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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구링 May 31. 2023

우리에겐 아직 여섯 샷이 있다.

아침에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오늘은 내 감이 그래. 손님 한 번에 몰아서 올 것 같아. 점심시간 되면 그냥 샷 계속 뽑아. 그래야 할 것 같아."


어제는 폭풍전야에 속았다. 평소라면 손님이 많아야 하는데 어쩐지 조금 조용했다.

"오늘은 평소에 비해 조금 한가하네요~"

말이 끝나자마자 디저트, 샐러드 주문과 단체 음료 주문 폭탄! 1시 퇴근이지만 밀려드는 손님에 정시에 퇴근도 못하고 음료를 만들어야 했다. 주문이 밀렸는데 얼음통은 비워져 있고, 물통에 물도 다 떨어져 정수기로 커피를 만드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제의 배신 경험과 오늘 사장님의 예언으로 우리는 11시부터 손님맞이를 준비했다. 마치 전쟁터에 가기 전 총알을 장전하듯이.


1. 얼음 가득 채우기 

2. 커피 원두 채우기

3. 아이스 컵 채우기

4. 컵 뚜껑 채우기

5. 물병에 물 가득 채우기

6. 컵 홀더 채우기


일단 채울 수 있는 것은 가득 채우고 손님을 기다렸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한 잔이든 두 잔이든 음료가 나가면 다시 얼음과 물, 컵, 뚜껑, 홀더를 가득 채워 넣었다. 그래도 불안하다. 어제의 악몽이 떠올라 우리는 사장님의 말을 떠올리며 샷을 미리 내려 두기로 결정했다.

6개의 샷. 그리고 가득 찬 얼음통, 물, 음료 컵, 뚜껑, 홀더를 보며 총알이 가득 장전된 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했다. 그래! 올 테면 와라!


사장님의 예언은 적중했다. 6개의 샷이 내려지기 무섭게 바로 아메리카노 5잔, 카페라떼 4잔, 페퍼민트 2잔 총 11개의 음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샷 내리기 전쟁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준비해 둔 얼음이 점점 비워져 가고, 컵도, 홀더도 줄어갈 때쯤 1차 휴전이 찾아왔다. 가득 쌓인 설거지를 뒤로한 채 얼음과 컵부터 채워두었다. 다시 2차전 시작! 


오늘은 손님 없을 때 총알을 미리 장전해 둔 덕인지 어제보다는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잘 싸웠다. 비록 설거지는 다음 타임 사람들에게 넘어갔지만.. (미안합니다.) 조금씩 점심시간의 카페 알바에 적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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