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문사회

참을 수 없는 비극적 인간

사회 내에서 지배적인 집단을 내집단(in-group)이라고 한다. 20세기 공산주의는 바람직한 내집단을 계급차원에서 정의했고, 파시즘은 인종차원에서 정의했다. 그리고 둘 다 내집단을 정제한다는 명목으로 외집단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가공할 폭력을 행사했다. 1930년대 소비에트의 집단농장도 그 중 하나이이다. 역사학자 올랜드 피지스(Orlando Figes)는 이렇게 요약했다. “이는 사회주의 홀로코스트이며 농민에 대한 전쟁이었다. 근실한 농가를 수백만 호씩 고향에서 뿌리 뽑아 소비에트연방 전역으로 흩어 놓았다.” 계급 없는 동질적 사회를 구현한다고 강제 노동을 양산했으며, 인민을 대변하겠다며 신성왕권 못지않은 전제통치로 회귀했다.


“당신의 무지 탓에 이 나라는 향후 몇 세기 동안 자유를 상실했는데 자신이 결백하다고 소리칠 수 있나요? 자, 당신 주위를 돌아보셨나요? 참담함을 느끼지 않나요? 당신에겐 그것을 돌아볼 눈이 없는지도 모르죠!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뽑아 버리고 테베를 떠나시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언어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68년 알렉산데르 둡체크(Alexander Dubček, 1921~1992)가 집권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 개혁 정책이 추진되었다. ‘프라하의 봄’이라 부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질타했다. “조국이 파산하고, 국민이 가난에 허덕이고, 살인이 자행된 것은 당신들 탓이요.” 공산주의자들은 변명했다. “우린 몰랐어! 우리도 속은 거야! 우리도 그렇게 믿었어! 우리는 결백해!” 소설의 주인공 토마시는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문제의 본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지로 인한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결백할 수 없다. 무지와 광신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권좌에 앉은 자의 광신과 독선은, 무지와 마찬가지로, 국가적 범죄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범죄적 정치 체제는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했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이 만든 것이다. 훗날 이 천국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광신자들은 살인자였다는 것이 백일하에 밝혀졌다.’ ‘프라하의 봄’은 구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으로 점령함으로써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토마시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인간이 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지 질문한다. 그가 제시한 해답은 “낙관주의자는 경험이 거듭될수록 인간 역사가 피를 덜 흘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이며, 비관주의자란 그런 것을 믿지 않는 자”라는 것이었다(내가 만난 名문장, 동아일보, 2017.9.16. 전봉관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칼 마르크스는 생전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으려는 사상가라는 의미로 보인다. 공산주의 혁명을 이끈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과오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 책임을 마르크스에게 돌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칼 마르크스는 비극적 폭력을 의도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어느 시대나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인권 등을 내세우면서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 재물 같은 이득을 차지하려는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들어 전 세계가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비참한 결과를 목격하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학살에 참가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남겼다.


죙케 나이첼(Sönke Neitzel)과 하랄트 벨처(Harald Welzer)가 쓴『나치의 병사들』(2015년 번역출간)은 전쟁을 전쟁에 참여한 군인의 입장에서 본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에서만 5000만 명이 희생된 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는데 희생자 가운데 민간인 비율이 60%를 웃돌았다. 그들은 유대인 600만 명을 몰살했고, 소련군 포로를 300만 명쯤 죽였다. 나치군은 전쟁에서 군인과 비무장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전쟁에 참여한 나치 군인들은 한 때는 훌륭한 농부, 사랑의 아버지였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명명했다. 한나 아렌트의 고발은 오래된 과거이다. 지금도 악의 평범성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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