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과학뉴스

유전자 강탈과 인간의 유래


기생으로 생존하는 유명한 동물은 뻐꾸기이다. 뱁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뱁새가 자신의 새끼를 기르게 한다. 뱁새는 이를 눈치 채고 둥지 밖으로 뻐꾸기의 알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뻐꾸기가 자신의 알을 가져다 놓은 뒤 뱁새의 알을 그만큼 내다버리면 뱁새는 속아서 새끼들을 헌신적으로 키운다.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새끼보다 먼저 부화하고 훨씬 더 크다. 이놈들은 뱁새 어미가 자리를 비우면 뱁새 알과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뻐꾸기는 기생생물의 끝판 왕이다.


기생(parasitism)은 한 생물이 다른 생물의 영양분으로 살아가는 관계를 말한다. 기생은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계에서도 흔하여 기생 식물만 수천 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2019). 새삼(dodder)은 덩굴 기생식물로 광합성을 하지 않는다. 새삼은 숙주 식물을 찾아 뿌리를 내려 양분을 먹으며 산다. 이 과정에서 새삼은 숙주의 유전자를 가져와 숙주 식물의 방어를 무력화시키는데 활용한다. 새삼은 적어도 108개의 유전자를 숙주 식물에서 가져왔고 이 중 18개는 모든 새삼 종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새삼 속의 공통 조상이 훔친 18개의 유전자가 이 기생 식물의 성공에 중요한 비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식물계의 기생 끝판 왕이 ‘새삼(dodder)’이다. 새삼은 잎이 없는 대신에 다른 식물의 줄기를 감으면서 자라는데 150여 종의 덩굴식물이 포함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새삼은 숙주 식물로부터 빼앗는 것은 영양분뿐만 아니라 유전자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능력은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 현상과 관련이 있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란 생식에 의하지 않고 개체에서 개체로 유전형질이 이동되는 유전학적 현상을 말한다. 유전자의 수직 이동은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일어나지만, 수평이동은 두개의 다른 유기체 사이에서 유전자가 이동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 현상은 주로 단세포 생물에서 관찰된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가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교환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유전자 수평이동 방식이다. 단세포 생물에서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 흔하게 일어나지만, 고등 생물에 속하는 식물에서는 상당히 드문 현상이다.


고약한 냄새와 거대한 꽃잎을 가진 라플레시아(Rafflesia)도 숙주 식물(Tetrastigma rafflesiae)로부터 유전자를 훔치는 식물이다. 유전자를 훔쳐 자신의 대사 활동에 도움을 주도록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들 기생식물과 숙주식물 사이에서도 ‘수평적 유전자 이동’ 현상이 발생하여 라플레시아의 전사체(transcriptome) 전체의 2%에 해당하는 49개가 숙주 식물로부터 전해졌다.


식물이 만들어내는 방어물질(Phenol glucoside)는 독소로 작용하는 천연물질이다. 이 물질은 초식동물이 먹기에 맛이 없는 효과를 일으킨다. 일부 절지동물은 이 물질에 적응하기 위해 효소를 사용한다. 곤충도 특정식물에 있는 방어물질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매미 목에 속하는 가루이(학명 Bemisia tabaci)라는 해충은 600여 가지의 식물에 있는 방어물질을 분해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식물을 먹을 수 있다. 이 해충은 식물 잎 뒷면에 알을 낳고, 즙을 빨아 배설하는 과정에서 열매에 그을음을 일으켜 상품성을 떨어뜨린다. 또한 잎과 열매에 피해를 주는 바이러스를 옮긴다. 이 중화 유전자는 이 해충의 장에서 가장 많이 발현되고, 난자 단계에서도 검출됐다. 태생부터 해독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이다. 이 해충이 가진 유전자는 식물에서 곤충으로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을 했다. 약 3500만 년 전에 유전자가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종으로부터 유전자를 가져오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균류 등의 미생물과 진핵생물간 유전자 전달이 꾸준히 보고되어 왔다. 그러나 식물과 곤충 간 수평적 유전자 이동은 희귀한 사례이다. 하지만 이 유전자를 어떤 식물에서 얻었는지는 모른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92867421001641


수평적 유전자 이동은 오랜 진화의 역사에서 많이 발생했다. 우리 몸의 미토콘드리아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도 식물의 광 수용체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생물계는 모두 진화과정에서 수직적으로 탄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평적으로 인연도 깊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코로나19 종결가능성 검토: 한심한 정치인이 걸림돌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