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날리는 오래된 농담: 죽음

고 박완서의 『오래된 농담』에 나오는 글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비슷하게 벌거벗고 순진무구하게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천태만상 제각기 다르게 죽는다. 착하게 살았다고 편하게 죽는 것도 아니고, 남한테 못할 노릇만 하고 살았다고 험하게 죽는 것도 아니다. 남한테 욕먹을 짓만 한 악명 높은 정치가가 편안하고 우아하게 죽기도 하고, 고매한 인격으로 추앙받던 종교인이 돼지처럼 꽥꽥거리며 죽기도 한다. 아무리 깔끔을 떨고 살아봤댔자 자식들에게 똥을 떡 주무르듯 하게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다년간 생명운동인지 환경운동에 몸담아왔다는 노인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한 이답게 벌레 하나 들꽃 한 송이도 아낄 것처럼 자비로운 인상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부터는 혼자 죽기는 싫다고, 하늘과 땅이 맞닿아 맷돌질을 해서 삼라만상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악을, 악을 쓰다가 죽었다.


미국 사진작가 앤드루 조지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시한부 환자 20명의 초상을 촬영했다. 사진과 함께 이들과 나눈 대화를 글로 정리해 미국과 벨기에에 이어 2017년(6.26.~8.6. 충무아트센터)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선 사람의 공통점은 ‘마음을 열고 주변 사람과 소통하려는 태도’였다.”고 말했다. 알랭 드 보통은 “죽음을 마주하면 그동안 삶의 목적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가치에 눈뜨게 되고, 삶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썼다. 작가는 2012년 LA 호스피스 병원을 찾아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고 연락이 오면 달려가 37가지 질문을 준비하여 3~5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 질문 중에는 ‘당신에게 기쁨을 주는 일은 무엇인가요?'가 있었다.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일요.” “어렸을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형제들과 야구를 할 때면 어머니도 함께하곤 하셨죠.” “인생은 기뻐하며 즐길 일이 가득한데도, 우리는 참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답변은 모두 소박했다. “그들의 꿈과 행복은 물질적인 것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저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더욱 가까이 지내고 좀 더 사랑을 느끼고 싶어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20명의 공통점은 24시간 고통과 싸우면서도 주위 사람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나누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인 나에게 고해성사하듯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보였다.” “환자들은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눴고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삶 자체를 즐기는 성숙한 내면이 느껴졌죠. 결국 이 전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명의 초상화를 둘러보고 나면 관람객들은 거울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에게 똑같이 37개의 질문을 던져보라는 뜻이다(조선일보, 2017.7.4.).


‘아름다운’ 죽음을 말하려고 하였지만 죽음은 다시 홀로이다. ‘인간의 만년(晩年)이란 것은 쓸쓸한 게 당연한 일이다.’ ‘여든셋이 되면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낯선 지방으로 강연을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곤 낯선 여관방에서 쓸쓸히 생을 마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가 불러주기만 한다면.’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寬之)의 『바람에 날리어』에 나오는 언어이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드는 쓸쓸함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이다. 홀로 왔으니 가는 길도 홀로 가는 게 마땅하다(내가 만난 名문장, 2017.8.19. 이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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