1명이었다. 활동을 다 끝내고 각자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 이야기 나눴다.


"나는 요양원에서 일해."


베트남에서 온 후크상이 이야기했다.


"요양원? 할머니 할아버지?"

"응. 거기서 급식일을 하고 있어. 밥 나눠주고 식당 정리하는 일."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어차피 식당에서 일하는 거라면 요양원 급식실에서 일하는 것도 방법이잖아?!


"나도 거기서 일하고 싶은데, 혹시 일자리 있어?"

"거기에 베트남 사람이 많아. 아는 사람한테 한 번 물어볼게."


헤헤. 인복 좋은 내 인생이 끝났다는 말 취소할게요. 저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후크상이(베트남) 말한 요양원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서류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어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친구는 일본어 잘하는 베트남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비록 그 요양원에서 일은 못하게 되었지만, 앞으로 내가 나아갈 방향을 찾게 되었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잖아! 지금 당장 어르신 케어를 할 수 없다면 급식일을 돕거나 청소 일을 하더라도 일본 요양원에 들어가 보자!’


결심한 뒤로 냉면가게를 그만두었다. 당장 돈을 못 벌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했다. 사장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지만 괜찮다고, 일이 많이 힘들었냐며 오히려 격려해 주셨다. 사장님에게 받은 따뜻한 문자 덕분에 냉면가게에서의 기억은 좋은 추억이 되었다.


'요즘 보기 드물게 맑고 인성이 갖추어진 친구여서 어디에서 어떠한 곳에서도 잘 해내고 주위의 사랑을 받을 거라 생각해. 항상 긍정적으로 지금 모습 그대로 잘 지내길 바라고.^^'


사장님 문자에 힘을 얻고 나는 학교와 집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요양원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요양원 알바 체험을 신청했다. 여전히 부족한 일본어였지만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간절히 하고 싶었다.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럼 상처받을 일도 없을 테고, 힘들 일도 없을 테고, 눈물을 흘릴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있기에 좋은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세상에 착한 사람만 있다면? 그 사람이 전하는 따뜻한 말과 행동을 당연시하면서 고마운 줄 모르게 될 테니까 말이다.


나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만남이 있을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상처받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조금 덜 울었으면 좋겠다. 이번 경험을 통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분명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리고 나는 역시 인복이 좋은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을까. 혹시 그런 사람을 만나더라도 사장님, 카페점장님, 이모코상, 요양원 직원들, 한국인친구들 등 일본에서 만났던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자.


일본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고마웠던 마음을 잊지 말고 다른 누군가에게 꼭 좋은 사람이 되어 베풀자.




나에게 힘이 되었던 이모코상의 응원.


일본어 공부를 술로 배웠습니다. 아는 게 많으니 손님이 와도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식당 가면 자신 있게 먹고 싶은 술을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먹었던 냉면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인생냉면.

마카나이로 냉면이 나왔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비빔냉면을 끊을 수 없어서 다이어트를 포기했다.


퇴근 후 소소한(?) 나의 행복

스트롱(초록캔) 마시고 눈뜨면 다음 날 아침이다. 메론소다에 홀려서 마셔봤는데... 그 후로 스트롱 근처에도 안 갔다.


나만의 일본편의점 레시피.(편뎅국수)

편의점 오뎅 + 국수 삶아서 넣어 먹기



오랜만에 수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 도로는 수영장 갈 때만 지나는 곳이다.


일본 사람들은 카톡대신 라인을 많이 쓴다는 말에

라인을 다운받은 귀여운 울 엄마.


엄마 : 모해?

나: 수영 끝나고 집 가는 길~

엄마 : 나도 너랑 같이 수영 가고 싶다. 그냥 한국 와~ 예전처럼 우리 다 같이 수영 다니자.


이 사진을 보면 그때 엄마랑 나눴던 라인이 생각난다.  엄마의 라인을 받고 도로에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일본 오기 전에 아빠랑 엄마랑 같이 아침수영을 다녔다. 매일 주차장 차 안에서 나와 엄마를 기다리던 아빠 모습과 접영 연습한다며 엉덩이만 둥둥 떠다녔던 엄마의 치명적인 모습도 생생하다.


하지만 내가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 해도, 예전에 같이 수영을 다니면서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같이 수영을 다니게 된다면 그땐 그 나름대로 새로운 추억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이 거리에 서서 사진을 찍는 순간도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들지만 결국엔 강하게 만든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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