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나는 부모님이 없어요. 낳기만 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 버렸어요
안나: 나는 매년 생일파티를 뉴욕에서 해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하고 싶은 전공을 생각하고 있어요
리사: 우리 집은 가난해요
이 세명의 아이가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있다면 누구에게 포커스 또는 아웃 포커스를 맞춰야 할까?
다행히 우리 아이가 다닌 독일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어느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도 부모님이 안 계신 클레어와 가난한 가정의 아이인 리사가 어렵지 않게 학교 생활을 하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준비물은 모두가 살 수 있게 늘 가장 싼 걸로
독일의 교과서는 무척 부실하다.
보통 10년 전의 선배들이 사용하던 교과서를 도서관에서 빌려서 사용하고 나중에 그대로 반납한다.
하지만 수업에 필요한 부교재는 시중 서점에서 구입을 했었는데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책 중 가장 저렴한 걸로 학교에서 지정해 주었다.
가격이 싸다 보니 종이 질이 좋지 않고 크기도 너무나 작아서 공부하기에 불편하지만 모두들 당연하게 생각하고 실행했다.
선진국인 독일에서 웬만하면 과외도 아니고 수업 교재는 사줄 수 있을 걸로 생각되던 나는 가끔 짜증을 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학생 중 단 한 명이라도 책을 사는데 부담을 가지면 안 된다고 학교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수학여행도 역시 최저가로
아이가 고2 때 영국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독일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영국을 버스를 타고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거쳐 프랑스에서 배를 탄 후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12시간 이상 걸려서 도착했다.
한 시간 비행기 타는 비용이 비싼 것도 아닌데 왜?라고 반문하니 돈이 없어서 못 가는 친구가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3박 4일 수학여행비를 얼마나 아껴서 지출을 했는지 우리 돈으로 5만 원이 들지 않았다.
그것도 몇천 원이 남았다고 선생님께서 일일이 계산해서 아이들에게 나눠 주셨다.
사실 나는 독일보다 물가가 비싼 곳으로 여행을 가니까 용돈을 여유 있게 챙겨서 보냈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최소한의 돈만 가지고 왔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1파운드 샵(천 원 샵)을 보고 모두 신나서 뛰어 들어가서 영국 풍경이 그려진 냅킨을 구입하고 향기가 좋은 비누 하나를 구입한 친구들의 모습을 아이가 전해줬다.
점심 식사는 마트에서 구입한 샌드위치를 거리의 벤치에 앉아서 먹으며 모두가 즐겁게 여행을 하였다.
대부분의 독일 대학은 단체로 움직이는 행사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지막 수학여행이었다.
명문학교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곳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 아이가 다닌 학교는 독일에서도 대도시인 프랑크푸르트에 처음으로 지어진 인문계학교다.
몇 년 전에 개교 500년을 맞이하였다.
전통이 있는 만큼 각계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고 심지어 노벨상을 탄 졸업생도 있고 교과서에 나오는 수학이나 과학과목에서의 공식을 처음 발견한 사람도 있었지만 학교 어디에도 그들을 자랑하는 문구가 없었다.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내면서 우리 가족이 경험한 독일의 공교육은 평등을 가르치는데 주력을 했다.
도시에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 모여있으니 개인의 노력이 가정형편으로 꺾어지는 일이 없도록 학교의 모든 시스템이 그러하였다.
학원 같은 사교육이 없어서 선생님의 티칭에 집중을 해야 하고 수업에 못 따라오는 아이들은 시에서 운영하는 교실에서 보충수업을 받을 뿐 아이의 성적에 부모의 부가 뒷받침을 할 수 없는 나라였다.
다만 여유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은 지속적인 악기하나를 배우거나 스포츠 활동을 할 기회가 있을 뿐이었다.
이 또한 한화로 한 달에 15만 원이 넘지 않은 수준이었다.
요즘 우리나라 연예인들의 자녀가 얼마를 들여 교육을 받느니 하는 기사가 종종 올라오던데 독일 사람들이 이런 기사를 접한다면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
아이가 얼마나 부족해서 저렇게까지 할까?
