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사냥하는 남자와 나물 캐는 여자

부부가 같이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하려면 ‘각자’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아내는 사지도 않을 물건을 보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아내의 눈으로 보면 남편은 물건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빨리 사자고 보채는 아이와 같다.


여자는 백화점을 몇 바퀴씩 돌면서 쇼핑하고 남성은 질색하는 것은 원시시대부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유전자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쇼핑 스타일 차이는 여성은 채집, 남성은 수렵 활동을 하면서 생존한 진화론적 관점에서 해석된다. 여성은 딸기를 따다가 떨어진 밤을 보면 이것도 주워 담아야 한다. 덜 익은 버섯도 수시로 살펴 언제 따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물건을 빨리 찾고 살지 말지 판단이 빠른 것도 원시시대 채집을 할 때처럼 다른 물건을 사러 왔을 때 이미 살펴본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원시시대 가장 좋은 열매를 따고 못 먹는 풀을 가려내는 여성의 채집 방식이 꼼꼼히 좋은 물건을 골라 바구니에 넣는 쇼핑방식으로 진화했다. 남자가 사냥할 때는 사냥감만 보고 쫓지 주변은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체력 소모를 줄이고 사냥에 성공할 수 있다. 사냥에 익숙해진 남자는 마트에서도 필요한 물건을 사고 가능한 한 빨리 나오는 길을 찾는 것이다. 남자는 들판을 누비며 보이는 것을 뭐든 사냥하던 수렵 방식과 사냥한 고기를 빨리 집에 가져와 가족을 먹이던 심리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남녀가 사냥은 하지 않고 열매를 따지 않고 동시에 쇼핑을 하니 잘 될 수가 없다.


남녀가 사냥꾼과 채집자로 역할을 나누면서 뇌도 다르게 진화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남성의 뇌는 운동과 공간 지각력이 뛰어나게 발달했고, 여성의 뇌는 언어와 직관력이 우수한 쪽으로 발달했다. 모든 뇌 기능은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신경세포 사이를 오가는 액체의 흐름을 지도로 나타낸 것이 ‘커넥톰(connectome)’이다. 전체(ome) 신경세포들의 연결(connect)을 뜻하는 말로 일종의 뇌 지도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은 좌 뇌면 좌 뇌, 우뇌 면 우뇌 한쪽 뇌에서 앞뒤로 연결된 형태가 많았다. 뇌의 앞쪽은 근육을 조절하고 뒤쪽은 지각력에 관여한다. 남성은 이 두 영역의 연결이 많아 운동 능력이 뛰어나다. 공간 지각력도 뛰어나 지도를 잘 읽는다. 사냥꾼에 적합한 뇌인 것이다. 여성은 논리적 사고를 하는 좌 뇌와 직관을 담당하는 우뇌를 동시에 써 내게 맞는 물건을 택하는 것과 같은 직관적인 판단에서 남성을 압도한다고 볼 수 있다. 상대 감정을 읽는 데도 뛰어나 말 못하는 아기를 잘 돌본다. 좌·우뇌를 동시에 쓰다 보니 아이 공부를 봐주며 저녁을 차리는 식의 동시 작업 능력이 발달했다. 채집자는 딸기를 따면서 아기를 돌봐야 했다. 마트에서도 남녀는 다를 뿐이지 어느 쪽이 틀린 게 아니라는 말이다.


쇼핑 나온 아내가 거울 앞에서 보라색과 분홍색 옷을 들고 “여보, 나 어떤 색이 어울려?” 물어보면 무심한 남편들은 “둘 다 괜찮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아내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다. 소통 강사로 유명한 김창옥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보라색은 어려 보이고, 분홍색은 날씬해 보이네!”라고 답해야 한다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단함을 피하는 동시에, ‘적’의 추가 공세를 차단하는 기막힌 처세술에 남편들은 열광했다.


그래서 그런지 영국 시인 조지 바이런(George G. Byron, 1788~1824)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수많은 적수를 만났지만, 아내여. 그대 같은 적은 생전 처음이다.’ 1859년 진화론이 나오기 전의 그는 진화나 유전 같은 것을 알지 못해서 한 말일 것이다. 사실 유전이자 진화를 들어본 현대 남녀 모두 서로를 이해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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