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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인간의 탄생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생명의 발생은 우연인가 필연일까. 사실 우연과 필연의 구분은 애매하다. 그래서 결국 애매한 설명으로 끝날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튼 설명을 해본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리버사이드의 이상희 교수는 인류가 서서 걷는 직립보행을 하게 된 이유는 모른다고 말했다. 진화는 그저 우연의 결과라는 입장이다. 생명의 진화과정을 더듬어 가다보면 생명체는 미리 규정된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분명하게 든다. 다시 말해 생명과 진화의 방향은 사전에 결정된 시나리오대로 결정된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소프트웨어의 명령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중력의 작용, 강력과 약력이 주어지면 통계적으로 예측이 ‘가능한’ 별의 형성과는 달리 생물학적 변화는 더욱 임의적이고(random), 열려있어(open), 생명은 별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하지만 우리 우주에서 생명과 우리 인간의 출현이 필연적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 필연성은 절대자의 의지가 아니라 우주의 내적 원리를 말한다. 지구는 45억 년 전에 생성되었고 최초의 생명체는 약 38~9억 년 전에 나타났다. “생명이 그렇게 일찍 출현했다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지구상에서 적당한 조건만 주어지면 박테리아 수준의 생명이 진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라고 스티븐 제이 굴드는 1996년 뉴욕타임스에서 주장했다. 그의 다른 표현을 빌리면, “생명이 그렇게 일찍 출현했다는 것은 생명이 화학적으로 필연적”이라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지구 초기에는 태양이 지금처럼 밝고 뜨겁지 않아 지구는 춥고 어두웠을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이를 ‘희미한 초기 태양의 역설’(faint young sun paradox)로 부른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생명이 출현할 수 없었음에도 지구상에는 생명이 존재한다는 역설이다. 그런데 2016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연구팀은 40억 년 전쯤, 태양 표면에서 발생한 슈퍼플레어가 지속적으로 방사선을 뿜어내서 우리 지구가 생명이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태양 표면의 폭발인 태양 플레어보다 수백만~수십억 배 강한 초대형 슈퍼플레어는, 그 에너지가 원자폭탄 1000조 개에 이른다. 여러 번에 걸쳐 발생한 슈퍼플레어는 지구 대기 중의 질소 분자를 분해하여 질소산화물(N2O)과 사이안화수소(HCN)를 생성시켰다. 전자는 지구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온실가스 역할을 하며, 후자는 단백질 구성단위인 아미노산을 만드는 재료이다. 질소는 생명에 꼭 필요한 물질이지만 분자 형태에서는 불활성적인 특성을 가져 반응성이 크도록 변환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지구 온도 상승이 이 변환을 일으킨 것이다. 지구상에 온실가스가 없었으면 지구는 얼어붙은 동토가 되었을 것이다(따라서 우리 우주는 항성으로부터 강력한 방사선에 노출된 수많은 다른 행성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으며 생명은 필연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우주는 왜 이런 특성을 갖는지, 왜 다른 우주가 아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지구에 생명이 출현하고 살게 된 것은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 때문이다. 물, 행성의 크기, 지질학적 조건, 지구 자기장 같은 지구의 특징, 그리고 태양 에너지 등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다. 2021년에 제시된 또 하나의 요인은 지구가 우리 은하에서 ‘안전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별들과 은하수는 아름답지만 사실 무자비하고 위험한 곳이다. 수많은 별이 폭발하면서 나오는 감마선(γ-rays) 등은 생명 전체를 멸종시킬 수도 있다. 가까운 곳에서 초신성(supernova)이 폭발하면 생명도 멸종할 수 있다. 은하에서 위험한 폭발로부터 안전한 지역은 계속해서 변해왔다. 60억년 이전까지는 은하의 모든 지역이 폭발로 초토화가 되곤 했다. 60억 년 전부터 은하 중심으로부터 12파섹(parsec: 3.26광년) 이상 떨어진 곳이 안전했다. 당시 이 지역의 지구형 행성은 많지 않아 생물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은 적었다. 40억 년 전 이후 은하 중심에서 2~8천 파섹 떨어진 지역에 지구형 행성의 밀도가 높아졌다. 이 지역은 지난 5억 년간 은하 내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으로 바뀌었다. 그곳에 지구가 있었다.

https://www.aanda.org/articles/aa/full_html/2021/03/aa39507-20/aa39507-20.html


진화의 과정은 환경변화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상호 작용하여 나타난다. 생명에게 나타나는 변이는 우연적이다. 유전자에 변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양자세계의 불확실성과 우연성과 같이 우연적이다. 양자세계에 대하여 말하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돌연변이에도 적용된다면 우리 인간과 생명의 진화는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이성과 지성을 가진 존재로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인간과 우리의 삶은 전적으로 ‘가벼운’ 것이 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스는 테레사의 만남이 거의 불가능한 우연 때문이라는 생각에 당혹감을 느낀다. 망망한 우주와 죽음 앞에 선 우리 인간은 존재의 가벼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절대와 신 그리고 필연성을 진지하고도 무겁게 찾아왔다. 하지만 존재의 우연성은 한계가 있는 인간에겐 운명이다. 설령 우리 존재가 필연성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그 우연 속에 필연이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신의 섭리인 필연은 우리에겐 우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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