라고 할 것을 나는 확신한다.
부잣집 아이 안나의 생활
앞에 말한 매년 뉴욕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안나는 학교에서는 그저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언제나 학용품이나 옷차림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집이 멀어서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버스와 지하철에 트램까지 갈아타며 통학을 하였다.
독일은 초등 5학년부터 고등 졸업할 때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시스템이라 (김나지움)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면서 친구들의 가정형편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그런데 안나는 친구들이랑 가족 이야기를 하게 되면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고 딸이 말했었다.
안나는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얻은 안락함을 자랑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평범한 학생이기도 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독일 수능인 아비투어에서 만점을 받았다.
평소 안나가 즐기는 스포츠는 마라톤이었다.
시간을 내서 집 근처 공원에서 뛰면서 체력을 기르고 일 년에 한 번씩 마라톤 대회에 참가를 하였다.
나는 몇 명 안 되는 아는 독일인의 가정 중에 안나네를 가장 멘토로 삼고 싶었다.
두 개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바쁘게 일하면서도 아이를 바르고 똑똑하게 키우는 안나 어머니를 존경한다.
졸업식과 졸업 앨범 준비도 아이들 스스로
고3이 되자 수능인 아비투어 시험기간이 몇 달씩이나 되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우리나라와 똑같이 다들 신경이 예민하고 진로 결정을 해야 해서 여유가 없는 와중에 졸업준비를 아이들 스스로 하였다.
졸업 앨범과 기념 후드 티부터 졸업 파티를 여는 비용을 직접 벌어야 했다.
선배들한테 물어보니 필요한 에산은 15000유로(2천만 원) 정도였다.(졸업파티는 외부 홀을 대여하기 때문에 예산이 높다)
그 돈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복도에서 직접 만든 와플을 팔아서 벌겠다니 독일학교는 마지막까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인당 몇만 원씩만 내면 간단할 일을 왜 그러나 싶은데 이 또한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도 똑같이 졸업 앨범과 후드 티를 갖고 졸업파티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함이었다.
모두들 공부에 정신이 없다 보니 밀가루 반죽거리를 준비하기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사소한 다툼이 있기도 했고 짧은 시간에 와플을 구워서 파는 것이 모두가 기쁘게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함께라는 의미를 배우며 오히려 필요한 에산보다 조금 더 벌었다.
남은 예산은 모두의 동의하에 어린이 단체에 기부를 하였다.
고아인 클레어의 학교 생활과 그 후
앞서 말한 부모님이 낳기만 하고 외국으로 떠나버린 클레어는 보호소에서 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거리낌 없이 친구들에게 자신의 환경을 말하면서 지냈으며 이아이도 수능 만점을 받았다.
대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아이가 최근 뉴스에 나왔다고 딸아이가 전해줬다.
본인 같은 사람한텐 18살 생일이 그냥 생일이 아니라고, 보호소를 떠나서 혼자 살아가야 하는 날이라고 했다.
정부의 지원이 있긴 하지만 21살이 되면 지원 금액이 줄어서 21살 생일날이 더욱 가슴을 졸이는 날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법적으로 성인이긴 하지만 살면서 생기는 일에 대해서 물어볼 부모가 없는 건 힘든 일이라고 좀 더 정부의 관심을 요구하였다.
대학진학률이 낮은 독일에서 21살이 되면 대다수의 아이들이 직업을 가지는 게 보통이니 지원금이 더욱 줄어드는 나이였지만 아직 학생 신분인 클레어는 자신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당당하게 말하였다.
같은 반 친구인 부잣집 아이 안나와 고아인 클레어는 똑같이 수능 만점을 받았다.
또 우리 아이에게는 둘 다 소중한 친구다.
누구나 자신의 노력으로 살아야 하며 가정환경이 걸림돌이 되지 않게 도와주는 평등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세상이 그렇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적어도 평등하지 않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아는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