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을 패션계의 키워드는 ‘귀족’(Old Money) 룩이라는 뉴스를 읽었다. ‘올드머니’란 대대로 이어진 상류층을 뜻한다. 반면 자수성가하거나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사람은 신흥 ‘귀족’(New Money)이다. 영국 다이애나 비, 미국 케네디 가문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등이 대표적 올드머니 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Z세대들이 쫒고 있다는 분석이다. 명품만을 사는 패션이 아니라 ‘의식 있는’ 소비로 바뀐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브랜드에 구애받지 않고 질 좋은 소재의 옷을 오래 입는 가치 소비라는 의미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올드머니 룩은 ‘상류층’이라는 개념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이런 보도는 씁쓸하다.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 1789~1799)이 발발한지 2백년이 넘었다. 1789년은 프랑스 ‘대혁명’의 해라고 부른다. 수만 년 간 지속된 ‘계급’의 사회가 무너지고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인간 역사 최초로 선언되었던 것이다. 수만 년을 이어온 신분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물론 불평등은 없어지지 않았고 없앨 수도 없다. 프랑스혁명 후 200년 이상이 지난 21세기에도 인간 사회는 신분은 공식적으로는 없어졌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끊임없이 신분과 권력을 찾고 신분을 과시하고 신분경쟁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로 넘친다.
권력과 폭력은 함께 따라다닌다. ‘미성숙한’ 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2014~2015년 우리 사회는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같은 각종 ‘갑’의 횡포로 시끄러웠었다. 갑의 횡포뿐만 아니라 을에 의한 을의 ‘화풀이’ 성격의 횡포도 자주 목격된다. 이런 횡포는 진화를 거쳐 탄생한 동물의 세계에서도 모두 같은 양상이다. 데이비드 바래시(David P. Barash)와 주디스 립턴(Judith E. Lipton) 부부가 함께 쓴『화풀이 본능』(2012년 번역출간)은 동물이 위계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하는 ‘화풀이’ 행동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공동체 내의 다툼에서 패배한 동물(‘을’)은 자신의 서열이 더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자신보다 약한 개체(‘병’)에게 ‘화풀이’ 폭력을 휘둘러서 위계질서를 유지한다. 화풀이는 진화과정에서 유전자로 각인된 본능으로 인간뿐만 아니라 유인원과 조류, 어류, 곤충에서도 발견된다.
우리 인간은 어떤 면에서 생각해보면 생존투쟁, 권력투쟁과 서열경쟁의 동물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투쟁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과 더불어 조직에서의 승진욕구, 정치에서의 권력욕구 등은 우리 인간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것의 진화의 부산물이 아니라 주산물일수도 있다.
사실 계급의 단초는 농업이 아닌 유전자에서 비롯되었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모든 영장류 사이에 음식과 성이라는 두 가지 가장 기본적인 욕망에서 평등이란 찾아볼 수 없다. 지구상의 유인원인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세계에서 성적(性的) 자원은 불균등하게 분배되었다. 이런 유전자가 초래한 평등에 대한 경시와 탐욕추구는 계급발생의 생물학적 근거이다. ‘서열’ 경쟁은 인간만의 고유한 현상은 아니다. 침팬지 같은 유인원의 세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