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인 임진모씨는 2017년 「동아일보」에 ‘나는 내가 아니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포르투갈 문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António Nogueira Pessoa, 1888~1935)의『불안의 책』을 인용하면서. ‘나의 지난 삶을 돌이켜보니 나의 확신에 찬 행동, 가장 분명한 생각, 가장 논리적인 의도들은 결국 타고난 술주정, 기질적인 광기, 거대한 무지일 뿐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형이상학적인 경탄과 함께 깨닫는다. 나는 스스로 행동한 게 아니라 시키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나는 배우가 아니라 배우의 동작에 불과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욕망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그것과 분리되어 꿈꾸는 삶을 사는 것, 둘 중 하나이다. 둘 다 일 수도 있다. 후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답을 찾는다고 하여도 답을 없다. 세상을 따라 억척스럽게 살아도 권태와 회의는 필연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저버릴 때 늙는다. 세월은 우리 얼굴에 주름살을 남기지만…탐구하는 노력을 쉬게 되면 인생이 녹슨다.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라고 말한 법정스님의 말에 위안을 받는다. 틈틈이 하늘을 들여다보고 세상을 읽어본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도 작고 왜소하다.
물속에서 1년을 보내고 공기 중으로 나온 하루살이는 단 하루 정도 살고 죽는다. 하루살이는 나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은하를 관측하는 과학자들은 바로 이런 처지에 놓여있다. 은하의 수명과 비교할 때, 과학자의 삶은 숲속의 하루살이보다 짧다. 하루살이의 수명은 나무의 100만 분의 1이라도 되지만, 인간의 수명은 은하의 10억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하루살이가 볼 때 나무가 그냥 배경이듯이 우리가 볼 때 은하는 그저 변하지 않는 배경일 뿐이다.
스티브 잡스가 암 투병을 하면서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라는 말을 한 것은 인간은 결코 우주와 인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일지 모른다. 인간은 죽음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알 수 없음으로 덧없이 소멸한다. 그러나 인류전체로는 축적된 지식으로 우주를 이해해오고 있다. 그야말로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